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미래보다 지금 행복을"소장 위스키 마시는 수집가

김대영 2021. 9. 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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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38)

“어서 오세요. 밖이 꽤 춥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두꺼운 패딩 잠바를 입고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아직 추위가 덜 가셨는지 잠바를 입은 채 카운터에 앉아 두 손을 비볐다.

“제가 이 가게를 왜 들어왔는지 아세요?”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다른 가게보다 훨씬 더 깨끗하게 눈을 치우셨더라고요.”

“오늘 눈이 많이 오긴 했죠. 눈 치우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그는 따뜻한 물수건을 건네받고 한참을 주무르더니, 비로소 온기가 돌았는지 패딩 잠바를 벗었다. 정장 바지와 함께 맞춘 듯한 재킷, 그리고 그 안에는 스티브 잡스가 입을 법한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

“사실, 위스키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어요.”

“그러신가요? 제가 손님의 첫 위스키를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야 말로요. 사실 오늘은 정말 큰맘 먹은 거예요. 제가 워낙 짠돌이라 술도 소주만 마셨거든요.”

눈오는 겨울 어느 날 고졸 출신으로 대기업 공장장이 된 사람이 바에 들어왔다 . [사진 pixabay]


그는 친구들보다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어렵고 부모님이 동생들을 키울 능력이 부족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했다. 중학생 때부터 신문과 우유배달부터 전단지 뿌리기,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등을 전전한 그였다.

첫 취업은 안산공단의 한 공장. 그에게 주어진 일은 프레스 기계로 알루미늄을 압착하는 일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일이지만 안전상 문제 때문에 기피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야근에 특근, 주말 근무까지 마다치 않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그의 성실함이 공단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자 더 큰 공장에서 그를 스카우트해서, 그렇게 몇 번 공장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그리고 변함없이 묵묵히 일하던 그는 최연소로 공장장이 되어 한 일간지에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우쭐댈 법도 한데, 그는 처음 공장에서 기계를 만질 때와 마찬가지로 일에만 최선을 다했다.

“열심히 살아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야죠. 열심히 돈 모아 부모님 집도 사드리고, 동생들 시집이랑 장가도 보내고…. 그러고 나면 나이 들어서 잘 산 인생이었다는 한 마디를 스스로 들려줄 수 있을까요?”

그때 가게 문을 열리자 중절모에 갈색 롱코트를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한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있었는데, 카운터에 앉자마자 쇼핑백에서 파란 상자를 꺼내 내게 건넸다.

그가 내준 상자를 열자 그 안에는 위스키가 들어있었다. 맥캘란 30년 쉐리오크. 상자에서 꺼낸 위스키병을 한 번 닦은 후 코르크를 감싸고 있는 비닐을 벗겨냈다. 그리고 언제 들어도 경쾌한 코르크가 위스키병에서 뽑혀 나오는 소리와 함께 병이 오픈됐다. 글렌 캐런 잔을 한 개 준비해 따르려고 하는데,

“저 청년에게도 한 잔 주시게.”
바로 잔을 하나 더 가져다 위스키 두 잔을 따랐다.

“내가 이걸 따는데 10년이 넘게 걸렸구먼.”

“어떠세요?”

“역시 기분이 아주 좋아.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는 말이 바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군.”

소장 중인 위스키를 들고 한달에 한번씩 바를 찾는 위스키 수집가. 그는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 선택도 좋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그는 한국에 싱글몰트 위스키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싱글몰트 위스키를 즐겼다. 당시는 한국에 수입되는 싱글몰트 위스키라곤 맥캘란과 글렌피딕 정도가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 영국에서 살면서 다양한 싱글몰트를 접해본 그에게 위스키 종류가 적은 건 아쉬웠지만, 그가 가장 사랑하는 맥캘란을 싼 가격에 마실 수 있어 좋았다.

점차 한국에 수입되는 위스키 종류가 늘어났고, 그는 다양한 위스키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야마자키, 히비키, 요이치, 타케츠루 등 일본 위스키는 물론이고 하이랜드 파크, 라가불린 등 영국에서 좋아하던 위스키가 한국에 출시되는 족족 사 모았다. 그리고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과 위스키를 나눠 마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위스키를 오픈할 수 없게 됐다. 가지고 있는 위스키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살 때보다 몇 배는 더 비싸진 위스키는 더는 ‘마실 것’이 아닌 ‘팔 것’이 돼버렸고, 마시는 행복보다 돈의 가치가 불어나는 재미에 더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그는 위스키의 맛과 향으로부터 멀어져갔다.

“어느 날 술에 취해 이 바를 처음 찾았지. 백바에 수많은 위스키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나더군. 그래서 한 잔 시켜 마시면서 수집해온 위스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마스터가 다음에 올 때 위스키를 한 병 가져오라는 게 아니겠나? 그래서 며칠 뒤에 꽤 값이 오른 위스키 한 병을 가져왔더니 글쎄, 이 사람이 냉큼 오픈을 해버리더군.”

너무나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오는 그에게 방금 오픈한 그의 위스키를 한 잔 따라주었다. 그는 뭐라고 한 마디를 꺼내려다 잔에 코를 대 위스키 향을 맡고 한 모금 들이켰다.

맥켈란 30년. [사진 김대영 제공]


“아, 역시 좋긴 한데…. 이게 얼마짜린지 알고 내 허락도 없이 그렇게 따버리는 거요?”

“지난번에 오셨을 때, 앞에 둔 위스키를 마실 때보다 집에 있는 위스키에 대해 말씀하실 때 더 행복해 보이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못 마신다니 너무 아쉽잖아요? 그래서 강제로라도 그 행복을 되찾아드리고 싶었습니다. 뭐, 정 못마땅하다면 제가 그 위스키 살게요. 오른 가격으로.”

그 후로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소장 중인 위스키를 들고 우리 바를 찾는다. 아무 말 없이 그가 내 앞에 위스키를 두면, 마찬가지로 아무 말 없이 위스키를 오픈해 그에게 한 잔 따라준다.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참는 것도 인생의 한 선택지지만,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않는 선택도 참 좋은 것 같아. 한 잔 더 하겠나?”

중년의 신사가 청년의 빈 잔에 맥캘란 30년을 한 잔 더 따라줬다. 청년은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위스키를 몇 모금 마시더니 입을 뗐다.

“어쩌면 저도 행복을 미래로 미룬 채, 지금의 자신은 불행에 빠트리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행복을 꺼내먹어야겠습니다. 위스키처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네요.”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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