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아이콘'으로 스타덤 오른 그녀의 치명적 약점

양형석 2021. 9.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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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유명 그래픽 노블 실사화한 <씬 시티>

[양형석 기자]

만화의 가장 큰 매력은 표현의 한계가 없다는 점이다. 전설의 만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은 피콜로 대마왕의 분신을 무찌르기 위해 피콜로와 똑같이 생긴 신에게 수련을 받고 사이어인의 침공 때는 '신들의 신' 계왕에게 수련을 받는다. <드래곤볼>은 마인부우편에서 계왕신의 등장과 함께 어떤 충격에도 손상이 가지 않는 계왕신계가 나오고 손오공은 '순간이동'으로 계왕신들만의 영역인 계왕신계를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이런 복잡한 만화의 설정들을 영화를 통해 '실사화'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009년 <드래곤볼 에볼루션>이라는 영화가 개봉하며 원작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결과는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드래곤볼 에볼루션>은 북미에서 천만 달러의 흥행성적도 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어떤 이는 '드래곤볼 7개를 모아서 이 영화의 존재를 지우고 싶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그래픽노블 작가 프랭크 밀러의 만화들 역시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와 독창적인 묘사 때문에 실사화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스파이 키드>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프랭크 밀러의 만화를 실사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로드리게즈 감독은 2005년 원작자 프랭크 밀러를 공동 감독으로 모시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씬 시티>를 실사 영화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제작비의 3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씬 시티>는 유독 국내 극장가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 쇼이스트
 
제시카 알바의 '리즈 시절'

원작자 프랭크 밀러와 연출자 로버트 로드리게즈, 한물간 배우였다가 <씬 시티>를 통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미키 루크를 비롯한 주요 배우들까지. 영화 <씬 시티>에서 저마다 깊은 사연을 가진 인물들은 아주 많다. 하지만 역시 그 시절 가장 뜨거운 전성기를 보내며 할리우드의 '섹시 아이콘'으로 군림하던 제시카 알바야말로 <씬 시티>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이다.

90년대 중반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던 제시카 알바는 2000년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한 드라마 <다크 엔젤>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3년 댄스영화 <허니>에서 남다른 춤실력을 뽐내며 주목 받은 알바는 2005년 <씬 시티>에서 낸시 역에 캐스팅됐다. <노란 녀석>편에서 매력을 발산한 알바는 <씬 시티>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활약했고 <씬 시티>는 세계적으로 1억5800만 달러의 쏠쏠한 흥행성적을 올렸다.

<씬 시티>에 등장하는 3가지의 에피소드 중 하나에만 출연했을 뿐이지만 알바의 매혹적인 모습은 전세계 남성 팬들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알바는 같은 해 <판타스틱4>에서 수잔 스톰을 연기하며 생애 처음으로 북미 1억 달러를 돌파하는 흥행배우가 됐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알바가 연기한 수잔 스톰의 동생 쟈니 스톰은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가 연기했다(캡틴을 연기할 때와는 달리 '발랄한' 에반스의 연기가 꽤나 인상적이다).

알바는 <씬 시티>와 <판타스틱4>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지만 그녀에게는 심각할 정도의 '발연기'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알바는 <판타스틱4>를 시작으로 2010년 <킬러 인사이드 미>까지 6년 동안 무려 5번이나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수상은 1회). 그렇다고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좋은 편도 아니어서 인지도에 비해 히트작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한 때 야구선수 데릭 지터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던 알바는 지난 2008년 <판타스틱4>의 조감독이었던 캐시 워렌과 결혼해 슬하에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아이 셋을 낳았음에도 여전히 완벽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는 알바는 많은 여성들의 워너비 스타지만 정작 배우로서는 완전히 꽃을 피우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알바는 지난 2019년에도 범죄 스릴러 <킬러 스쿼드>에 출연했지만 북미에서는 개봉조차 하지 못했다.

원작의 느낌에 영화적 매력을 더한 연출
 
 <씬 시티>의 히로인 제시카 알바(왼쪽)는 줄리아 로버츠나 안젤리나 졸리 같은 슈퍼스타로 성장하진 못했다.
ⓒ 쇼이스트
 
<씬 시티> 원작은 전체적인 흑백화면에 제한적인 컬러 처리로 무법 도시 씬시티의 어두운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로드리게즈와 프랭크 밀러 감독은 영화 <씬 시티>에서도 흑백화면을 고집하면서 원작의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다. 실제로 <씬 시티>는 대부분의 장면을 그린 스크린을 통해 촬영 후 CG를 입혀 합성하는 방식으로 촬영했다. 많은 합성과 특수효과, CG가 사용됐음에도 제작비를 4000만 달러에 맞춘 것은 로드리게즈 감독의 능력 덕분이다. 

<씬 시티>는 4가지의 에피소드를 옴니버스로 묶어 연결한 작품이다. 프롤로그인 <고객은 언제나 옳다>가 끝나면 브루스 윌리스와 제시카 알바가 등장하는 <노란 녀석>이 이어진다. <노란 녀석>은 26년의 나이를 뛰어넘은 브루스 윌리스와 제시카 알바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지만 관객들은 다소 잔인한 비주얼에 놀라기도 한다. 어차피 <씬 시티>는 런닝 타임 내내 이런 분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영화의 수위에 빨리 적응할 필요가 있다.

<노란 녀석>에 이어 미키 루크가 등장하는 <하드 굿바이>가 이어진다. 프로 복서 출신으로 8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가이였던 이미지가 사진린 미키 루크의 모습은 복수심으로 똘똘 뭉친 영화 속 마브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친다. 특히 마브의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잔인한 복수는 <씬 시티>에서 가장 잔인하면서도 통쾌한 장면이다. 미키 루크와 일레이저 우드의 결투 장면은 두 배우가 따로 촬영하고 합성을 통해 연결해 만들었다.

<씬 시티>를 액션 영화로 구분한다면 가장 통쾌한 에피소드는 클라이브 오언과 베니치오 델 토로가 나오는 마지막 에피소드 <도살의 축제>다. 사진작가 드와이트(클라이브 오웬 분)와 매춘부 집단, 경찰, 마피아, 용병들이 벌이는 피의 전쟁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씬 시티>에서 가장 많은 총알이 등장한다. 특히 영국과 일본계 혼혈배우 드본 아오키가 연기한 미호는 칼과 총, 화살 등을 이용해 다양하고 화려한 움직임을 통해 액션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너무 자극적이고 잔인한 표현방식이 문제였을까. 국내에서 2005년 6월에 개봉했던 <씬 시티>는 화려한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전국 관객 35만에 그치며 흥행 참패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9년 만에 제작된 속편 <씬 시티: 다크 히어로의 부활> 역시 브루스 윌리스, 제시카 알바 등 기존 출연진에 에바 그린, 조셉 고든 레빗이 합류했음에도 세계적으로 3900만 달러의 수익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했다(국내 관객은 8만).

<터미네이터>의 존 코너, <씬 시티>의 노란 녀석으로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를 연기했던 일라이저 우드는 <씬 시티>에서 끔찍한 살인마로 변신했다.
ⓒ 쇼이스트
 
<씬 시티>는 각 에피소드를 이끄는 브루스 윌리스와 미키 루크, 클라이브 오언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악역들의 존재감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 <노란 녀석>에서는 낸시(제시카 알바 분)를 납치하고 감금, 폭행한 로아크 주니어(닉 스탈 분)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11살의 어린 낸시를 납치해 몹쓸 짓을 하려다가 하티건 형사(브루스 윌리스 분)에게 거세를 당한 로아크는 이에 앙심을 품고 8년 후 댄서로 성장한 낸시를 다시 납치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납치하는 악당의 최후는 어느 영화에서나 같은 법이다. 하티건은 낸시가 감금된 로아크의 거처를 찾아내고 더욱 조용하고 잔인하게 '노란 녀석'에게 응징을 가한다. 노란 녀석을 연기한 배우 닉 스탈은 2003년 <터미네이터3: 라이즈 오브 더 머신>에서 존 코너를 연기하며 주목 받았던 배우다. 하지만 <씬 시티> 이후 이렇다 할 대표작을 만나지 못했고 최근에는 <O.J. 심슨 사건 파일>에 출연했다.

관객들이 가장 싫어했던 악역이 '노란 녀석'이었다면 관객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악역은 단연 <하드 굿바이>의 케빈(일라이저 우드 분)이었다. 마브가 삶에서 위안을 얻은 골디(제이미 킹 분)를 살해한 끔찍한 살인마이자 식인종이기도 한 케빈은 엄청난 스피드를 앞세워 마브를 무력화시킨다. 마브는 작전을 세우고 갖가지 도구를 이용해 케빈의 손을 묶은 후에야 케빈에게 복수의 펀치를 날릴 수 있었다.

짧은 출연 분량과 한마디도 없는 대사에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던 케빈은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 프로도를 연기했던 일라이저 우드가 연기했다. <반지의 제왕>이 남긴 임팩트가 워낙 강해 기대만큼 대형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TV와 영화, 애니메이션 목소리 출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자로도 활약하며 활동 역역을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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