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세계 최초이자 최고 기술'만이 답이다

2021. 9. 2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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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2020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최근 모두 폐막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치른 첫 올림픽에서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해준 것은 메달 획득보다 젊은 선수들의 해맑은 웃음이었다. 결승전 석패에도 서로를 격려하며 맘껏 시상식을 즐기던 여자 펜싱팀, 금메달을 가져간 상대 선수에게 노력의 결과라며 ‘엄지 척’을 선사했던 태권도 이다빈 선수, 관객의 환호를 유도하며 한국 신기록에 도전하던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가 그랬다.

순위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얼굴에는 과거의 선수들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자긍심과 여유가 가득했다. 아시아의 한편에 한국이란 나라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 절박한 마음으로 메달 수와 색깔에 매달렸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 혁신 없인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해
‘기술 금메달’ 위한 담대한 도전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 컨트롤센터는 일본의 요청으로 올림픽 기간 내내 그들이 보유하지 못한 성장호르몬과 유사 금지약물 분석 기술을 지원했다. 첨단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인류의 진보라는 올림픽 정신에 대한 순수한 공헌을 통해 한국사회가 이제는 확실히 과거보다 한 발 더 전진했음을 확인했다.

매년 발표되는 세계 국가경쟁력 조사도 이런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올해 한국의 경쟁력을 세계 23위로 평가했다. 일본은 30위권 밖이다. 블룸버그 ‘혁신 지수’는 대한민국이 세계 1위다. 두 기관 모두 우리 국가경쟁력의 가장 큰 지렛대로 우수한 과학기술 인프라와 연구개발(R&D) 역량을 꼽았다. 우리나라가 세계 몇 번째로 첨단기술 보유국이 됐다는 뉴스는 이제 더는 특별할 것 없다.

하지만 경제 대국이자 과학기술 강국으로도 불리게 된 2021년의 대한민국에서 ‘세계 몇 번째’ 기술이 빠르게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미국·독일·일본이 그러하듯 한국도 이제 신흥국들의 압도적인 생산력과 가격경쟁력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은 ‘세계 최초이자 최고 기술’이 유일한 답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는 스포츠 선수들과 달리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자들에게는 ‘금메달 과학기술’만이 유효한 상황이라 하겠다.

세계 최초이자 최고를 추구하는 연구개발 풍토는 급조되기 어렵다. KIST는 이미 20년 전부터 세계 선도형 연구로 목표를 전환했지만, 논문·특허 등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평가 풍토 속에 어쩔 수 없이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선택해야 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잘 알기에 지난 1년간 치열한 내부 소통과 토론을 거쳐 인사·평가·조직 등 제도 혁신에 매진했다.

혁신은 말처럼 그리 멋지기만 한 일이 아니다. ‘가죽을 벗기고 새 살을 돋게 한다(革新)’는 원래 뜻을 알면 이면에서 견뎌야 할 통증의 크기가 더 실감 나게 다가온다. ‘변화는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던 일부의 걱정스러운 충고도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법. 그래도 도전하면 단 0.1%라도 가능성이란 것이 생긴다. 지금 다시 혁신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디지털의 미래를 외면하다 몰락한 노키아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KIST는 요즘 두 가지 금메달 과학기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하나는 ‘그랜드 챌린지’ 사업이다. 이름처럼 한국은 물론 인류에게도 꼭 필요하나 현재의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연구개발에 도전하는 것이다. 대담한 도전은 예기치 않았던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탁월한 연구팀을 발탁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구개발 브랜드로 육성하는 ‘K-Lab’이다. K-Lab은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의 향상과 지속가능성은 물론,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글로벌 인재들과 함께 한국에 국제협력 연구개발의 새로운 구심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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