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당, 메르켈의 기민·기사련 눌렀다..16년 만의 좌클릭
앙겔라 메르켈(67) 독일 총리가 소속한 기독교민주·기독교사회 연합(기민·기사련)이 지난 26일 열린 연방하원 선거에서 집권 16년 만에 제1당에서 밀려났다.
27일 독일 연방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총선에서 299개 지역구 개표 결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사민당)이 25.7%를 득표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기민·기사련(24.1%)을 1.6%포인트 차로 제친 박빙의 승리다.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로 내건 환경정치 정당인 녹색당이 3위(14.8%)에 올랐고, 자유무역을 앞세운 친기업 성향의 자유민주당(자민당, 11.5%),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10.3%), 옛 동독 집권당이던 사회주의통일당을 이은 좌파당(4.9%)이 뒤를 이었다. 연립정부(연정) 구성 셈법이 복잡해지면서 ‘포스트 메르켈’ 시대 개막까지는 상당한 협상 시간과 정치적 진통이 예상된다.
전후 독일에선 1949년 서독의 첫 총선 이래 한 번도 단일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없으며, 복수 정당이 손을 잡고 연방의회 의석의 과반수를 확보하고 연정을 구성해 왔다. 이에 따라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한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이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16년간 집권했던 메르켈의 뒤를 이을 차기 총리도 연정 구성에 성공한 정당의 총리 후보가 맡게 된다.
숄츠, 경제사령탑 지내며 국민 신임
올라프 숄츠(63) 사민당 총리 후보는 총선 결과가 나온 직후 독일 ZDF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권자의 선택은 명백하다. 독일을 위해 훌륭하고 유능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사민당에 부여된 임무”라면서 연정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민련의 아르민 라셰트(60) 총리 후보도 “연정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나섰다. 사민당이 1당 자격으로 먼저 연정 협상을 주도하다 실패하면 2위인 기민련이 연정 구성 권한을 넘겨받는다. 이들 모두 성탄절까진 연정 협상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독일 국제방송인 DW 등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사민당은 녹색당과, 기민·기사연합은 자민당과 협력해 왔지만 이번엔 양당이 모두 어느 당과도 협상하겠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당 상징색에 빗댄 사민당(빨강)·녹색당(초록)·자민당(노랑)의 ‘신호등 연정’이 유망하지만, 기민련(검정)·녹색당·자민당의 ‘자메이카 연정(자메이카 국기 색에서 따온 표현)’도 가능하다.
사민당과 기민련의 대연정 가능성도 있다. 메르켈 총리는 4기에 걸친 집권 기간 중 자유민주당과 연립했던 제2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민당과 대연정을 이뤘다. 현재 대연정은 402석, 신호등 연정은 416석, 자메이카 연정은 406석으로 어떤 조합이든 전체 의석(735석)의 과반이 된다.
차기 정부는 메르켈 집권기보다 ‘좌클릭’할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전망이다. CNN은 신호등 연정의 경우 자민당이 포함되더라도, 사민당과 녹색당 연대만으로도 국정 방향을 ‘좌’로 전환하기에는 충분한 동력을 얻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특히 지난 총선보다 51석이 증가한 118석을 확보하고 역대 최다 의석과 최대 득표율을 얻은 녹색당이 연정에 들어간다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본다.
차기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큰 숄츠는 2005년 이후 오랜 침체기를 겪은 사민당을 살린 공신이다. 대연정인 현 정부의 경제부총리로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노련하고 신뢰할 만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98년 하원의원에 첫 당선했고, 함부르크 제1시장을 지냈다. 메르켈 내각 1기와 4기에 각각 노동사회부 장관과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맡았다.
숄츠는 사민당 내에서 중도에 가까운 인물로 분류된다. ‘기계’ ‘로봇’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무뚝뚝하다는 평과 정부의 재정관리자 역할을 유능하게 수행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지난해 세계 최저 법인세 도입을 주장하면서 국제적인 이목을 끌었고 코로나19 이후 긴급 구호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국내에서도 좋은 이미지를 구축했다. 국민적 신뢰가 두터운 메르켈 총리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라이벌 정당 소속임에도 그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좌파임에도 메르켈 정부에서 긴축재정을 옹호했다.
애초 메르켈 후임으로 주목받았던 기민련의 라셰트 총리 후보는 지난 7월 독일 서부 대홍수 현장에서 웃고 떠드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지난 4월 30% 초반대였던 지지율이 이달까지 10% 안팎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당 지지율도 동반하락했다.
30대 한국계, 첫 연방 하원의원 당선
한편 이번 총선에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아헨시 1지역구에 사민당 후보로 출마한 이예원(34)씨가 독일의 첫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이 됐다. 이씨는 지역구에선 3위에 머물렀지만,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비례대표로 당선했다. 베를린시에서는 한국계 시의원 2명도 직선으로 당선됐다.
박형수·이유정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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