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없으면 제재 유지..美 당국자, 정의용 제안 반박

美 "전제 조건 없이 만날 준비 돼 있어"
北 "적대시 정책 먼저 철회" 조건 일축
美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이행" 촉구
정의용 제안한 제재 완화 사실상 거절

킨 모이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가 28일(현지시간)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애틀랜틱카운슬이 공동 주최한 연례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28일(현지시간) 최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에도 북한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화 개시에 조건을 붙이지 않을 것을 거듭 요구해, 선결 조건을 내건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요구를 일축했다. 또 유엔 회원국에 대북 제재 이행을 계속 촉구할 것이라고 밝혀,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제재 완화 제안도 사실상 거부했다.

킨 모이 미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이날 워싱턴DC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이 공동주최한 연례포럼에서 “미국은 최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우려하고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북한과 전제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대화를 촉구했다.

모이 수석부차관보는 화상으로 진행한 기조연설에서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평양에 직접 손을 내밀었고, 전제 조건 없이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토대로 각자의 의도와 우려에 대해 논의하고 어떤 진전을 이룰 수 있을지 모색하기 위해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를 통해 대화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소위 적대시 정책과 이중 기준 철회를 요구했으나 국무부 고위 관료가 조건을 걸지 말라고 다시 제안한 것은 미국의 대화 원칙이 확고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모이 수석부차관보는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목표 달성을 위해 대북 외교를 모색할,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전략은 외교와 대화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이 올들어 발사한 미사일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모이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며, 주변국과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비판했다. 또 “북한의 불법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며, 세계 비확산 체제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다른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는 것처럼 북한에 대한 결의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모이 수석부차관보는 “전 세계 확산 방지 노력을 강화한다는 목표에 따라 모든 유엔 회원국이 국제적 의무를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해 대북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비핵화에 대한 진전 없이는 제재 해제나 완화가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싱크탱크 간담회에서 제안한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해 반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부차관보가 28일(현지시간)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애틀랜틱카운슬이 공동주최한 연례 포럼에서 토론하고 있다. [워싱턴 공동취재단]

마크 램버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는 같은 행사에서 “우리가 북한과 대화할 의사가 없으며 미국의 관여에 조건이 달려있다는 오해가 있다”면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점을 모든 수준에서 매우 분명히 해왔다”면서 “그들은 아직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그간 한국과 협의해 온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지지도 재확인했다.

모이 수석부차관보는 “공통의 인도적 관심 분야를 다루고자 북한과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비핵화 진전과 상관없이 가장 취약한 북한 주민에 대한 접근 및 모니터링에 대한 국제 기준에 따라 인도적 지원 제공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애틀랜틱카운슬이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연례포럼을 열었다. 왼쪽부터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부차관보, 윤영관 전 외무부 장관,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 [워싱턴 공동취재단]

이날 행사에는 미국 측에서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국무부 부장관,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로버트 앳킨슨 정보기술혁신재단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는 이근 KF 이사장,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최석영 전 주제네바대사, 이상현 세종연구소 소장이 참석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park.hyu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