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의 블루 시그널] 그대는 무엇을 남기고 떠나려는가

2021. 9.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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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고 조용기 목사님 장례위원장으로서 조문소를 지켰던 순간순간들이 잔상으로 남아 있다. 그 순간의 슬픔, 먹먹함, 아련한 감정이 내 마음의 공간을 떠나지 않고 있다. 특별히 수의를 입으신 조 목사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고 또 미어졌다.

그때 나는 조용기 목사님 누워계신 오른편에 섰는데 목사님의 오른손을 잡고 이렇게 고백했다. “목사님같이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까지 일으키셨던 분도 이렇게 가시네요. 다시 일어나실 순 없나요.”

그런데 목사님의 마지막 모습이 환영 아닌 환영처럼 나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조 목사님은 나와 영원히 결별하였지만, 특별히 마지막 하관하는 모습은 더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있으니 이런 것을 가리켜 현실과 상상 사이의 메타버스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나는 요즘 그분이 생각날 때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략).”

부산 피난민 판자촌에서 폐병에 걸려 양재기에 각혈하며 죽음을 기다리던 소년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꽃이라고 불러 주셨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꽃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드러냈다. 세계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다. 목회 기간 65년, 해외 성회 개최국 71개국, 해외 성회 이동거리 지구 120바퀴, 국내교회 개척 522개, 해외교회 개척 1194개, 해외 선교사 파송 673명, 지성전 15개, 무료 심장수술 4704명….

이건 보통 꽃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막에 위대한 꽃바다를 만들어낸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는 조용기 목사님 천국환송예배 때도 ‘꽃잎은 져도 그 향기는 지지 않습니다’라는 시를 낭독했다. 과연 그분의 삶의 꽃잎은 떨어졌지만, 그 향기는 강을 건너고 사막을 지나 붉은 고원의 언덕에까지 이르기에 넉넉하리라.

가난한 신학생 시절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나에게 조용기 목사님은 희망의 아이돌이었고 꿈의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나도 나이지만 조문소 앞마당에서 운구할 때 목을 놓아 울던 여의도순복음교회 성도들의 그 눈물을 다 모으면 시냇물이 되고 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장면들이 내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현실과 가상공간 사이에 향기의 메타버스를 이룬 것이다.

10여일이 지나, 조 목사님의 묘지는 잘 단장되고 봉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살펴보러 장로님들과 함께 오산리를 찾았다. 묘지 앞에 서니까 고 김성혜 사모님과 함께 나란히 누워 계시는 모습이 나의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산들바람이 스치고 산새들의 소리가 그치지 않고 이어졌다. 문득 용정에 있는 윤동주의 무덤이 생각이 났다.

윤동주의 무덤을 갈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미안하고 애달픈 감정이 든다. 그래서 윤동주의 사촌 동생인 윤형주 장로님과 함께 가서 벌거숭이가 된 묘지에 푸른 뗏장을 입혀 드린 적이 있다.

그런데 조 목사님 묘지의 봉분은 잘 단장되어 있었고 조화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너무 송구한 마음만 생겼다. 분명히 한국교회장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조문해야지 않았을까. 물론 미국 순방을 목전에 둔 상황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장례위원장이었던 나의 한계고 분열된 한국교회의 상황이며 현 정부의 한계일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교회는 연합기관을 하나로 만들고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며 한국교회의 위상을 세워야 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묘지 앞에서 마음으로 고백했던 말이 가슴속을 메아리치며 진동시켰다. “목사님, 폐병에 걸려 죽을 소년에게 주님께서 꽃이라고 불러주셨잖아요. 그래서 당신은 주 안에서 위대한 꽃바다를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목사님에게도 과가 있었고 그 과 때문에 많은 비난도 받으셨지요. 그러나 목사님이 이룬 향기로운 꽃바다는 그 모든 과를 덮어버리고도 남을 것입니다.”

나 역시 목사의 한 사람으로 무엇을 이루고 남겨야 하겠는가. 주님의 향기를 남기고 연합과 일치의 향기로운 꽃바다를 이루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그대 역시 무엇을 남기고 떠나려는가.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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