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사상누각의 시간 앞에 선 중국의 축구굴기 10년 

서호정 기자 2021. 9. 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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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중국 축구는 5년 전만 해도 세계 축구의 새로운 발전소로 평가받았다. 2016년 겨울이적시장에서는 가장 비싼 거래 6개 중 5개가 중국 슈퍼리그에서 발생했다. 유럽과 남미의 유명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중국 무대로 향했다. 그 규모를 감지할 수 없는 슈퍼리그의 거대한 지갑은 끝없이 열릴 것만 같았다.


전국시대에 패권을 두고 다툰 제후국에 빗대 전국 7웅으로 불리운 슈퍼리그의 7개 빅클럽은 유명 선수 영입을 경쟁적으로 부추겼다. 광저우 헝다, 장쑤 쑤닝, 허베이 화샤싱푸, 상하이 상강, 상하이 선화, 베이징 궈안, 산둥 루넝으로 모두 연간 1,200억원이 넘는, 유럽 빅리그에서도 중상위권에 해당하는 예산을 쓰는 팀들이었다. 


상하이 상강이 2016년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영입한 헐크는 연봉만 250억원으로 당시 세계 축구 연봉 4위에 해당했다. 같은 연고지의 상하이 선화는 이에 자극받아 카를로스 테베스를 1년 뒤인 2017년 세계 최고 연봉인 350억원을 주고 데려왔다. 그들은 이미 2012년 여름에 디디에 드로그바와 니콜라 아넬카를 데려온 바 있었다. 테베스는 기대와 달리 태업으로 일관하다 1년 만에 팀을 떠났지만 그 뒤에도 상하이 선화가 데려온 선수들은 오디온 이갈로, 뎀바 바, 스테판 엘 샤라위 등이었다. 


허베이는 2015년 1부 리그 승격을 이끈 골잡이 에두를 좋은 선수지만 다른 팀에 비해 이름값이 떨어진다며 1부 리그에 올라오자 내쳤다. 그를 대신해 에세키엘 라베시, 제르비뉴, 스테판 음비아 등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에두를 허베이에 보내며 45억 원 가량의 이적료를 챙겼던 전북은 1년 뒤 그를 자유계약 신분으로 다시 영입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했다. 


이런 슈퍼리그의 화려한 씀씀이 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광저우 헝다였다. 2010년 헝다 그룹의 인수와 함께 그들은 그룹명처럼 '항상 큰' 영입을 해 냈다. 유럽에 진출하지 않은 최고의 남미 선수라던 다리오 콘카를 앞세워 슈퍼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를 정복하자 파울리뉴, 질라르디노, 호비뉴, 잭슨 마르티네스, 탈리스카 등 유럽에서도 A급으로 평가받던 선수들을 줄줄이 데려왔다. 감독도 이장수 감독에게 팀 빌딩을 맡기고 그 뒤에는 마르첼로 리피,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파비오 칸나바로를 선임했다.


헝다그룹은 축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최고 권력자의 마음을 샀다. 축구광으로 유명한 시진핑 주석이 축구굴기를 국가 경쟁력으로 육성하겠다고 외치자 헝다는 선수, 감독 등 인적 자원은 물론 거대한 전용경기장과 축구특색학교 등 인프라까지 돈을 쏟아부었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보고 싶다는 시진핑 주석의 말에 리피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보내고 브라질 국적 선수들을 귀화시키는 등 중국축구협회의 실질적인 후견인 역할까지 했다. 


현대판 시황제라는 별명이 있는 막강 권력의 시진핑 주석을 향한 헝다그룹의 노력은 확실한 보상을 받았다. 부동산과 건설이 주력 분야이던 헝다그룹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개발을 위한 토지 임대에서 정부의 불하를 받아야 했는데, 중국 정부의 헝다 밀어주기는 본격화 됐다. 쉬자인 회장은 전국인민대표회에서 상공위원으로 발탁됐고, 자본가로서는 유일하게 2019년 신중국 건국 70주년 행사, 지난 7월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며 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를 자랑했다. 


헝다그룹의 성공 케이스를 본 중국 내의 무수한 자본가들과 관영, 민영 기업들은 정치적 비호를 위해 최고 권력자의 취향에 맞춰 줄서기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슈퍼리그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2021년 현재 전국 7웅 중 장쑤 쑤닝은 지난해 슈퍼리그를 제패하고도 팀이 해체됐다. 전자제품유통업체인 모기업 쑤닝그룹의 위기 속에 창단 후 첫 우승의 영광을 누릴 새도 없이 증발했다. 새로운 다크호스로 등장했던 톈진 취안젠도 마찬가지다. 건강식품 판매로 막대한 부를 쌓으며 광저우 헝다를 능가하는 축구단을 운영하겠다던 청사진을 세웠던 취안젠그룹은 2019년 초 과장광고, 다단계 혐의로 일거에 공중분해됐다. 허베이 화샤싱푸 역시 부동산으로 재벌이 된 싱푸그룹이 올해 초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아직 구단은 유지되지만, 씀씀이는 크게 줄어 들었다. 


고속성장으로 보이지만, 실체는 사상누각인 중국 축구의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정치로 꽃 피운 축구판이 그 정치적 상황으로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광저우 헝다 이전에 중국 축구 최강자였던 다롄 스더는 스더그룹의 후견인이었던 보시라이 천 충칭시 당서기가 부패 혐의로 실각하자 재정 지원이 끊기며 결국 공중분해됐다. 


광저우 헝다의 경우 슈퍼리그 7연패를 달성할 당시 평균 관중이 4만5천명에 달했음에도, 한 해 적자가 800억원이 넘었다. 선수 인건비에 심각한 거품이 낀 인플레 현상의 대가였다. 유명 외국인 선수 뿐만 아니라 자국 국가대표급 선수도 이적료가 100억원을 넘어설 정도였다. 외부의 객관적 평가가 아니라 과열된 내부 경쟁으로 거품이 낀 것이다. 중국축구협회는 2018년부터 이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외국인 선수 영입 금액에 사치세를 매기고 선수 연봉 상한선을 만드는 등 거품을 끄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버블은 터진 상태였다. 


코로나가 몰고 온 경제 위기는 오버페이로 전 세계의 축구 인력을 흡수하던 중국 축구에 심각한 동맥 경화를 일으켰다.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인건비의 거품을 끌 틈도 없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해 오다가 이제는 부을 물이 없으니 독을 깨는 형국에 이르렀다. 


현재 슈퍼리그 내부에서 임금 체불이 없는 팀은 산둥 타이산(전 산둥 루넝), 상하이 하이강(전 상하이 상강) 정도로 알려졌다. 광저우FC로 이름을 바꾼 광저우 헝다는 그룹 부채만 300조원이 넘는다. 정부 당국에 의해 극적으로 구제가 되더라도 축구단 운영은 광저우시에 넘길 것으로 알려졌다. 28일에는 시즌 도중에 칸나바로 감독과의 계약 해지를 발표했다. 팀 최고참인 주장 정즈가 임시 감독으로 팀을 이끌지만 잔여 시즌도 제대로 참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 간 중국 축구는 거짓말 같은 변화와 성장을 일궈냈다. 열정을 넘어 광적이던 치우미(축구팬), 선수들의 폭력적인 플레이, 불법도박이 빚어낸 승부조작 등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세계적인 스타와 유명 감독과 함께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서는 성과를 냈다. 슈퍼리그라는 컨텐츠를 통해 미국에 맞서는 거대한 국가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 10년은 사상누각, 흥망성쇠의 시간에 접어들고 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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