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강철의 교관' 안익수 감독, '혁신적 전술가'로 돌아오다

서호정 기자 2021. 9. 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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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축구인 안익수는 입지전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에 일반 학생에서 축구 선수로 진로를 변경했고, 정식 축구부 활동을 위해 자의로 대학을 옮기며(중앙대->인천전문대) 올인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혹독한 노력을 했고, 서른을 앞두고 수비수로 만개하며 월드컵 무대까지 밟는 성과를 냈다.


자신이 이뤄낸 감격적인 성과 때문인지 지도자로 변신한 뒤 '노력 앞에 불가능은 없다'는 믿음을 설파햇다. 강한 카리스마, 근면 성실함에 정밀한 방법론을 갖춘 그는 엘리트 코스를 거치지 못해 자신의 재능에 확신이 떨어지는 선수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능했다. 코칭을 넘어 교육자의 자세로 혼을 쏟았고, 성남일화 2군 감독 시절 다수의 선수를 발굴하며 2000년대 초반 성남왕조 구축에 일조했다. 


여자축구 대표팀과 대교 감독, FC서울 수석코치를 거쳐 부산아이파크의 지휘봉을 잡은 안익수 감독은 "부족한 아이들을 성장시켜 더 밝은 미래를 열어주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격차를 좁히기 위해 자신이 했던 경험을 훈련 과정에 투영시켰다. 당연히 수준 높지만 고된 훈련 강도가 동반됐다. 선수들 사이에서 "안 감독님과의 동계 훈련은 한번은 어찌 참고 극복해도, 두번째는 하기 전부터 너무 두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유럽의 지도자로 따지면 파비오 카펠로, 펠리스 마가트 감독이 연상됐다. 모두 자신의 신념에서 비롯한 강력한 훈련 방식과 선수단을 휘어잡는 통솔력이 상징인 지도자다. 과정에서 파열음이 나지만, 목표 달성에 능한 인물로 긴 시간 신뢰를 받았다. 카펠로 감독의 별명인 '강철의 교관'은 안익수 감독에게 적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부산 시절 안익수 감독은 팀을 완전히 리빌딩하는 데 능했다. 잠재력을 기량으로 다 펼치지 못하던 젊은 선수들과 평가 절하된 베테랑을 조합해 단단한 팀을 구축했다. 전자는 김창수, 박종우, 임상협, 한지호, 이범영 등이고 후자는 김한윤, 박용호, 전상욱 등이었다. 단단한 수비 밸런스와 일사불란한 조직력의 축구로 2011년 6강 플레이오프 진출, 2012년 상위 스플릿(현 파이널A) 진출이란 연속 성공으로 이끌었다. 2013년 성남일화로 가서도 이런 기조는 이어졌다. 


이렇게 인정받던 안익수 감독의 능력은 20세 이하 대표팀에서 험로를 만났다. 2017년 한국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맡으며 이전보다 훨씬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 그 속에서 안익수 감독의 방식에 대한 반발과 파열음이 이어졌다. 특히 이때는 한국 축구가 백승호, 이승우로 대표되는 유럽에서 본격 성장한, 새로운 세대를 만나며 여론의 기대감이 한껏 높을 때였다. 개인이 아닌 질서와 원칙 하에 팀이 더 주목받길 원하는 안익수 감독의 스타일과는 여러모로 상극이었다. 


일부 팬들과 언론에 의해 '꼰대'로 묘사된 안익수 감독은 U-20 월드컵을 7개월 앞두고 지휘봉을 놔야 했다. 1년여의 휴식기 이후 안익수 감독의 소식을 모처럼 들은 것은 그가 보내 온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선문대 감독 부임 후 팀의 숙소와 훈련 시설을 새롭게 리모델링 했다며 몇몇 기자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안익수 감독의 강력한 요청으로 새롭게 태어난 숙소는 라커룸, 미팅룸, 사우나, 세탁실, 침실 등 프로팀 클럽하우스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췄다.


선문대에서 보낸 4년여는 안익수 감독에게 인고의 시간이었다. 평소 강조하던, 코칭을 넘어 교육이라는 관점에서 팀을 재구성했다. 동시에 전술적인 측면에서 스스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50대 중반의 감독이 이전에 자신이 해 낸 성취의 방법론을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안익수 감독은 선문대에서 예전의 레퍼런스를 버리고 새로운 축구를 만들어갔다. 


그 결과물이 현재 FC서울에서 나오고 있다. 위기의 팀을 맡으며 5년여만에 다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안익수 감독은 수비적이고, 성과 달성 중심의 축구를 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K리그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축구를 펼치고 있다. 4-3-3을 기반으로 하지만 양 측면 수비수를 중앙에 배치해 빌드업을 돕게 하는 인버티드 풀백에,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을 센터백과 나란히 세워 수비 안정감을 확보하는 포지션 변화가 더해져 전형적인 방식을 깬다. 


후방과 미들에 숫자를 확보하면서 나머지 필드 플레이어들이 전방에서 확발한 스위칭으로 상대 수비를 무너트린다. 서울은 안익수 감독 부임 후 전진 패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뤄냈다. 파이널 써드까지 빠르게 전진하고, 거기에서 조영욱이나 나상호의 개인 능력이 빛나는 현대 축구의 교과서적인 방식이 도입됐다. 안익수 감독 부임 후 내용의 변화를 몰라도 서울의 축구가 전술적 트렌드를 리드하는 과르디올라나 비엘사 감독의 그것처럼 다이나믹해지고, 빨라졌다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이유다. 


선문대에서 안익수 감독은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영상을 수십편 분석하며 전술적 장점을 정리했다. 그것을 자신의 방법론으로 구현하며 대학 무대에서 성과를 냈다. 그 노하우가 있기에 서울에 와서도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며 빠르게 팀을 정비한 것이다. 


성남과의 첫 경기부터 서울은 시즌 내내 풀지 못했던 기성용과 오스마르의 공존으로 인한 중원 기동력의 딜레마, 믿고 맡길 만한 센터백이 없어 벌어지던 수비 불안을 해소해 보였다. 그 과정에서 이태석, 이한범, 백상훈, 강성진 등 2002년생 이하의 어린 선수들을 과감히 기용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까지 잡아냈다. 이어진 수원FC, 인천이라는 중상위권 팀들과의 대결에서도 점점 발전하는 모습이 나왔다. 대구와 더불어 전반기 리그 최고의 경기템포를 보여준 수원삼성과의 슈퍼매치에서는 오히려 그 템포와 전진 싸움에서 승리하며 2-0으로 이겼다. 


지도자와 선수를 인식하는데 가장 쉬운 방법은 하나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그 인물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선입견이나 편견을 만들기도 한다. 안익수 감독은 U-20 대표팀을 떠나 6년 만에 돌아온 메이저 무대에서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축구로서 그것을 깨 나가고 있다. 1965년생이 K리그로 돌아오자마자 최고령 감독이 됐지만, 그의 축구는 누구보다 진보적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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