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대학과 교육부, 협치의 혁신이 필요하다

2021. 9. 30.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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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굵직한 혁신은 대부분 미국에서 나왔다 해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왜 모든 혁신은 미국에서 일어날까. 답은 대학에 있다. 미국만큼 대학을 국가의 중요 자산으로 간주하는 나라도 드물다. 국가경쟁력은 대학의 함수라는 방정식을 철저하게 신봉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 모두 고등교육을 미래 지향 투자의 으뜸으로 꼽는 전통은 여전하다.

이에 화답이나 하듯 노벨상 수상에서 미국 대학이 보여준 성과는 압도적이다.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작년까지 노벨상 과학 분야(물리·화학·생리의학)에서 미국은 전체 수상자의 56%를 차지했다. 노벨 경제학상은 미국이 71%로, 3명 중 2명이다. 이쯤 되면 독보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런 추세는 향후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기업과 대학은 ‘변화에 대한 포용력을 넓히자’는 취지에 혼연일체가 된다. 대학의 성장에 기여하는 기업의 역할은 세계 그 어떤 나라도 미국을 따라가기 어렵다. 기업의 참여와 기여를 빼고 미국 대학의 성장을 생각할 수 없다. 유럽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물론 미국도 처음부터 대학 성장이 순탄하고 선한 의도만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현대 첨단 거대과학은 냉전 질서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연과학과 관련된 많은 학과의 탄생이 국가의 학문 지원과 관련성이 있다. 국가에 의한 학문의 형성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 패권국가의 요건인 국제지역연구의 활성화나 자유주의의 후견인으로서 경제학, 위기 사태를 조장하는 정치학 등은 국가에 의해 가공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런 노정을 거치며 미국 대학들은 대학은 무엇을, 대학다운 대학이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질문하며 혁신의 지렛대 역할을 한다.

한국 대학의 혁신에 대한 질타가 대학 안팎에서 거세다. 혁신 부재의 대학을 향한 비판은 혹독하다. 대학의 인재 양성에 대한 사회의 비판은 더 가혹하다. 대학 안에서도 고민이 크다. 등록금은 13년째 동결돼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재정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정부의 고등교육투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돈이 없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어렵다는 말이 결코 엄살이 아니다.

최근 한 일간신문이 한국의 대학 교육 문제를 몇 회에 걸쳐 연재하며 마무리하는 사설에서 “대학이 교육부 관료의 손아귀 안에 있는 한 혁신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맺고 있다. 관료의 손아귀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와 지원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영삼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는 5·31 교육 개혁의 대학지원사업은 강산이 세 번 정도 바뀔 시간이 지났건만 경로의존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공고해지고 있다.

현재 교육부가 관급공사처럼 발주해 각 대학이 수주해서 진행하는 사업은 조성사업, 지원사업, 구축사업, 육성사업, 실용화사업, 그냥 사업 등의 이름으로 저잣거리 표현을 빌리면 겁나게 많다. 대학은 재정에 꿰여 이런 단발성 사업들을 준비하고 지원하고 수행하느라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한다. 규모가 작은 대학일수록 이런 부담은 더 가중된다. 지금까지 지원은 개발국가 기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이뤄졌으며, 규제는 예외를 일반화하면서 낡은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세계 최고 반열을 선도하는 삼성 휴대폰과 BTS를 보며 성장한 지금 대학생들은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선진국이나 선진문화에 대한 이른바 한(恨) 같은 것이 없는 세대다. 연구 영역도 경계의 파괴와 융합을 가속하는 빅블러(Big Blur)로 중심축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변화에 대한 포용력이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하게 요청된다.

이제 대학과 교육부는 변화에 대한 포용력을 넓히기 위한 협치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제도를 갖춰야 하는지 등 고등교육 전반에 관해 함께 숙의해야 한다. 교육부는 시대를 선도하는 지원과 규제가 어떤 것인지 대학으로부터 경청해야 한다.

변화를 놓치는 것이 가장 무섭다. 한 번 놓친 변화는 따라가기 힘들며,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혁신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는 지체해서 안 된다. 지금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대학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면 대학을 교육부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주장이 기정사실로 될 것이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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