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죽음 후 목소리 잃은 소녀, 슈퍼스타가 되다

장혜령 2021. 9. 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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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장혜령 기자]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포스터
ⓒ (주)얼리버드픽쳐스
 
U(가상현실)는 50억 명의 유저가 살아가는 사상 초유의 메타버스다. 최신 보디 셰어링을 통해 몸과 마음, 생체 정보를 스캔한 AS(분신)를 오직 하나만 가질 수 있다. U는 독특한 자아 반영 프로그램인 생체정보 연동 과정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벨로 정체성을 확립한다. 나와 흡사하지만 다른 AS에 자신을 감춘다. 하지만 언베일(커밍아웃)을 당하면 오리진(본체)이 밝혀진다. 누구도 정체가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고교생인 스즈는 어릴 적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엄마를 늘 그리워하는 내성적인 소녀다. 음악을 좋아하고 외향적이었던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며 자라났지만 엄마가 죽고 난 후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아빠와도 데면데면하다. 그렇게 우울한 날을 보내던 스즈는 'U'에서 비로소 잃어버린 목소리를 찾는다. 엄마가 떠올라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노랫가락을 가상현실에서는 자유롭게 펼치는 슈퍼스타 벨로 인기를 얻게 된다.

한편, 환상적인 분위기와 우수에 찬 목소리를 가진 벨은 U에서 아이돌급 인기를 얻는다. 그러던 중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던 용이 콘서트장에 난입하면서 둘은 운명적으로 만난다. 용은 큰 상처를 안고 있는 존재이자 U의 질서를 파괴하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등에 있는 화려한 무늬는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생긴 멍 자국이다. 소문만 무성한 용의 비밀스러운 행보를 닮았다. 마치 물감이 퍼진 것처럼 형형색색의 색감으로 신비롭게 각인된 게 특징이다.

감독이 오랫동안 꿈꿔온 작품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스틸컷
ⓒ (주)얼리버드픽쳐스
 
<용과 주근깨 공주>는 오랫동안 호소다 마모루가 지켜온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디지털화한 작품이다. 3D와 2D 작화를 넘나드는 감성은 상처 입은 캐릭터에 이입해 아날로그의 향수를 유발했다. 스즈가 있는 현실은 풋풋하고 한적한 시골 풍경을, 벨로 접속하는 U에서는 화려한 판타지 세계가 구현된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스스로 <미녀와 야수>의 오마주를 밝혔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만의 재해석을 넘어 경의를 표했다. 두 사람은 메타버스에서 서로의 존재를 숨긴 채 분신으로 교감한다. 디지털 가상 공간에서 내면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찾아간다는 점이 유사하다. 주인공 이름이 스즈(방울)이면서 벨인 점과 용을 미움받는 괴물로 표현한 점이 데칼코마니 같다. 벨과 용은 둘 다 U에서 유명인이지만 현실에서는 평범한 10대, 상처받아 그늘진 존재들이다. 둘은 정체를 숨길 수 있는 공간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하며 꿈을 이루려 한다. U에서는 AS와 AS가 만나 US가 되는 마법이 이루어진다.

감독은 지난 2년간 팬데믹의 영향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사람들을 따스하게 만들어 줄 존재가 영화임을 깨달았다. 몸은 멀어졌지만 마음은 더 가깝게 나누고 싶은 절실함과 오랫동안 그려왔던 감독의 꿈이 집대성된 작품이다.

요즘 대세인 메타버스를 소재로 디지털과 현실 세계의 궁극적인 가치를 논한다. 인터넷이 허구와 진실을 혼재하는 양면적인 공간임을 이용했다. 인터넷이 생겨난 지 25년, 스마트폰이 도입된 지 1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상은 너무 빠르고 많이 변해버렸다. 인류의 기본이라 불리는 커뮤니케이션은 시대와 장소를 옮겨 기술적 진보를 이뤘지만 오히려 소통의 부재가 포착되고 있다.

때문에 누군가를 온전히 지켜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처럼 보인다. 엄마가 위험에 처한 생명을 구해준 것, 엄마를 잃고 아파하는 스즈를 보호해 준 시노부, 스즈가 지켜주려 했던 용으로 이어지는 휴머니즘이 포인트다. 빠르게 발전하는 문명의 혜택을 실감하면서도 고유의 가치는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호소력 짙은 메시지가 느껴진다.

오감 만족을 보장하는 호소다 마모루 월드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스틸컷
ⓒ (주)얼리버드픽쳐스
 
스즈의 분신 벨은 디즈니 최초의 한국 애니메이터인 캐릭터 디자이너 김상진이 맡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섬세한 협업이라 할 수 있다. 

벨이 부르는 노래는 신비로운 음색과 독특한 목소리로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다. 목소리 연기와 노래까지 1인 2역을 담당한 나카무라 카호는 인디 뮤지션으로 오디션을 통해 발탁된 신예다. 그밖에 일본의 톱 스타와 라이징 스타가 성우로 참여했다. 사토 타케루가 용을 맡았고, 스즈의 아버지는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스즈가 좋아하는 인기남 시노부 역에는 나리타 료, 카누 선수이자 엉뚱한 카미신 역에는 소메타니 쇼타, 학교의 인기녀 루카 역에는 타마시로 티나, 벨의 절친한 친구 히로 역에는 뮤지션 이쿠타 리라가 참여했다.

주목할 점은 그동안 펼쳐왔던 십 대, 시골, 가족의 메시지를 통째로 갈아 넣었다는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 유니버스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 <썸머 워즈>의 가상 세계 Oz의 업그레이드이자 자신만의 해석을 부여했다. 그동안 쌓아 올렸던 작품의 주제를 바탕으로 새롭게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다. 일상에 깃든 작은 행복을 핀셋으로 집에 낸 듯, 작고 하찮아 지나쳤던 것에서 위대함을 발견하게 된다.

한편, <용과 주근깨 공주>는 제작비 300억 원이 든 대작으로 알려져 있다. 제74회 칸영화제 '칸 프리미어'부분에 공식 초청되며 자국의 흥행은 물론 재패니메이션 거장의 영향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아름답고 섬세한 OST와 작화, 일본 영화계 정상급 스타 배우의 목소리 출연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보석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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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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