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결정적 장면(7-1)] 오징어 게임을 위한 '용비어천가'

홍종선 입력 2021. 9. 29. 14:01 수정 2021. 9. 30.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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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포스터. 초록옷에 번호표를 붙이고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 빨간옷에 도형을 달고 감시하는 사람들. 빨강과 초록의 강렬한 보색 대비, 그들 모두 우리다 ⓒ이하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성취를 보고 가수 조용필과 영화 ‘취화선’, 드라마 ‘겨울연가’가 생각났다면 너무 원론적 얘기일까. 영화 ‘기생충’과 그룹 방탄소년단(BTS), 드라마 ‘킹덤’과 ‘스위트홈’이 연상된 건 물론이다.


지난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처음 공개된 ‘오징어 게임’(연출 황동혁, 각본 황동혁, 제작 ㈜싸이런픽쳐스)이 세계 1위의 정점을 찍었다. 지구촌 OTT(Over The Top·인터넷TV) 콘텐츠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은 월드랭킹을 집계한다. 어떤 콘텐츠가 한 국가에서 1위를 하면 10점, 2위를 하면 9점, 3위를 하면 8점을 주는 식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모든 국가에서 얻은 점수를 합산한다. 28일 현재, TV프로그램(쇼) 부문 1위에 오른 ‘오징어게임’의 합산 점수는 822점, 2위를 차지한 ‘섹스 에듀케이션’의 708점과 비교하면 인기가 어느 정도로 절대적인지 가늠된다.


456명이 시작하지만 점차 침대는 사라지마고 최후의 승자만 남는, 죽음의 게임 ⓒ

822점을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오징어 게임’은 집계 대상 83개국 중 한국과 아시아 각국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중동과 남미 등 세계 각지 76개국에서 1위에 오르며 760점을 획득했고, 이탈리아 등 6개국에서 2위(54점), 인도에서 3위(8점)를 기록했다. 83개국 전체에서 1위를 하면 얻을 수 있는 만점이 830점임을 감안하면, 겨우 8점만이 남았다. 뿐만이 아니다. 190여 개 국가에서 서비스 중인 넷플릭스 자체 랭킹 ‘오늘의 TOP 10’을 봐도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마치 영화 ‘기생충’(2019)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이듬해 미국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각본상·국제장편영화상 4관왕을 휩쓸었을 때, BTS가 지난 2018년 정규앨범 3집 ‘LOVE YOURSELF 轉 'Tear'’로 빌보드 200(앨범차트)에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 1위를 차지하고 다시금 2020년 노래 ‘Dynamite’로 빌보드 핫100(싱글차트)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쁨과 뿌듯함이 되살아오는 쾌거다.


001번에서 456번까지, 시작과 끝 .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다 ⓒ

가만 생각해 보면, 모든 일에는 갑작스러운 우연이 없다. 과거 땅을 갈고 흙을 골라 씨를 뿌리고 시간과 노력으로 가꾼 정성이 오늘에 이르러 필연으로 열매를 맺는다.


1982년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활약을 펼친 가수 조용필을 비롯해 그 전후로 해외 진출의 돌다리를 놓은 김연자, 계은숙, 장은숙, 강수지 등의 많은 가수가 있었다.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한류’라는 말이 생겨나며 배우들이 일본과 중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며 인기를 얻기도 했으니 류시원, 박용하, 윤손하 등은 일본에서 안재욱은 특히 중국에서 각광 받았다. 카라와 소녀시대 등의 걸그룹은 일본에서, 동방신기와 2PM은 중국에서 크게 사랑받았고 이후 빅뱅과 엑소 등 아이돌 그룹들은 아시안 전역으로 인기를 확장해 나갔다. 원더걸스는 일찌감치 미국으로 눈을 돌렸고, 슈퍼주니어 동북아로 시작해 아시아 전역을 넘어 미국까지 영역을 넓혔다.


이런 끝에 BTS가 나왔다. 시대적 흐름, 역사적 대세에서 귀결됐다는 얘기인데, 그렇다고 무조건 도래할 현실이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BTS가 지닌 특별한 재능과 매력이 일궈낸 성과이므로 귀한 존재들이다. 일찌감치 농사를 시작한 이들의 공과 끝내 열매를 맺은 이들의 공이 함께여야 가능한 ‘대단한’일이 K-팝 역사에 빚어지고 있다.


극중 표현을 빌리자면 '남탕' 속에서 존재감이 빛난 배우 김주령(한미녀 역)과 정호연(강새벽 역) ⓒ이하 출처=네이버 블로그 red-paprika

영화도 마찬가지다. 활동사진에 가까운 영화 ‘의리적 구토’(1919) 이후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마음을 달래면서도 문화적 예술성에 관한 끝없는 탐구와 철학적 도전을 쉬지 않았던 덕에 K-무비의 세계적 위상이 형성됐다.


그 과정에서 1971년 ‘화녀’(감독 김기영)의 윤여정, 1974년 ‘씨받이’(감독 임권택)의 강수연, 1988년 ‘아다다’(감독 임권택)의 신혜수, 1991년 ‘은마는 오지 않는다’(감독 장길수)의 이혜숙, 2002년 ‘오아시스’(감독 이창동)의 문소리, 2005년 ‘친절한 금자씨’(감독 박찬욱)의 이영애, 2007년 ‘밀양’(감독 이창동)의 전도연, 2009년 ‘박쥐’(감독 박찬욱),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감독 홍상수)의 김민희 등 많은 여자 배우가 국제영화제에서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감독들의 세계적 행보에 교두보를 놓은 건 한국적 영화로 승부를 건 임권택 감독이었다. 이미 1970년대부터 배우들의 세계적 수상을 일궜고, 차츰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영화 감독 개개인에게로 이어졌다. 2002년에는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칸)과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베니스)이, 2004년에는 ‘사마리아’의 김기덕 감독(베를린)이 감독상을 받았다. 같은 2004년에는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로 한국영화 역사상 국제영화제 최초의 그랑프리, 칸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세계적 제패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역사적이고 필연적 귀결이라는 얘기이고, 동시에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창작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므로 ‘종’과 ‘횡’이 절묘한 타이밍 속에 교차하며 빛을 발했다.


힘의 열세 속에서도 승리하는 법. 땅덩이 작은 나라의 콘텐츠가 세계 정상에 오르는 비결 ⓒ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후 K-콘텐츠의 인기는 국경 밖으로 확연히 넘어갔다. 영화계의 세계적 신장은 드라마 분야에서도 확인됐다.


2002년 국내 방영된 ‘겨울연가’(연출 윤석호)는 일본 팬들이 현지에서 드라마를 애청하다 못해 배우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대규모 팬미팅을 여는가 하면 한국을 방문해 촬영지를 관광명소로 만들었고, 아프리카 이집트까지 건너가 인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3년 방송된 ‘대장금’(연출 이병훈) 역시 동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몰이한 뒤 2007년 즈음에는 서아시아 이란 국영방송에서 시청률 90%의 신화를 쓰기도 했고, 중동 지역에서의 사극 열풍은 곧바로 ‘주몽’(연출 이주환·김근홍)으로 이어졌다.


드라마 2008년부터 해를 넘겨 방송된 ‘아내의 유혹’(연출 오세강)은 2011년 중국에서 ‘회가적 유혹’을 리메이크돼 인기를 이어갔고, 2013년 연말을 전후해 방송된 ‘별에서 온 그대’(연출 장태유)의 선풍적 인기는 중국인들을 한강 둔치에 불러들여 ‘치맥’(치킨에 맥주) 행사를 벌이게 했다. 2016년 방송된 ‘태양의 후예’(연출 이응복, 백상훈)는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가며 판로를 넓혔다. 이후 ‘태양의 후예’의 파트너 김은숙 작가-이응복 감독이 만든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의 대작들이 넷플릭스 플랫폼을 타고 세계의 시청자에게 도달했다.


추억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핏빛 생존게임 ⓒ

특히 김은희 작가가 배우 주지훈과 류승룡, 배두나를 주연으로 내세워 연작 중인 ‘킹덤’(연출 김성훈) 시리즈가 넷플릭스와 OTT 서비스의 개념을 한국에 대중화시키고 세계에 K-콘텐츠를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 영화 ‘끝까지 간다’ ‘터널’에 이어 드라마 ‘킹덤’에서도 스토리 전개와 영상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실력을 과시한 김성훈 감독은 ‘한국형 좀비물’ ‘K-좀비’라는 유행어를 낳으며 인터넷TV에 대한 평가를 높이는 신호탄을 쐈다. ‘킹덤’을 통해 커진 K-영상콘텐츠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은 이응복 연출의 ‘스위트홈’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21일 플릭스 패트롤 집계 기준 42개국에서 10위 안에 들었고, 8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미국 일일 랭킹에 처음으로 8위에 올랐다.


전작들의 피와 땀이 음으로 양으로 덕이 되어 ‘오징어 게임’의 성과에 이르렀다. 당연히 1위가 전부는 아니지만 기분 좋은 일인 것은 사실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일련의 과정’ 중에 수확한 열매의 하나라는 데 있다. 금세 2위도 3위도 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인이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만들면 우리나라가 아닌 세계 무대에 내놓는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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