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007 노 타임 투 다이' 웃으며 떠나는 제임스 본드의 모든 것

이준범 2021. 9. 2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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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어색한 작별 인사는 없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시리즈 작품이다. 그는 2006년 개봉한 ‘007 카지노 로얄’ 이후 15년 동안 5개 작품에서 제임스 본드를 연기했다. 마지막이라고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거나 전성기보다 못한 활약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빠르고 거침없이 활약하는 동시에 제임스 본드의 감정적인 내면을 가장 깊숙이 들여다본다. 로맨스부터 액션, 코미디 등 여러 장르의 다양한 이야기가 빽빽하게 담겼다. 축제를 연 것처럼 가장 화려하고 멋지게 제임스 본드를 떠나보낸다.

‘007 노 타임 투 다이’(감독 캐리 후쿠나가)는 영국 보안정보국 MI6에서 은퇴하고 이탈리아에서 연인 매들린(레아 세이두)과 아무도 모르게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위치가 발각되고 공격받자 본드는 매들린을 의심하며 헤어진다. 5년 후 MI6에서 연구한 생화학무기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MI6와 CIA는 모두 은퇴한 제임스 본드에게 손을 내밀고 같이 사건을 해결하길 원한다. 본드는 고민 끝에 CIA의 손을 잡고 쿠바로 향한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사건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위치부터 이전과 다르다. 본업에서 떠난 그에겐 일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누구와 일할지 선택할 자유도 있다. 무엇을 위해 일하고 스스로에게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동시에 잃어버린 개인의 삶까지 찾아야 했던 전작들과 출발점이 다르다. 이미 스스로 더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을 했고 나름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던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 세계 평화나 조직 재건 같은 목표가 아니다. 개인적인 호기심과 분노, 가족으로 이어진 끈을 잡고 사건에 뛰어든다. 007처럼 조직에서 부여한 코드명 대신 제임스 본드로서 활약하는 이야기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컷

제임스 본드가 뭔가를 고민하거나 선택을 어려워하는 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영화다. 신념이 확고하고 늘 해오던 방식대로 일을 해결해간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새 007 노미(라샤나 린치)의 말에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고, 신무기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MI6 국장 M(랄프 파인즈)에게 그렇지 않다는 태도를 취한다.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대량학살을 꿈꾸는 빌런이 등장하고 옳은 일을 위해 만든 무기가 가장 나쁜 의도로 이용되는 곳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일을 온몸으로 막아야 한다. 본드는 늘 해왔던 대로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 세계 어디든 달려가 결국 악당과 정면으로 마주해 쓰러뜨리려 한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단순하지만 가장 확실한 그의 방식이다.

제목도 그렇지만, ‘시간’이 여러 번 언급되는 영화다. 오프닝 장면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매들린이 본드에게 더 빨리 달리자고 말한다. 본드는 그럴 필요 없다며 우리에게 시간은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바로 그 시간은 사라진다. 마지막 전투에서도 시간은 본드를 옭아맨다. 자신이 신이 된 것처럼 엉뚱한 생각을 하는 빌런 사핀(라미 말렉)과 싸우는 내용보다 마들렌과 얽힌 관계를 풀어내는 것에 더 집중한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떠나기에 가장 적절한 시간은 언제인지 되묻는 듯하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을 기념하듯 164분의 긴 러닝 타임으로 완성됐다. 이야기의 깊이와 폭이 넓고 코미디와 액션이 빈틈을 메워 지루하지 않다. 정면을 보고 흔들림 없이 걸어가는 제임스 본드 뒷모습을 믿고 따라갈 만하다. ‘다크 나이트’ 시리즈, ‘어벤저스’ 시리즈가 떠오르는 사핀의 빈약한 논리와 존재감은 아쉽다. 느리게 움직여도 총알이 스치지도 않는 007 시리즈 특유의 만화 같은 감성도 여전하다.

2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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