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이순재 "'리어왕' 내 필생의 작품될 것.. 원전에 충실"
3시간20분간 단독 캐스트
"이제 리어왕 이해할 나이"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오만함과 어리석음이 초래하는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딸들에게 사랑 경쟁을 시키며 땅을 나눠줄 정도로 힘셌던 80세의 늙은 왕은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미치광이가 된다.
이 작품은 ‘맥베스’ ‘햄릿’ ‘오셀로’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으로 꼽힌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극작가 버나드 쇼가 “‘리어왕’보다 훌륭한 비극은 없다”고 했을 정도. 젊을 땐 햄릿 역을 선망하던 배우들도 나이가 들면 리어왕 역에 욕심을 낸다. 한국의 국민배우 이순재(87)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순재가 몇 년 전 TV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역할로 리어왕을 꼽은 것을 본 극단 관악극회의 윤완석 대표는 올해 이순재의 연기 인생 65주년을 기념해 ‘리어왕’(30일~11월 2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을 올리기로 했다. 관악극회는 2011년 서울대 연극 동문회가 만든 극단으로 이순재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국민배우를 기리기 위한 프로젝트에 예술의전당이 공동 주최로 참여하면서 판이 커졌다. 중견배우 박용수 최종률 유태웅과 함께 TV에서 주로 활동하던 소유진 오정연 이연희 등도 이름을 올렸다.
이순재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앞으로도 연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연극 ‘리어왕’은 필생의 마지막 주요 작품이 될 것 같다”며 “60년 넘게 연기를 했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못 해 봤다. ‘이제 더 하고 싶은 역할이 뭐냐’고 묻길래 늙은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연극은 ‘리어왕’ 아니겠냐고 답한 게 공론화돼서 이렇게 공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로서 최고의 행운은 좋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라며 “리어왕 역을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리어왕’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최대한 살린다. 연출가의 현대적인 해석 등 여러 사정에 따라 대사를 빼거나 압축하는 사례가 많지만, 이번엔 원전의 대사를 그대로 옮긴다. 이순재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매력은 대사에 있다. 그런데, 요즘 작품들을 보면 원전대로 한 사례를 거의 못 봤다. 전체 공연시간이 3시간 20분 정도 나오지만 원전대로 해 보자고 했다. 의상이나 분장 등도 원전에 충실하다”고 말했다.
원전대로 무대화하기 위해 국제셰익스피어학회 부회장, 국제 학술지 ‘멀티컬처럴 셰익스피어’(Multicultural Shakespeare) 자문위원 등을 역임한 이현우 순천향대 교수가 대본의 번역은 물론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 이 교수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몇 차례 연출한 적도 있다.
이 교수는 “학자들 사이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의 예술적 정점을 꼽으라고 했을 때 절반은 ‘맥베스’를 꼽고 절반은 ‘리어왕’을 꼽는다”며 “‘리어왕’은 대작이면서도 구성이 군더더기 없이 잘 짜였다. 매력적인 캐릭터도 여럿이면서 각각 뚜렷한 존재감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쓸 때 흑사병이 만연했고, 대사에도 흑사병 얘기가 나온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리어왕’이 전염병 시대를 사는 현재 우리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3시간 20분 정도인 이번 작품을 이순재는 단독 캐스트로 23회 모두 소화한다. 이순재는 “사실 내 나이 등을 생각하면 만용이지만 아직은 건강하기 때문에 괜찮다”면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하듯 배우의 책임이 크다. 일단 막이 열리면 배우가 오롯이 작품을 끌어가야 한다. 반복된 연습으로 대사가 입에 녹아들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선 리어왕의 막내딸 코딜리아가 광대 역할까지 한다. 프랑스 왕비가 된 코델리아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다시 영국으로 건너오는데, 최후의 승리 직전 언니들에게 포로로 붙잡혀 죽는다. 리어왕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광대는 어느 순간 사라지는데, 연출을 맡은 이 교수는 코델리아가 광대로 분장했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셰익스피어 학자들 사이에서 ‘리어왕’의 수수께끼로 생각하는 게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게 코델리아가 죽은 후 ‘내 광대(fool)가 죽었다’는 리어왕의 대사다. 이를 코델리아의 애칭으로 보고 ‘내 바보’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지만 이번엔 원전 그대로 ‘내 광대’로 봤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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