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츄리닝, 개성 말살된 현대사회의 개인 상징"

나원정 2021. 9. 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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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은 27일 OTT 콘텐트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 집계 결과 76개국 넷플릭스에서 많이 본 드라마 1위에 올랐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감독 황동혁)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책임자(CEO)가 27일 ‘오징어 게임’ 인기에 대해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할 정도다. 서랜도스는 이날 IT 전문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와의 대담에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오늘의 톱 10’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공개 후 9일이 지난 지금 추이로 보면, 넷플릭스의 비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이 말했다. 코드 컨퍼런스는 일론 머스크, 리사 수, 사티아 나델라 등 글로벌 기업 리더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시대의 흐름에 대한 토론을 나누는 행사다.

앞서 넷플릭스의 다른 공동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창립자)는 다른 스타일로 ‘오징어 게임’의 흥행기운에 올라탔다. 게임 속 등장인물들의 복장인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본인이 ‘457번’ 게임 참가자임을 인증해 보인 것. 이 드라마 열풍 속 핵심 소재가 단체 운동복이어서다. 등장인물들이 유니폼 형태의 단체복을 입는 건, 국내 극장가 흥행 1위 영화 ‘보이스’(감독 김곡·김선)도 마찬가지다.

‘ 보이스’에선 기업화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실체가 작업복을 맞춰 입은 대규모 직원들의 분업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사진 CJ ENM]

지난 15일 개봉해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킨 ‘보이스’에선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국 본거지 콜센터 직원들이 붉은 점퍼를 입고 있다. ‘오징어 게임’엔 살인 서바이벌 게임의 참가자 456명과 그들을 감시하는 ‘일꾼’들이 각각 초록색 체육복과 핑크색 방호복을 입어 강한 대비를 이룬다.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의 ‘츄리닝’과 ‘보이스’ 콜센터 직원들의 작업복엔 이탈자를 쉽게 파악하도록 큼직한 고유 번호가 적혔다. 인물들이 ‘한 몸’처럼 보이게 하는 시각적 압도감을 주고, 시청자 혹은 관객도 그 옷을 입으면 같은 입장에 서게 될지 모른다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특히 ‘오징어 게임’ 참가자 츄리닝은 이미 글로벌 쇼핑 사이트 아마존에 판매상품이 나왔을 만큼 화제다. ‘오징어 게임’을 각본·연출한 황동혁 감독과 ‘보이스’의 최의영 의상 감독에게 27일 각 작품의 유니폼 비화를 들었다.

넷플릭스 공동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오징어 게임’ 참가자 의상 인증샷. [사진 넷플릭스]

“이 정도 반응은 예상 못 했다. 작품에 나오는 소품·의상·노래·놀이까지 쏟아지는 관심에 놀라고 감사하고 있다”는 황 감독은 “참가자들과 진행요원 모두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군집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했다. “우리는 개성이 말살돼 가는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아를 잃어가고 어디서나 직함이나 그가 하는 일로 불린다. 이 단체복은 개성이 말살된 현대사회의 개인들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옷을 통해 주제가 가장 잘 표현된 대목으론 등장인물들이 “개미떼”처럼 줄지어 이동하는 장면을 꼽았다.

‘오징어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등 동심의 놀이를 서바이벌 게임에 접목한 작품. 어린 시절 추억을 되살린다는 콘셉트에 맞춰 황 감독은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입었던 체육복 색깔 초록색을 소환했다. 일꾼 점프수트는 원래 보이스카웃 복장으로 하려다 의상감독과 자료사진을 살펴보던 중 공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 사진에 영감을 받아 선정했다고 한다.

가면 뒤에 숨어 무자비한 살인을 일삼는 일꾼들의 의상은 그런 행태와 상반되는 ‘핫핑크’를 일부러 골랐다. “부드럽고 익살스러우며 천진난만한 아이스러움이 느껴지는 색인 데다, 초록색과 대비도 인상적이었다”는 곳. “운동회에 참가한 아이들과 놀이동산 안내자의 대비라고 보면 된다”면서다. 게임을 총지휘하는 대장의 가면과 의상은 ‘스타워즈’ 악당 다스베이더의 오마주. “약간의 인격을 부여하는 가면이면서도 뒤에 준호와의 사연이 있어 더 어울릴 것 같았죠.”

‘보이스’에선 유니폼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덩치’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됐다. 김곡·김선 감독은 개봉 전 간담회에서 “보이스피싱은 여전히 그 실체가 다 파악되지 않아 형사들에게 전해 들은 제한된 정보를 바탕으로 상상으로 구현했다”고 했다. 극중 콜센터가 하루 수백억원이 오가는 범죄 공간인 만큼 외부와 단절되고 통제된 공간이란 설정이다.

최의영 의상감독은 “극 중 범죄 공간이 버려진 마트란 설정 아래 마트 작업복의 개념으로 접근했다”면서 “통일된 복장과 규모감이 주는 공포를 염두에 두고 의상을 디자인했다”고 했다. 유니폼의 붉은 색감은 “돈에 환장한 그들의 열망·열기를 나타낸 것”이다. 콜센터가 초토화된 장면에선 이런 강렬한 색감의 인물 군집이 흐트러지면서 그 혼란상이 강조되는 효과도 냈다.

등장인물의 유니폼이 눈길을 끈 사례론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넷플릭스 스페인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이 대표적이다. 이 범죄 드라마 속 인질범 주인공들의 빨간색 점프수트와 살바도르 달리 가면은 지난해 할로윈 의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최 의상감독은 “규제와 통제에 맞선 혼란을 주는 장치로 통일된 유니폼 복장이 많이 활용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작품을 보는 이들도 그 옷을 입으면 그들의 일원이 될 것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며 유니폼의 ‘동일시 효과’가 주는 몰입감을 짚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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