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정지윤, "뜨거웠던 여름, 마지막까지 쥐어짜 후회 없다..올 시즌 우승 목표"

이형석 2021. 9. 2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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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국가대표 양효진과 정지윤이 24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현대건설 여자배구단 체육관에서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인=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1.09.24/

'배구 여제'의 마지막 올림픽을 함께 해 '10년 룸메이트'와 '후계자'는 행복했다. 한국 여자배구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메달 획득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예선 통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격파하고, 8강을 넘어 4강 무대까지 진출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과 강인한 정신력을 선보여 높은 관심과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 올림픽 이후엔 TV 예능 프로그램 단골 손님이 됐다.

현대건설 양효진(32)과 정지윤(20)에게도 이번 올림픽은 평생 잊지 못할 뜻깊은 무대였다. 'V리그 최고 센터' 양효진은 도쿄가 마지막 올림픽이었다. 반대로 '대표팀 막내' 정지윤에게는 생애 첫 올림픽이다.

양효진은 "예선 통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많이 봤는데, 마지막까지 힘을 쥐어짠 것 같다. 미칠 만큼 해서 후회는 전혀 없다"며 "김연경 언니 덕에 똘똘 뭉쳐 더 좋은 성과를 올릴 수 있지 않았나 싶다"고 웃었다. 정지윤은 "언니들(김연경, 김수지, 양효진)이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하지 않았나. 언니들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어서 복 받았다"라고 말했다.

10월 16일 V리그 개막을 앞두고 양효진과 정지윤을 함께 만났다. 지난여름 뜨거웠던 도쿄에서의 추억도 다시 한번 떠올렸다.

〈YONHAP PHOTO-3323〉 동메달 대시 기념주화 (영종도=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입국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환영식에서 여자 배구 대표팀 김연경(왼쪽부터), 양효진, 김수지가 배구협회가 만든 기념주화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8.9 superdoo82@yna.co.kr/2021-08-09 22:17:05/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요즘 방송에 많이 나오더라.

양효진(이상 양)="쉬는 기간에 몰아서 녹화했다. 재밌더라.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출연해 할 얘기도 많았다. 예전에는 배구 팬들만 날 알아봤는데, 요즘은 어린 친구들도 많이 알아본다."

정지윤(이상 정)="(라디오스타를 보면서) 내 모습이 예능에 나오는 게 쑥스러워 '이불킥'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동안 교류가 뜸했던 친구들도 연락이 오더라. 길거리를 걷는데 '혹시 배구 선수 아니냐'고 물어온 분도 있다."

-각각 마지막, 첫 번째 올림픽이었다. 느낌이 어땠나.

양="입단 첫 시즌인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 나간 게 대표팀의 시작이었다. 당시 언니들이 부상이 많아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런데도 세 번이나 올림픽 무대를 밟은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처음 나간 2012년 런던올림픽은 마냥 신기했다. 이번에는 외국인 감독(스테파노 라바리니)과 함께 나가서 색달랐다. 한국 배구가 새로운 도전을 한 것 같고, 여운이 남는다."

정="국가대표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다. 내 또래 중 유일하게 언니들(김연경, 김수지, 양효진)들과 대표팀에서 함께 해 감흥이 남달랐다."

-일본전, 터키전, 세르비아전 종료 후 느낌이 달랐을 것 같다.

양="준결승 세르비아전이 끝나고 나도 눈물이 계속 흐르더라. 프로 입단 첫 시즌부터 14년 차까지 힘들고, 좋았던 대표팀 생활이 모두 떠올랐다. 처음 성인 대표팀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섰을 때 외국 선수를 보면서 내 실력이 부족함을 느꼈다. 기량 향상에 대해 엄청나게 갈구하게 됐다. 대표팀은 소속팀에서 겪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한다. 한 달 동안 해외에서 국제대회를 치르기도 했다. 지금은 좋은 추억이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정="한·일전은 전날부터 팀 분위기가 달랐다. 엄중했다고 해야 할까.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 장난기가 쏙 사라졌다. 집중력이 엄청났다. 8강에서 터키를 만났을 때는 터키가 강팀이지만 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언제 또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이 들더라."

양="도쿄올림픽을 위해 몇 년간 준비했다. 티켓을 따려고 러시아와 태국까지 다녀왔다. 선수들 간에 '일본전에 모든 걸 걸자'라고 얘기를 나눴다. 도미니카공화국전(7월 29일)부터 분위기를 타 아무리 일본(7월 31일)이 홈 팀이어도 질 것 같다는 느낌은 없었다. 자만이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의지였다. 8강 진출 확정 후엔 개인적으로 승패와 관계없이 플레이했다. 왜냐면 올림픽이 끝나면 '왜 이런 플레이를 못 했을까?' '내가 그 상황에서 득점했으면 팀이 이겼을까?'라는 아쉬운 기억이 4년 동안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아쉬움이 전혀 없다. 연경 언니가 나선 마지막 (황금)세대라는 것도 알아서 똘똘 뭉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멤버로는 마지막이지 않았나. 예선 통과도 쉽지 않을 것으로 많이 봤는데, 마지막까지 투지를 앞세워 힘을 쥐어짠 것 같다. 미칠 만큼 해서 후회는 전혀 없다."

여자배구 국가대표 양효진과 정지윤이 24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현대건설 여자배구단 체육관에서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인=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1.09.24/

-대표팀에서 정말 은퇴하나.

양="언니들과 몇 년 전부터 도쿄올림픽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자고 얘기를 해왔다. 외부에 따로 알리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내년 아시안게임에 나설 순 있겠지만, 3년 뒤 올림픽을 바라보는 게 낫지 않을까. 다른 팀을 보면 4년을 기점으로 팀 구성을 새롭게 한다.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몸 상태나 개인적인 변수들이 있다. 갑작스러운 전력 누수가 생기면 안 된다. 기량 좋은 어린 선수들이 많고, 충분히 잘할 것으로 본다."

-라바리니 감독이 엄청 잔소리에 훈련을 많이 시켰다는데.

정="감독님이 세심하게 준비시켰다. 한국에선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라바리니 감독님은 과정을 중요하게 봤다. 엄청 많이 혼났다. 감독님이 무서워 한동안 눈을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배운 게 정말 많다."

양="블로킹 타이밍 등을 맞출 때 '안 되지'라고 여겼던 부분에서 라바리니 감독으로부터 답을 얻었다. 기존의 시스템과 다른 변화를 많이 시도했는데, 결국 성과로 이어졌다."

양효진과 정지윤은 김연경(33)과 인연이 남다르다. 양효진은 10년 가까이 대표팀에서 김연경의 룸메이트로 지냈다. 지난 4월 양효진의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은 이도 다름 아닌 김연경이었다. 최근에도 여러 TV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며 우정을 과시하고 있다. 정지윤은 '김연경 키즈'다. 부산 수정초에 재학 중이던 2011년 '일주-김연경 배구 꿈나무 장학생'에 선발됐다. 당시 초등학생으로 유일하게 장학금을 받은, 최연소 수혜자다.

-학창 시절 김연경 장학생에 선발됐는데.

정="매우 감사하다. 직접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지 못했지만, 그 시절에 장학금을 받는다는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또 자부심이 생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연경 언니는 유소년의 롤 모델이다. 나도 열심히 해서 연경 언니와 같은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2019-2020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GS칼텍스와 현대건설의 경기가 16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경기 후 김연경이 코트로 내려가 대표팀 동료였던 양효진과 이다영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0.01.16/

-김연경과 10년 동안 대표팀 룸메이트로 지내면서는 어땠나.

양="날 잘 챙겨줬다. 어릴 때부터 배구 영상을 그렇게 보더라. 역시 세계적인 선수는 다르다고 느꼈다. 나도 같이 방을 쓰면서 더 노력했고, 영감을 얻곤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그랬지만, 김연경이 코트 안에서 많은 것을 주문하고 기운을 불어넣는다.

양="코트 안에 있는 만으로도 큰 존재다. 리더십이 정말 뛰어나다. 언니가 하는 부분은 다 맞는 것 같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다 보고 알려줘 많이 배운다."

정="맞다. 다 맞는 얘기만 한다. 무섭거나 잔소리로 여기긴 보다 바짝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더라."

김연경은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에게 정지윤의 포지션 변경을 제안했다. 그동안 센터와 라이트로 주로 뛴 정지윤이 자신과 같은 레프트로 뛰면 더 많은 잠재력이 발휘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김연경은 "라바리니 감독도 정지윤을 레프트로 투입해 (한국 배구와 선수의) 앞으로를 보고 싶다고 하셨다. 정지윤은 내가 봐도 분명 잠재력이 있다. 우리나라 선수가 보통 갖지 못한 파워가 있다"고 평가했다. 사실상 자신의 후계자로 손꼽은 셈이다. 정지윤은 올림픽 직후 열린 KOVO컵에서 본격적으로 레프트로 전향해 대회 MVP까지 차지했다. 기자단 투표 전체 31표 중 27표를 획득했다. 새로운 포지션에서 산뜻한 출발을 알렸다.

-김연경이 레프트 전향을 권유했다.

정="대표팀에서도 그렇게 얘기해주셨다. (관심을 가져줘) 감사하다. 연경 언니가 높은 블로킹 앞에서 어떻게 때려야 하는지에 대해 연경 언니가 알려줬다. 좋지 않은 습관도 알려줬다. 정말 포지션이 변경된 만큼 더 잘해야 한다. 레프트로서 자리 잡길 바란다고 언니가 말한 기사도 봤다. 그래서 더 책임감이 생긴다. 레프트에서 부진하면 내게도 손해지만, 언니에게도 안 좋을까 싶어 더 열심히 하고 싶다. 리시브와 수비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울기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양="여러 포지션을 많이 왔다 갔다 해 솔직히 어렵고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 좋은 신체 조건과 재능을 갖고 있어 묵묵히 자기 역할을 잘할 것 같다."

-양효진에게 김연경이란.

양="모두에게 엄청난 기둥 같은 존재다. 한국 여자배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바꿔놓은 선수 아닐까? 어릴 적부터 한국 배구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다른 선수들이 보고, 생각하지 못한 점들을 고민했는데, 정말 이뤄낸 것 같다. 언니 성격상 안 좋은 건 바꾸고, 바로 잡아야 한다. 언니가 생각한 대로 주변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바뀌면서 성적도 나고 지금의 관심도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김연경이 "10년 동안 방을 쓰면서 (양)효진이를 연봉퀸으로 만들었다"고 했던데.

양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니다.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 나 또한 그 시기에 배구를 향한 열정과 갈망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적인 선수와 같이 운동하고 방을 쓴다는 것이 꿈만 같았고 재밌었다. 어릴 적부터 세계적인 선수의 자서전을 많이 봤다. 신체 조건을 모두 달라도 마인드는 비슷했다. 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열심히 훈련을 따라 하며 동기부여도 커졌다. 동시대에 같이 코트에서 뛸 수 있어 큰 도움이었다. 언니랑 함께한 대표팀에서의 모든 시간이 다 특별했다."

-대표팀을 떠나는 김연경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양="언니가 적절한 시기에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 것 같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금(2014 인천)·은(2010 광저우)·동을 하나씩 땄더라. 언니가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 여겨서인지 자카르타에서 메달을 딴 뒤 살짝 울었다. 언니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찡하다. 어릴 때부터 고생하고, 배구의 열악한 환경을 바꾸려 노력한 것을 곁에서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나도 먹먹해진다.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무게감이 크지 않나. 과연 나라면 언니처럼 할 수 있었을까 싶다. 항상 고맙다. 잊지 못할 것 같다."

-만약 내가 김연경보다 언니였다면 어땠을까.

정="굉장히 장난을 걸었을 것 같다. 언니가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린 내가 장난을 걸어도 잘 받아준다." (정지윤은 김연경을 비롯한 선배들과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과감한 입담을 자랑했다.)

양="내가 선배여도 왠지 잡혀 살았을 것 같다. 성격이 대차고 기가 세다. 그런데 단순하다. 예의범절을 지키고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정말 잘 챙겨준다."

29일 경기도 의정부체육관에서 열린 '2021 의정부 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현대건설과 GS칼텍스의 여자부 결승에서 현대건설이 디펜딩챔피언 GS칼텍스를 세트스코어 3대 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후 시상식에서 양효진 등 선수들이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의정부=김민규 기자 kim.mingyu@joongang.co.kr /2021.08.29/

-지난 시즌 최하위에 그친 현대건설이 KOVO컵에서 우승했다. 새 시즌 목표는.

정="새로운 포지션에서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상위권 성적을 올렸으면 한다." 양="나이가 들수록 점점 팀 성적이 잘 나왔으면 싶다. 지금 신구 조화나 팀 밸런스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조직력이 좋아 더 강해 보이는 팀이 됐으면 한다."

용인=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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