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청약? 우릴 바보로 아나" 박영수 딸 줍줍, 3040 분노

김원 2021. 9. 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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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받은 시점, 미분양일 때가 아니라 2배 오른 뒤
박영수 전 특검이 특검으로 일할 당시 자신이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 강남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당첨자는 전생에 단군왕검이었을 겁니다." 지난달 11일 진행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 무순위 청약에서 당첨자가 누가 될지를 놓고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회자했던 말이다. 전생에 엄청나게 좋은 일을 해야 당첨의 복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른바 '줍줍'으로 불리는 당시 무순위 청약에는 5가구 모집에 24만8983명이 몰렸다. 시세가 분양가(약 14억원)의 2배에 달했기 때문에 '14억 로또'라고도 불렸다. 청약 전쟁에 '단군왕검'까지 소환된 건 무순위 청약의 당첨 가능성이 그만큼 희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 27일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딸(40)이 이런 '로또 줍줍'을 아무 경쟁없이 그냥 '주운 것'을 놓고 분노와 허탈감을 호소하는 30~40대 무주택자가 많다. 주로 박 전 특검의 딸과 비슷한 연령층이다.

박 전 특검 딸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한 화천대유에서 2015년 6월 입사해 최근까지 근무했다. 박 씨는 올해 5월 입주가 시작된 판교퍼스트힐푸르지오(A1·2블록)의 전용면적 84㎡짜리 한 채를 지난 6월 6억~7억원(초기 분양가)에 계약했다. 회사 보유 물량을 시행사가 임의로 분양한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입주가 시작되고 시세가 분양가의 두 배 이상으로 형성된 시점에 분양가대로 아파트를 받은 건 명백한 특혜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박 특검 측이 2019년 초기 분양 당시의 '줍줍' 모집 관련 기사를 첨부해 "당시 누구나 청약할 수 있었다"라고 한 소명자료를 놓고 분노를 표하는 3040이 많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30대 무주택자 김 모 씨는 "요즘 무주택 30~40세대가 얼마나 부동산 관련 공부를 많이 하는데, 박 특검 측의 얘기는 우리를 바보로 보고 하는 말 같아 더 화가 났다"며 "박 특검 측이 얘기한 '당시'는 미분양 상태였던 2019년이고, 박 특검 딸이 아파트를 받은 시점은 분양가 대비 2배 이상 가격이 오른 올 6월"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40대 무주택자 박 모 씨는 "(박 전 특검 딸은) 부모를 잘 만나서 15억원 짜리 아파트를 7억원에 특혜 분양을 받은 것 아니냐"며 "전셋집을 전전하면서도 높아지는 청약가점을 보며 이제나저제나 하며 내 집 마련의 순간을 기다린 나 자신이 한심하다"고 말했다.

최근 집값에 이어 전셋값마저 다락같이 오르면서 무주택자에게 청약은 자산 증식의 유일한 희망이 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과 직방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서울에 공급된 아파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은 124.7대 1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 평균(97.1대 1)보다 크게 오른 것으로, 반기 기준 역대 최고치다. 최저 평균 가점도 60.9점으로 올랐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줍줍에 청약가점 등이 낮은 무주택자 수십만명이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 성남시 판교대장 도시개발사업구역 일대 모습. 연합뉴스


청약 당첨만 되면 로또 당첨금(지난해 기준 세전 21억원)에 버금가는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분양한 서울과 경기지역 주요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입주도 하기 전에 분양가 대비 두 배 이상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 분양만 받으면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지만, 청약 기회는 오히려 줄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분양은 5618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상반기 9673가구에 비해 41.9% 급감했다.

특히 정부가 신혼부부 특별공급이나 신혼희망타운 등 젊은 층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넓혀주는 정책을 쓰면서 무주택 중년층의 청약 기회는 더 줄고 있다. 무순위 청약마저 과열 양상을 보이자 정부는 지난 5월 해당 주택건설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 세대주 또는 세대원만 청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주택 보유 여부와 지역과 관계없이 성년인 경우 누구나 신청할 수 있었다.

이렇듯 청약 문턱이 높아지면서 '로또 청약' '로또 줍줍'에서 소외된 이들이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중저가 아파트 매수로 돌아섰고, 올해 들어 이들 지역 아파트값이 크게 오르기도 했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청약제도는 공정이 최우선"이라며 "박 전 특검 측이 특혜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청약 기회가 공정하지 않았다는 점 자체가 특혜"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누리꾼은 "누구에게는 내 집 마련이 하늘의 별 따기인데, 누구에게는 앉아서 떡 먹기보다 쉽네요. 참 공정한 세상이네요"라는 반어법을 사용한 댓글을 남겼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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