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패러다임 시프트..'규모'에서 '고효율'로 2라운드 전쟁

김경민, 배준희 2021. 9. 2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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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경쟁도 후끈 달아올랐다. 일본 토요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를 공개하자 완성차 업체마다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금까지는 배터리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해 ‘규모의 경쟁’을 벌였다면 이젠 고효율 배터리 기술 선점을 두고 경쟁하는 배터리 전쟁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토요타자동차는 최근 자사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고체 배터리로 달리는 전기차 모습을 공개했다. “정식으로 번호판을 받은 세계 최초 전고체 배터리 장착 프로토타입 자동차”라고 소개했다. 토요타는 배터리 생산, 개발을 위해 2030년까지 1조5000억엔(약 16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승부수 던진 토요타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 세계 최초 공개

한동안 전기차 시장에서 토요타는 ‘지각생’으로 불려왔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 공략에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도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차에 집중했다. 지난 7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전고체 배터리 자동차를 공개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최소한의 시제품도 선보이지 않아 기술 개발이 한참 더딘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쏟아졌다. 하지만 조용히 칼을 간 토요타는 세계 최초 전고체 배터리 자동차를 전격 공개하면서 글로벌 배터리 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의 액체 상태 전해질을 고체 형태로 바꾼 차세대 배터리다. 액체 전해질을 쓰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 접촉을 방지하는 분리막이 들어가는데,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이 분리막 역할까지 대신한다. 덕분에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 1회 충전으로도 주행 거리를 800㎞ 이상으로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 전해질이 액체가 아닌 고체라 온도에 영향을 적게 받아 폭발, 화재 위험성이 낮다는 점도 매력이다.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안감이 커진 만큼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하면 이런 걱정을 덜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절반 수준으로 크기를 줄이고 얇게 만들어 구부릴 수도 있어 공간 활용성이 높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GWh 수준인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은 2030년 135GWh로 70배가량 커질 전망이다. 이창민 KB증권 애널리스트는 “폭스바겐, 노스볼트, BMW, GM 등이 이르면 2025년, 늦어도 2027년에는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기술력을 앞세워 배터리 시장 선두 굳히기를 노린다. 사진은 충북 오창 전기차 배터리 공장 생산라인에서 엔지니어들이 배터리셀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LG에너지솔루션 제공>

▶韓, 투트랙 전략으로 선두 굳히기

▷日 전고체로 점프, 中 원가 경쟁력 앞세워

토요타가 전고체 배터리를 전격 공개하면서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3사가 글로벌 배터리 업계 5위권에 포진하면서 세계 배터리 산업을 이끌어왔지만 향후 기술력에서 밀릴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의 차세대 기술력은 물론이고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는 CATL 등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까지 함께 이겨내야 하는 절체절명 상황을 맞았다.

한국 업체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 패권을 주도할 수 있을까.

국내 배터리 업계는 리튬이온에 주력하되 차세대 배터리 양 산을 노리는 ‘투트랙’ 전략을 편다. LG에너지솔루션은 리튬황 배터리를 2027년 양산한다는 목표로 관련 기술을 개발 중이다. 리튬황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가볍고 희귀 금속을 쓰지 않아 가격 경쟁력이 높다. 리튬황 전지는 리튬이온 전지에 사용하는 니켈, 코발트 등 희소 금속 대신 매장량이 풍부 한 황을 쓴다. 덕분에 생산 비용이 저렴하고 최대 에너지 밀도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4배 이상이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 승부수를 걸 계획이다. 국내 배터리 업체 중 전고체 배터리 기술에서 상대적으로 앞선 덕분이다. 2027년 이후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목표로 세웠다. 삼성종합기술원 주도로 전고체 전지 상용화의 핵심 과제인 ‘덴드라이트(Dendrite·수지상결정)’ 생성을 억제하는 원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왔다. ‘덴드라이트’ 현상은 배터리를 충전할 때 리튬이 음극 표면에 적체하며 나타나는 나뭇가지 모양의 결정체를 뜻한다. 이 현상이 나타나면 리튬이 음극 표면에 쌓여 배터리 분리막을 서서히 훼손해 배터리의 수명·안전성이 낮아진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이미 지난해 3월 덴드라이트 생성을 억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혀 주목받았다.

후발 주자인 SK이노베이션 역시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속도를 낸다. SK이노베이션은 리튬이온 배터리 시대를 연 인물이자 2019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존 구디너프 미 텍사스대 교수와 공동연구 등을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기술력은 삼성SDI에 밀린다는 평가다.

이에 맞서는 중국 공세도 만만찮다. 중국은 일단 ‘원가 경쟁력’이라는 기존 강점을 높이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글로벌 배터리 1위 업체 CATL은 경쟁사 대비 원가 경쟁력에서 비교 우위를 갖췄으나 기술력이나 실질적인 점유율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 최고’로 꼽히는 분위기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비중은 50%에 달한다. CATL은 자국 시장에서 딱 이 정도 점유율을 확보했다. 달리 말하면, 중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확연히 앞서 있다는 의미다. CATL과 LG에너지솔루션 간 기술력 격차도 상당하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해 말 기준 배터리 특허 건수를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은 2만3610건으로 CATL(2221건)보다 10배 이상 많다.

하지만 결코 안심할 때는 아니다. 국내 업체가 주로 채택해온 삼원계 배터리에서 불거진 잇단 화재 사고는 중국 업체가 선호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위상을 바꿔놨다. LFP 배터리는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주력으로 만드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등 삼원계 배터리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제조원가가 30%가량 저렴하다. 폭발 위험성도 LFP 배터리가 삼원계 배터리보다 상대적으로 낮다. 이를 두고 본 CATL은 LFP 배터리 원가 경쟁력을 더욱 탄탄하게 다지는 데 주력한다. 최근에는 자체 개발한 1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까지 공개해 한국 기업에 맞불을 놨다. 나트륨 이온 배터리는 기존 리튬 기반 배터리보다 더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주행 거리가 짧지만 CATL은 “제조 공정 고도화로 이를 보완하겠다”며 승부수를 던졌다. 단기간 시장점유율 측면에서는 안전성 부담이 덜한 중국의 추격이 위협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본은 순수 전기차 시장 진입이 한발 늦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이 필요하지 않은데, 기존 완성차 밸류체인은 여러 부품 업체가 얽히고설킨 선단식 구조여서 외부의 급격한 변화에 취약했다. 그랬던 토요타가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를 깜짝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다만 아직까지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토요타는 전고체 배터리의 상세한 스펙이나 양산 계획 등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달았지만 전고체 배터리 주행 거리, 성능이 얼마나 높을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양산 경쟁력에 대해 물음표를 다는 시선이 팽배하다.

배터리 핵심 소재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포스코케미칼은 최근 6000억원을 투자해 연산 6만t 규모의 포항 양극재 공장을 신설하기로 하는 등 양극재 시장 공략에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중국 음극재 1위 기업인 BTR과 양극재 합작사 설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SK머티리얼즈와 SKC도 양극재 사업 진출을 검토 중이다.

국내 기업들이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든 것은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양극재 등 배터리 핵심 소재 부족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양극재는 배터리 4대 핵심 소재(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 중 원가 비중이 가장 높다.

다만 아직까지 글로벌 양극재 시장에서 한국 기업 점유율은 미미하다. 벨기에 유미코어, 일본 스미토모메탈마이닝, 일본 니치아, 중국 XTC, 중국 산산 등이 상위권을 형성하는 가운데 포스코케미칼을 비롯한 국내 업체는 양극재 시장점유율이 10위권 수준에 그친다.

배터리 업계 기술 경쟁과 맞물려 완성차 업계의 내재화 흐름도 무시 못할 변수다. 여기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이 ‘트리거’가 됐다. 토요타에 앞서 테슬라와 폭스바겐은 진작에 배터리 내재화를 선언했다. 테슬라는 ‘반값 배터리’를 위해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를 자체 개발 중이다. 주요 원자재인 리튬을 확보하기 위해 최근 호주 광산 업체와 5년간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폭스바겐은 내년 독일에 첫 번째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는 등 배터리 개발·생산에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현대차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내재화를 목표로 남양연구소 내 연구개발(R&D) 조직을 확대했고 메르세데스-벤츠는 배터리 자체 생산을 위해 고삐를 죄고 있다.

▶한국 배터리 경쟁 이기려면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 적극 대응

한국 기업이 글로벌 배터리 산업을 주도하려면 유관 산업과의 협력 확대를 통한 배터리 기술 선점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토요타는 파나소닉과의 합작을 통해 “내년까지 배터리 가격을 50% 낮춘 ‘반값 배터리’를 내놓겠다”고 공세를 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도 OEM 업체와 배터리 업체의 합작회사 설립 등 신형 배터리 개발을 위한 협업 체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토요타와 파나소닉이 합작회사를 설립했을 뿐 아니라 전기전자·화학 회사 간 협업이 가속화되는 만큼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밝혔다.

배터리 원자재 공급망 안정화도 풀어야 할 숙제다. 무엇보다 희귀 원료나 희토류에 대한 대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코발트, 니켈, 망간 등은 자원이 부족하고 고가일 뿐 아니라 희토류는 확보하기조차 어렵다. 배터리 양극재 필수 원료인 리튬 가격은 2012년 대비 2배 이상 올랐다. 이를 두고 본 테슬라는 리튬이 풍부하게 매장된 미국 네바다 지역 점토 부지 1만에이커(약 41㎢) 개발 권리를 확보한 데 이어 점토 광물에서 리튬을 선별 추출하는 신규 특허까지 출원했다. 사공목 연구위원은 “희귀 광물이나 희토류의 광산 개발을 통해 자급률을 높이고 대체 기술 개발, 조달선 다변화 등 배터리 공급망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기술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각국의 보호주의 움직임도 눈여겨봐야 한다. 중국은 이미 수년째 자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과 세금 혜택을 적용해왔다. 최근 미국은 사실상 자국 기업의 전기차만 지원하는 세법 개정안을 추진해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유럽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도 필요하다. 국내 기업이 현지 진출로 공급망 안정을 꾀해 이들 국가와 결속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미국, EU 등 현지 진출 확대는 대규모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다양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받아 해외 투자 리스크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터리 화재 사고가 잇따르는 만큼 배터리 안전 우려,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국내 배터리 3사가 글로벌 신규 시장에 잇따라 진출해 시장점유율을 높여왔지만 최근 잇따른 화재 사고와 리콜은 배터리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재무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배터리 리사이클링 기술 확보와 신흥국의 전기차 보급에 따른 배터리 시장 선점 노력도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조언이다.

배터리 대장주 누가 될까

악재 겹친 LG화학…삼성SDI 우세 전망

‘배터리 대장주’ 자리를 두고 LG화학과 삼성SDI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리콜 사태와 물적분할 등 이슈가 겹친 LG화학 열세가 예상된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이후 삼성SDI와 LG화학은 배터리 대장주 자리를 놓고 경합 중이다. 지난 9월 23일에는 GM에 배터리 공급을 재개한다는 소식에 LG화학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다. 당분간은 LG화학 주가가 상대적으로 열세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배터리 리콜 사태와 물적분할 이슈 등이 주가 상승을 억누르고 있어서다. LG화학은 배터리를 납품한 미국 GM 전기차 볼트에 이어 폭스바겐 ID.3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안전성 우려를 키웠다. 이 여파로 충당금 우려가 불거지며 LG화학의 이익 전망에 경고등이 켜졌다. 리콜 사태로 LG화학 배터리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 상장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상대적으로 삼성SDI 주가는 견조하다. LG화학 배터리 문제가 부각되자 삼성SDI로 매수세가 대거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공장 증설을 예고한 것도 실적 성장 기대감을 키워 시장에서는 호재로 읽혔다. 콘퍼런스콜에서 손미카엘 삼성SDI 전무는 “2025년부터 전기차 부품을 역내 생산할 수밖에 없게 돼 미국 진출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SDI는 물적분할 이슈에서도 자유롭다. 서로 이질적인 사업부가 뒤섞여 있던 LG화학과 달리 삼성SDI는 배터리 사업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별도 상장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삼성SDI 영업이익은 1조1694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7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캪G화학이 충당금을 쌓는다면 삼성SDI가 배터리 3사 중 가장 많은 EBITDA(현금흐름 대용치)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민 기자,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7호 (2021.09.29~2021.10.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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