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가사 분담으로 싸우지 않는 비법, 간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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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기자]
밴쿠버, 연일 비가 내리는 가을이 시작되었다. 화창했던 여름날이 가고 비가 매일 오기 시작하니 내 마음도 자꾸만 가라앉는다. 그런데 어제 오늘 이틀간 반짝 해가 났다. 다른 할 일도 많은 주말이지만, 이런 날은 집안에서 할 일들을 미루고 마당으로 나가야 한다.
조금 더 익은 후에 따려고 기다리는 토마토는, 일주일 비로 인해 흰가루병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명이라는 것이 신기해서, 그 와중에 새로 올라오는 곁가지는 일주일새에 쑥 올라와 그새 꽃까지 피며 새로운 열매를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날씨가 앞으로 그것을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남은 열매에 보내기 위해 가지치기를 해야 했다.
이것저것 정리할 것들이 많아서 분주해지자 시간이 정말 금방 갔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으니 남편이 내다보며 배 안 고프냐고 물었다. 밥 달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내가 해준 거 아무거나 먹을 거야?"
이 말은, 내가 바쁘니 자기가 식사를 준비하겠다는 말이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는지, 그냥 아무거나 차려줘도 먹을 것인지 묻는 말이다. 당연히 먹지! 주부들은 흔히 "남이 해준 밥이 최고 맛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나는 남편이 해준 밥이 최고로 맛있다.
▲ 마당에서 딴 오이꽃과 바질, 오이, 토마토를 곁들여 만든 샐러드 |
ⓒ 김정아 |
우리 집에는 가사 분담이 없다. 이 말은 가사일이 절대적으로 아내의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어떤 일을 정해놓고 무엇은 내가 하고, 무엇은 남편이 하기로 정하지도 않는다. 아니면, 오늘은 내가 저녁을 했으니 내일은 남편이 할 차례 같은 것도 없다. 그냥 누구든 그때 상황이 더 편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내가 바쁘면 남편이 식사를 준비하고, 또 반대로 남편이 바쁘면 내가 혼자 식사를 준비한다. 꼭 긴박한 일이 있지 않아도 그때 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내가 한다. 바닥이 지저분하면, 그게 먼저 거슬리는 사람이 청소기를 돌린다. 깨끗하다 지저분하다를 느끼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른데, 나는 내 기준에 맞춰서 치우고, 남편은 남편의 기준에 맞춰서 치운다.
내 긴 머리카락이 빠져서 돌아다녀도 많지 않으면 나는 눈에 잘 안 들어오는데, 남편은 그게 눈에 거슬린다. 그러면 군소리 없이 치운다. 남편은 쓸고 닦아 깨끗한 것을 좋아해서 싱크대와 전기레인지 쪽은 반짝반짝한데, 세면대는 무심한 편이다. 나는 세면대가 깨끗한 게 좋다. 상대방더러 이거는 당신이 늘어놨으니 당신이 치우라고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보기 싫으면 내가 치우면 되는데, 단, 이거 치워도 되냐고 다 쓴 거냐고 물어본다.
나는 이렇게 흘러가는 우리 집의 분위기에 참 감사하다. 어떤 구속도 의무감도 없지만 서로 알아서 챙기기 때문에 둘 다 만족스럽다. 자연스럽고 자유롭다. 물론 여기에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있다. 누가 누구의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개념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알아서 나서서 하는 마음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누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개념이 없어야 가능하다. 가정은 혼자 사는 곳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는 일도 함께 해야 한다. 남편이 아내의 가사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즉, 부부 중 한 사람만 이런 마음을 가지면 불가능하니, 둘이 서로 통해야 한다.
물론 어떤 일은 둘 중 한 사람이 더 잘하니,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 우리 집 식사 중에서 양식은 주로 남편이 하고, 한식은 내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혼자 다 하도록 내버려 두기보다는, 옆에서 마늘도 다지고, 야채도 볶고, 상도 차리고 하면서 참여하면 훨씬 빠르고 능률이 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이 산다는 느낌으로 즐거워진다.
옛날에 이 사람을 만나기 전에 나에게 식사는 한 끼를 때우는 것이었다. 온전히 내 손에 놓여있는 식사는 일거리 그 이상이 아니었고, 어떻게 균형 있게 식사를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지만 즐기기보다는 부지런히 해치워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 있을 때에는 그냥 있는 것을 한 군데 쏟아붓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화면을 보며 먹었다.
하지만 이제는 재료를 다듬고 식사를 준비하는 일이 즐겁다. 이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한 어느 날, 식사를 준비하면서 울컥 눈물이 쏟아진 적이 있었다. 아, 이게 사람 사는 것이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매일의 식사 시간이 감사하다.
▲ 호박꽃 튀김과 깻잎 꽃대 튀김 |
ⓒ 김정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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