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명의 파시오네] 자연관광 넘어 문화관광 시대 열어야

2021. 9. 3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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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중국 속담 중에 ‘상유천당 하유소항(上有天堂 下有蘇杭)’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으며 땅에는 항저우와 쑤저우가 있다는 뜻이다. 항저우에서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로 알려진 곳은 서쪽의 호수라는 뜻을 가진 서호(西湖)다.

약 6.8㎞에 달하는 이 거대한 인공호수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연일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명소다. 그리고 2007년, 서호에 또 하나의 새로운 서사가 쓰여지기 시작했다.

「 중국 명물 서호에 펼쳐진 음악극
두바이 사막을 적신 환상적 물쇼
세계유산 제주도의 가능성 확인

중국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자 베이징 올림픽 개·폐막식 연출을 이끈 장이머우 감독은 이 거대한 호수 위에 또 하나의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장이머우 감독이 연출한 음악극 ‘인상서호’는 중국 4대 전설 중 하나인 ‘백사전(白蛇傳)’을 배경으로 수상 무대에서 펼쳐지는 대형 야외 공연이다. 2007년 항저우에 첫 선을 보인 이후 꽤 높은 입장료에도 항저우에 가면 꼭 보아야 하는 예술 콘텐트로 그 독보적인 입지를 확립했다. ‘인상서호’ 공연은 이미 서호의 명성을 넘어 야간 관광으로서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관광상품이 됐다.

파시오네

2017년 9월 두바이 오페라 하우스 개관 1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 현지에 체류하던 중 세계적인 공연 연출자 드라고네가 연출한 ‘라 펄(La Perle·진주)’ 공연의 세계 초연에 초청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드라고네는 뉴욕이나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여행객들에게 공연 관람이 필수 코스인것 처럼 두바이 여행객들에게도 라 펄쇼가 필수 코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 펄이라는 이름은 석유를 발견하기 전, 진주가 두바이의 주요 산업자원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오직 ‘라 펄’쇼 만을 위해 특별 제작된 세계 최초 원형 풀장 무대에서 관객석에 이르기까지 공연 시간을 아우르며 쏟아진 물의 양만 270만 리터.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환상적인 무대로 관객들을 압도했다.

두바이는 석유 고갈을 앞두고 미래를 준비하는 대대적인 개발 사업을 진행하며 사막 한가운데 자신들의 랜드마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부르조 칼리파, 두바이 몰, 여러 개의 인공섬 등이 그것이다. 아부다비 또한 관광객을 모으려는 일환으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전시품 대여 계약을 체결했다.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은 3만5000여 점의 특별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제주도는 탁월한 자연경관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문화재청이 주최하는 세계유산 축전에서 제주도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선정됐다. 지난해 제주에서 열린 첫 번째 세계유산 축전에 초대돼 성산 일출봉 실경 무대에서 개막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하는 무대가 아닌 일출봉과 그 일대 해안가까지 거대한 하나의 무대로 만들어 버린 생각의 전환은 여지껏 제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형 야외 공연의 실현 가능성을 선보이며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올해엔 ‘만년의 시간을 걷다’ 라는 슬로건으로 1만년 전 검은오름에서 월정리 해안까지 용암이 쓸고 내려간 ‘불의 숨길’에 트래킹 코스를 개발해 워킹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아쉽게도 진행해 오던 모든 사업이 비대면 온라인 사업으로 전환되었지만 앞으로 꾸준히 개발해 나갈 수 있는 콘텐트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년 연속 제주 세계유산 축전을 총괄지휘하고 있는 김태욱 총감독은 “거문오름 분화구에서 월정리 해변까지 이어진 이 길은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좋다고 자부한다”면서 “세계 리딩 자연유산답게 최고의 콘텐트를 선보일 것을 약속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주어진 환경을 토대로 관광과 문화를 접목한 예술 관광 콘텐트 개발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 환경에 천재적 감각을 더해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고, 사막 한가운데 초대형 도시를 건설하며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아직 지역을 기반으로 한 우리나라 대표 문화예술 관광 콘텐트가 없는 시점에서 세계 자연유산 제주의 가치를 문화예술적으로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반갑다. 자연이 빚어 놓은 위대한 예술 작품 위에 인간이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야 할 시점이다.

유한한 자연환경에 무한한 예술생태계를 일궈내며 자연에 환경적·예술적 가치를 더하는 일은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강혜명 성악가(소프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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