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커플' 장고부부, 이 영화에서 만났다

양형석 입력 2021. 9. 2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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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고소영-장동건 커플이 만난 영화 <연풍연가>

[양형석 기자]

이성과 헤어졌을 때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학교나 직장을 그만뒀을 때,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에 빠질 때 성인이 된 사람들은 지인들을 불러 술을 마시곤 한다. 하지만 이는 썩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아무래도 술을 마시게 되면 자리의 성격이 본래의 취지와 어긋날 때가 많고 필요 이상으로 흥분지수가 올라가면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나친 음주는 건강에도 전혀 좋을 게 없다.

그래서 시간과 자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기분전환과 힐링을 위한 수단으로 여행을 선택한다. 물론 지금은 시국이 시국인 만큼 해외여행이 쉽지 않지만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풍경을 보면 머리도 맑아지고 복잡했던 생각도 정리되며 마음의 위안을 받을 수 있다. 복잡한 계획도 필요 없다. 여행지에서는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만 가방에 넣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걷기만 해도 충분하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현지에 살고 있는 새로운 인연을 만날 수도 있다. 1999년에 개봉한 고소영, 장동건 주연의 영화 <연풍연가>는 제주도에서 여행 가이드 일을 하는 여자와 제주도로 여행 온 남자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잔잔한 데이트용 멜로 영화다. 그리고 영화 <연풍연가>를 통해 처음 인연을 맺었던 두 주인공 고소영과 장동건은 지난 2010년 결혼해 슬하에 두 아이를 두고 연예계를 대표하는 스타부부가 됐다.
 
 <연풍연가>는 1999년 발렌타인데이를 겨냥해 2월13일에 개봉한 달달한 데이트 무비다.
ⓒ 시네마 서비스
 
90년대 최고 조각미남과 X세대 대표 미녀

지난 2017년 KBS 월화드라마 <완벽한 아내>는 배우 고소영이 2007년 <푸른 물고기> 이후 10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로 큰 화제를 모았다. 사실 전성기 시절에도 연기에서 썩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고소영은 <완벽한 아내>에서 크게 성장한 연기로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시청률에서는 방영기간 내내 5%를 넘나드는 데 그쳤다. <완벽한 아내> 종영 후 고소영은 다시 TV나 영화에서 보기 힘든 배우로 돌아갔다.

하지만 고소영이 처음부터 '게으른 배우'였던 것은 아니다. 1992년 데뷔 후 약 8~9년 동안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던 여성 배우가 바로 고소영이었다(전도연, 심은하와 함께 불리던 9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라는 타이틀은 그저 미모로 얻은 것이 아니다). 영화 <구미호>에서 여우를 연기했던 고소영은 1997년 인생작으로 꼽히는 <비트>를 만났다. 고소영은 <비트>에서 친구의 자살로 상처 입은 날라리 모범생(?) 로미 역을 야무지게 소화했다.

1992년 MBC 공채 21기 탤런트로 데뷔한 장동건은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아이싱>을 통해 대세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장동건은 1997년 영화 <패자부활전>과 <홀리데이 인 서울>이 나란히 흥행에 실패하며 스크린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1999년에 개봉한 영화 <연풍연가>에 나란히 캐스팅됐다. <연풍연가>는 '한국의 브란젤리나 커플'로 불리는 장고부부를 이어준 오작교 같은 영화가 됐다.

하지만 <연풍연가> 이후 배우로서 두 사람의 행보는 크게 엇갈렸다. 장동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친구> <해안선> 등을 통해 배우로 인정받고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달렸다. 반면에 고소영은 주연을 맡았던 <이중간첩> <아파트> <언니가 간다>가 흥행 실패하면서 탄탄대로였던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사진으로만 출연했던 <공동경비구역 JSA>가 고소영의 대표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오랜 기간 친구로 지내던 고소영과 장동건은 2010년 5월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며 백년가약을 맺었다. 결혼 후 2010년 아들 준혁군, 2014년 딸 윤설양을 낳은 고소영은 2017년 드라마로 컴백했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장동건 역시 2019년 tvN의 대작 <아스달 연대기>가 한 자리 수 시청률에 그치며 기대 만큼의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작품의 성공여부와 별개로 장고부부의 행보는 여전히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얻고 있다.

연애에 대한 스스로의 철칙을 깬 영서
 
 고소영(오른쪽)과 장동건은 <연풍연가>에서 처음 만나 2010년에 결혼식을 올리며 부부가 됐다.
ⓒ 시네마 서비스
 
태희(장동건 분)는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를 모시는 일과 일본지사 발령 기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혼자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관광가이드 일을 하는 제주도 토박이 영서(고소영 분)는 상처만 남기고 떠날 여행객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공항에서 소매치기가 나타나면서 태희와 영서는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정신 없는 와중에 우연히 만난 인연이 장동건과 고소영이라니. 영화니까 가능한 얘기다.

운명 같은 우연 이후 태희와 영서는 관광지에서 계속 마주친다. 마치 누군가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두 사람은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닐 때마다 계속 만나게 되고 영서는 제주도가 처음인 태희에게 숙소를 잡아주는 친절을 베푼다. 그리고 태희는 영서에게 자신의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해줄 것을 부탁한다. 모든 관객들이 느낀 것처럼 노골적인 '작업'이었지만 여행객과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던 영서는 덜컥 태희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영서가 태희의 제안을 받아 들인 후 <연풍연가>는 두 사람이 제주도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그야말로 제주 관광청에서 좋아할 만한 장면들의 연속이다. 실제로 <연풍연가>에서는 산굼부리, 도깨비도로, 성산일출봉, 제주민속촌, 마라도 같은 제주도의 관광명소들이 자연스럽게 소개된다.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연풍연가>를 미리 감상하는 것도 여행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태희와 영서는 마라도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밤중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달콤한 첫 키스를 나눈다(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선남선녀가 단둘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에서 밤을 보내지만 <연풍연가>는 15세 관람가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다음 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지만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연락을 받은 태희는 급히 서울로 떠나고 그 흔한 휴대폰도 없이 제주에 남겨진 영서는 혼자서 태희를 그리워한다.

기다리다 못한 영서는 서울로 찾아가지만 마침 태희 역시 영서를 찾아 제주로 떠나 두 사람은 만나지 못한다. 태희와 영서가 제주 공항에서 간발의 차이로 엇갈리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많은 탄식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태희는 영서와의 추억이 담긴 나무 아래서 영서를 기다렸고 "오다가 낚싯대를 샀어요. 갈매기 낚시나 할까 해서"라는 말로 사랑을 고백한다('갈매기 낚시'는 서울촌놈인 태희에게 건넸던 영서의 농담이었다).

고소영의 친구 A로 출연했던 박진희
 
 <연풍연가>는 스타배우가 출연한 제주도 홍보영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제주도의 관광명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 시네마 서비스
 
지난 2014년 5세 연하의 판사와 결혼을 한 배우 박진희는 안정된 연기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다. 특히 <쩐의 전쟁>의 서주희나 <자이언트>의 황정연 같은 정의롭고 강단 있는 캐릭터로 많은 시청자들의 호감을 샀다. 지금은 유명배우가 된 박진희도 신인 시절에는 주인공 옆에서 감초 연기를 하며 경험을 쌓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연풍연가>였다(조연캐릭터답게 엔딩 크레딧에도 이름 없이 '미스 홍'으로만 나온다).

미스 홍은 제주도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 점원이다. 사랑에 대한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경험이 아닌 책으로 배운 것이다. '주인공의 친구A'라는 포지션답게 영서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본인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영서는 태희에게 첫 키스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친구 하나 밖에 없다고 하는데 영화 속에서 영서의 친구로 소개된 캐릭터는 미스 홍 한 명 뿐이다.

미스 홍이 영서의 친구 위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감초 역할에 충실했다면 배우 김정학이 연기한 감동하는 영서를 짝사랑하는 소꿉친구로 출연해 스토리에 적극 개입한다. 경찰인 동하는 영화 중반까지 신호위반 딱지를 미끼로 영서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영서가 태희와 어울리자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랑의 방해꾼' 역할을 한다. 하지만 태희가 떠난 후 영서가 혼자 힘들어하자 동하는 경찰 전산망을 이용해 태희의 소재를 찾아준다.

동하를 연기한 김정학은 1995년 국민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이종도(정성모 분)의 청년시절 역을 통해 데뷔한 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인 중견 배우다. 관객들에게는 <공공의적> 시리즈에서 강철중(설경구 분)의 파트너 김형사 역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특히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광주의 야학당 선생 윤상원 역을 맡아 '5.18 민주화 운동' 에피소드에서 죽음을 앞두고 '아침이슬'을 선창하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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