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통과' 금융公기업 이사회..배경엔 청와대·정당·캠프 낙하산(종합)

송승섭 2021. 9. 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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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개 안건 中 218개 가결..내기만 하면 통과
안건설명, 이사발언, 찬반유무 공시 생략하기도
금융 공기업 임원 10명 중 4명이 낙하산 논란
정작 산하기관 부실·불투명 공시에는 무풍지대
전문가들 "공공기관 먼저 지배구조 개선해야"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올해 금융 공공기관 이사회의 안건 가결율이 100%에 가까운 것으로 파악됐다. 기관별 공시 방식도 제각각이었으며 실질적인 정보가 누락된 경우도 수두룩했다. 경영자를 감시·통제해야 하는 이사회가 유명무실한 거수기로 전락했다며 민간 금융사를 비판해왔던 금융당국이 정작 산하기관 이사회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발언·찬반 유무 생략…사유 설명 없이 비공개 처리하기도

29일 공공기관 경영정보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8개 금융 공공기관(서민금융진흥원·신용보증기금·예금보험공사·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한국예탁결제원·한국자산관리공사·한국주택금융공사)은 올해 총 71차례의 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에 상정된 안건은 219건으로 이중 218건이 통과돼 가결률은 99.5%에 달한다.

이사 간 논의를 거쳐 안건을 수정한 경우는 5번에 불과했다. 대다수 안건은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유일하게 부결된 안건은 지난 7월 한국예탁결제원 이사회가 논의한 ‘아시아개발은행(ADB) 신탁기금 자금 공여안’이다.

가장 많은 안건을 처리한 기관은 서금원이었다. 올해 10차에 걸친 이사회에서 52건을 통과시켰다. 가결율은 100%. 공시도 허술했다. 최근 열린 이사회에서 처리한 6개 안건은 회의록에 구체적인 논의 과정이 모두 누락됐다. ‘정관일부 개정안’이나 ‘업무방법서 일부 개정안’ 등이 포함됐는데 어떤 조항을 어떻게 바꾸는지에 대한 설명도 담지 않았다.

안건별로 찬반 유무를 공개하지 않는 기관도 허다했다. 통상 민간 금융지주에서는 각 이사의 전문분야와 안건별 찬반 유무를 표시한다. 하지만 금융 공공기관은 서금원과 주금공이 일부 회의록에 찬반 유무를 공시한 게 전부다. 이마저도 전체 이사가 찬성했을 때만 공시하는 등 부실하게 운영하거나 추후 찬반유무 표시항목을 제외해버린 상태다.

참여자의 발언을 불투명하게 공개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업은행은 이사회에서 나온 발언을 요지로 정리했다. 이마저도 상세한 요약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 처리된 안건 39개의 발언 요지는 모두 ‘안건에 동의’한다고만 썼다. 예보 역시 ‘주요 토의내용’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이사진을 ‘000’으로 표시해 발언자를 알 수 없게 했다. 산업은행은 의결안건과 보고안건의 상당수를 비공개 처리했다. 현행 규정에 따라 회의내용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지만 안건과 비공개 사유 자체를 밝히지 않는 건 투명한 정보공개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공공기관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로 전락하고 운영까지 부실해진 건 관행처럼 자리잡은 ‘낙하산 인사’가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금융·재무·회계 지식 등 전문성이 아닌 정치적·정파적 이해에 따라 사람을 내리꽂는 인사가 반복되다보니 이사회의 기능과 의미가 심각하게 퇴색했다는 뜻이다.

실제 8개 금융공공기관 임원현황을 살펴보면 10명 중 4명이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상임기관장과 상임감사, 비상임이사 60명 중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만 23명(38.3%)에 달한다.

이계문 서금원장은 기획재정부 대변인 출신으로 2018년 내정됐을 당시 ‘퇴직자 챙겨주기’ 의혹이 불거졌다. 경력을 쌓은 분야가 주로 예산과 정책, 외환 분야로 서민금융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예탁원 신임사장에 이명호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 자리하면서 노조가 반발하기도 했다.

10명 중 4명이 낙하산 논란…청와대·정당·캠프 출신 수두룩

주요 보직으로 꼽히는 감사직에도 낙하산으로 분류된 이들이 대거 포진했다. 감사는 기관장(CEO)감시와 임직원 부패·비리·회계감독 등의 역할을 맡는다. 지난 3월 기업은행에서 임기를 시작한 정재호 감사는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20대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간사를 역임하다 차기 총선 출마가 불발된 후 감사직을 맡았다. 예보가 지난해 10월 임명한 이한규 감사는 전 민주당 정책실장이다. 조성두 서금원 감사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출신이다.

사외이사 중에는 청와대ㆍ정당ㆍ선거캠프 출신도 다수였다. 박영미 캠코 비상임이사는 더불어민주당 중구영도구 지역위원장을, 박상현 비상임이사는 민주당 부산시당 4·7 재보궐선거 공약단을 역임했다. 예보의 선종문 비상임이사는 19대 대선당시 문재인 후보의 정무특보 경험이 있다.

현행법이 느슨하고 통일된 규정이 없어 기관들이 충실히 이사회를 운영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공공기관이 주요회의를 하면 반드시 회의록을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발언요지’를 기록하게 돼 있어 구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어떤 발언이 오갔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시민단체들이 공공기관의 회의록 작성 서식 표준화와 상세한 기록화를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두루뭉술하거나 포괄적인 비공개 조항이 투명한 공개를 가로막는다는 비판도 많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은 의사결정을 비공개할 수 있는 조건을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정진임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적지 않은 공공기관에서 회의 관련 정보를 비공개로 판단해 시민의 정보접근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라며 "회의록과 회의참석자의 정보의 공개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재정비 돼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민간 금융지주사와 달리 금융 공공기관의 내부 지배구조나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감독이 부족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간 금융지주사의 경우 2018년 금융감독원이 이사회 역할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고 통보하자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지난해에는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가 형식적인 이사회 회의록 작성으로 ‘경영유의’ 조치까지 받았다.

전문가들은 민간 변화를 촉구하기 전에 공공기관이 먼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고 지배구조와 이사회 운영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 공공기관은 민간 금융사와 달리 국민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지금 이사회가 독립과 감시와는 거리가 먼만큼 투명하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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