'뻔한 청춘물' 포장지 속에 숨은 '반전 감동'
설명만 들어도 질식할 것처럼 뻔하고 식상한 이야기일 것 같다. 영화 ‘기적’의 시놉시스와 예고편을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또 그렇고 그런 추석 감동 영화가 하나 나왔군’ 하는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박정민과 임윤아라는 스타를 내세운 흔하디 흔한 청춘 로맨틱 코미디가 머리에 그려졌다.
하지만 영화의 예고편은 하나의 ‘기만책’이다. 감독이 의도를 갖고 관객들로 하여금 뻔한 영화일 것이라는 착각을 유도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영화 ‘기적’은 예고편과 공개된 줄거리만으로는 결코 예측할 수 없는 ‘숨겨둔 한 방’이 있는 영화다. 그 한 방에 무방비하게 당한 관객이라면 차오르는 감동과 눈물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준경(박정민 분)의 이야기를 펼치며 예정된 걸음을 옮긴다. 준경은 아버지 태윤(이성민 분)의 꾸지람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청와대에 수십 통의 편지를 쓰는 고등학생이다. 그러면서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녀, 동급생인 라희(임윤아 분)의 관심을 받기도 한다. 준경과 라희는 힘을 합쳐 기차역을 만드는 여정을 시작한다.
영화 전반부는 짝사랑을 시작한 라희의 행동을 지켜보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는 시간이다. 전반에 알차게 넣어둔 풋풋한 사랑 이야기와 아기자기한 유머들이 유쾌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중반부터다. 그동안 존재감을 보이지 않았던 준경의 아버지 태윤이 스크린에 자주 등장하고, 준경의 누나 보경(이수경 분)의 속사정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영화는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태윤이 그토록 엄하고 강경해야 했던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과 각 인물의 내면이 드러나는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보지 못한 흐름이다.
배우들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박정민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트랜스젠더를 연기한 박정민은, 이번에는 34세의 나이가 무색하게도 고등학생 연기를 펼친다. 다소 무리한 설정임에도 왜 박정민이어야 했는지를 납득하게 만들 정도로 그의 연기는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이성민은 여전히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임윤아는 더 이상 소녀시대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좋은 배우가 됐다. 그리고 이수경은, 이 영화의 히든카드라 할 만하다.
일견 신파적 진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후반 진행을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춘 설정들이 아쉽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면 아주 준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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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7호 (2021.09.29~2021.10.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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