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세계관 들고 돌아온 애니 거장 호소다 마모루

김성호 2021. 9. 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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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337] <용과 주근깨 공주>

[김성호 기자]

▲ 용과 주근깨 공주 포스터
ⓒ 와이드 릴리즈(주)
 
세계가 유일하다는 믿음은 깨어졌다. 적어도 온라인 세상에서는.

인간이 차원의 문을 열었다. 태양계를 넘기는커녕 가장 가까운 행성까지도 도달하지 못한 인간이란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3차원 가상공간에서 시공간을 뛰어넘은 만남이 이뤄지고 있다. 현실세계의 자아는 저 멀리 내던지고 완전히 독립된 새로운 자아를 갖는다. 그 세상에서만큼은 여기 지금 사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구가 되어 일하고 놀고 교류한다. 기술이 발전한다면 그곳에서 먹고 마시고 잠자고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세상에 불가능한 게 어디 있다는 말인가.

하나의 우주라는 유니버스는 절대적 가치가 아닐지도 모른다. 곳곳에서 메타버스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온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한국 기업들이 메타버스 세계관을 빌려와 채용과 각종 설명회에 나선다. 더불어민주당이 한국 정당사상 최초로 대선 경선에 메타버스를 활용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놨다. 기껏해야 흉내 내기 수준이란 비판도 많지만 몇 년 후라면 그저 흉내에 그치진 않을지도 모른다.
 
▲ 용과 주근깨 공주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메타버스로 진입한 일본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손꼽히는 이가 호소다 마모루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후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 같은 인상적인 작품을 연달아 내놨다.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을 만든 신카이 마코토 정도가 그와 견줄 수 있을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는 신작에서 메타버스 세계를 가져온다. 값비싼 특수효과를 쓰지 않고도 첨단 기술 소재를 구현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그대로 살렸다. 곧 개봉하는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로, 현실은 시골 소녀지만 메타버스 안에선 온 세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스타의 이야기를 다뤘다.

주인공은 평범한 여고생 스즈다. 이렇다 할 장기도 없고 외모나 성적이나 모두 그저 그런 스즈의 삶은 가상세계 U를 접한 뒤 완전히 뒤바뀐다.

U는 이용자의 잠재성을 끌어내 구현할 수 있게끔 해주는 가상공간이다. 누군가는 인간의 모습을 크게 벗어난 캐릭터가 되고, 또 누구는 엄청난 흉물이 되며, 어느 누구는 연예인처럼 어여쁜 외모를 갖기도 한다.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진 않지만 제 안의 잠재성이 반영된 것이기에 부인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 용과 주근깨 공주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미녀와 야수> 일본 애니메이션 버전

스즈는 완전히 복권 당첨이다. 현실에선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그녀지만 U 안에선 매혹적인 음성과 노래솜씨를 갖게 된다. 그녀가 U속에서 마음속에 흐르는 멜로디를 따라 노래를 부르자 주변 사람들이 그 음률에 호응한다. 처음엔 몇뿐이던 구경꾼이 나중엔 수백만에 이른다. 스즈의 U속 캐릭터 벨은 한순간에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 된다.

스즈는 U 안에서 한 캐릭터를 만난다. U 안의 질서를 지킨다며 결성된 자경단 '저스티스'가 뒤를 쫓는 무법자 용이 바로 그다. 용은 무질서한 무도가로, 누구든 걸리면 작살을 내고야 마는 난폭한 성미다. 그에게 걸리면 데이터가 망가져 복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손상을 입는데, 왜 그토록 분노에 차 있는지 사연을 아는 이가 없다. 저스티스는 신상을 탈탈 털겠다며 용의 뒤를 추적한다.

사실 보고 나면 그렇게 특별한 인상이 남는 작품은 아니다. 여주인공 이름이 벨인 것부터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를 오마주했다. 보다보면 그저 오마주를 넘어 상당한 수준의 변용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쁜 남자 용은 알고 보면 사연 있는 매력 있는 캐릭터다. 그를 괴롭히는 자경단은 기실 제 열등감으로 남을 억누르는 몹쓸 놈들이다. 여주인공은 현실은 평범하지만 U 속에서는 제일가는 유명인에 미녀다. 바로 그녀가 사연 있는 나쁜 남자를 선택해 구원한다.
 
▲ 용과 주근깨 공주 스틸컷
ⓒ 와이드 릴리즈(주)
 
디즈니와 맞서도 굴하지 않는 스튜디오 치즈

그럼에도 영화가 완전히 식상한 건 아니다. 소재 때문이다. 메타버스는 유명 애니메이션에선 처음으로 소화되는 소재다. 그것만으로도 호소다 마모루는 한 편의 장편을 만들기 충분하다고 확신한 듯하다. 적어도 온라인 세계관에 익숙한 어린 관객들은 그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호소다 마모루와 제작사의 의도도 분명해 보인다. 호소다 마모루는 작정한 듯 누구의 호감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여성 캐릭터에게 인기 OST가 될 만한 곡 여럿을 돌아가며 부르게끔 한다. 디즈니의 여성 캐릭터가 영화 바깥에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다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노골적으로 도전한다.

이처럼 호소다 마모루는 자신이 작가를 넘어 사업적으로 성공한 영화인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방한다. 스튜디오 치즈가 제2의 디즈니나 지브리가 되는 날이 온다면 <용과 주근깨 공주>의 역할이 반드시 언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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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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