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채 에코프로그룹 회장, 회계사 접고 창업 23년 만에 10조 잭팟

명순영 입력 2021. 9. 28. 21:18 수정 2021. 11. 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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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프로비엠’이라는 회사 이름이 무척 생소할 수 있다. 배터리 부품 제조사 에코프로비엠은 전형적인 B2B (Business to Business) 기업이다. 대기업이 고객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이 회사를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주식 투자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다면 최근 이 회사 주가가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올랐는지 알 수 있다.

불과 2년 전인 2019년 9월 4만원대였던 주가는 지난 9월 17일 46만9700원을 찍었다. 2년 새 무려 10배 넘게 올랐다. 최근 1년만 따져도 4배 가까이 뛰었다. 바이오 기업이 주류인 코스닥에서 시가총액 10조원대로 당당히 2위를 기록 중이다.

에코프로비엠 이름을 각인시킨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SK이노베이션과 2024년부터 3년간 10조1100억원대 계약을 맺었다. 그야말로 ‘잭팟’을 터뜨린 것이다. 에코프로비엠이 어떤 회사길래 코스닥을 장악하고, 대기업이 먼저 찾아오는 경쟁력을 갖추게 됐을까.

에코프로비엠은 공인회계사 출신 이동채 회장(62)이 1998년 설립한 배터리 양극재 회사다. 양극재는 2차 전지 내 에너지를 저장·방출하는 역할을 한다. 배터리 원가 5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이 회사는 2016년까지만 해도 매출 1000억원이 안 되는 중소기업이었다. 양극재 기술이 올라설 때까지는 매출이 시원치 않았다.

에코프로비엠은 고성능 배터리에 사용되는 하이-니켈(High-Nickel) 양극재에 집중했다. 양극재 주성분인 니켈, 코발트, 망간 중 니켈 비중을 높인 하이-니켈 배터리는 성능은 뛰어나지만 안정성이 낮아 제조하기 어려운 배터리로 꼽혔다. 이 회장은 10년간 개발에 매달려 세계 최고 수준의 하이 니켈 양극재 기술을 이뤄냈다. 이후로는 탄탄대로였다. 삼성과 SK 등 대기업이 앞다퉈 줄을 섰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며 에코프로비엠 양극재가 없어서는 안될 필수 부품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959년생/ 영남대 경영학과/ 한국주택은행/ 산동회계법인 KPMG 근무/ 1998년 에코프로 사장/ 2016년 에코프로 회장(현)

▶은행서 일하다 회계사 취득

▷첫 창업 실패에도 도전…양극재 신화

이동채 회장은 직장인으로 일하다 창업해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대구상고를 졸업한 그는 은행원(주택은행)으로 취직한 뒤 영남대를 야간에 다니며 꿈을 키웠다. 하지만 은행은 대졸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퇴사 후 재입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은행을 나왔고 삼성그룹에 입사했다. 하지만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 퇴사한 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1984년부터 6년간 회계법인에서 일했다. 회계법인에서 적잖게 돈을 모았다. 하지만 내면에는 창업 DNA가 흐르고 있었다. ‘1만명을 먹여 살리는 기업인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1996년 사업을 시작해 모피 사업에 재산 대부분을 투자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는 바로 일어섰다. 1997년 우연히 읽게 된 뉴스가 그의 기업가정신에 다시 불을 지폈다. ‘교토의정서 체결’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지구 온난화는 세계의 문제고 산업이 구조적으로 바뀔 것이라 직감했다.

1998년 서울 서초동 골목 내 건물 4층에 있는 10평짜리 단칸 사무실을 차렸다. 직원은 이 회장과 이전 수출입 사업에서 함께한 직원(최선미 에코프로 이노베이션 경영지원팀장), 단 두 명이었다.

처음에는 환경 소재 사업과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요한 케미컬 필터 등을 개발해 생산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던 중 2004년 정부가 주도해 만든 ‘미래 성장동력-초고용량 리튬 2차 전지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됐다. 여기서 제일모직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제일모직과 공동으로 양극재의 원재료가 되는 전구체 사업을 했다.

진짜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06년, 그의 나이 47세였을 때였다. 제일모직이 전구체뿐 아니라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양극재 기술과 영업권을 인수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양극재는 노트북, 공구 등 배터리 수요가 한정적이라 성장성이 높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전기차 시대를 예상하기 쉽지 않은 시기였다. 제일모직도 같은 이유로 사업을 접었다. 이 회장은 고민 끝에 양극재에 뛰어들기로 결단했다.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해봤자 돈이 안 되니 하지 않는 것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한다면 양극재는 필수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2007년 관련 사업을 넘겨받고 1년도 되지 않아 니켈계 양극소재 40t과 전구체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준공됐다. 3월에는 양극소재 제1공장까지 문을 열었다. 그렇게 사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수익을 내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소기업이 개발하기는 쉽지 않은 영역이었고 10년간 적자가 이어졌다. 이 회장에게 수익을 내지 못하고 투자만 해야 하는 이 기간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기술에 매달렸더니 빛이 들기 시작했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며 양극재는 없어서 못 파는 소재가 됐다. 말 그대로 만드는 대로 돈이 됐다. SK이노베이션과의 10조원대 계약은 이 회장이 10평(33㎡) 사무실에서 기업을 일군 지 23년 만의 결실이었다.

▶10년 적자 고생…이후 승승장구

▷2년 새 주가 10배 급등…추가 증설 예고

2016년 998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5년 만인 올해 1조3000억원대를 바라본다. 공장도 새로 증설할 듯 보인다. SK이노베이션과의 계약에 따른 공급액은 에코프로비엠의 기존 양극재 생산능력을 뛰어넘는다.

증권업계는 2025년쯤이면 9조원대 매출에 도달할 것이라 전망한다. 2차 전지주는 전기차 시장의 구조적 성장세를 이유로, 증설이 주가에 빠르게 반영되는 특성이 있다. 먼 미래의 실적을 현재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에 반영한다는 의미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0배에 달하지만 2023년 실적을 적용하면 23배로 낮아진다.

증권사들이 목표주가를 올리는 근거도 여기에 있다. 공급 계약 공시가 나온 뒤 대신증권은 목표주가 50만원을 제시했다. 하이투자증권도 기존 38만5000원에서 52만원으로 대폭 높였다. 이베스트투자증권(52만8000원), KB증권(50만원), 유안타증권(48만원), 한국투자증권(44만원) 등 일제히 에코프로비엠 목표가를 상향 조정했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중장기 성장성이 높은 수주 산업”이라며 “전 세계 1위 양극재 업체인 에코프로비엠 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창민 KB증권 애널리스트는 “SK이노베이션과의 전기차용 하이니켈 양극재 판매 계약으로 2024년 이후 생산능력이 크게 커진다”며 “2025년 매출액은 9조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명순영 기자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27호 (2021.09.29~2021.10.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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