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주택공급, 언제까지 희망고문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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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의 부동산시장 상황은 34년 전을 떠오르게 한다.
1987년 대선 당시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는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급등이었다.
이들은 당선되면 30년 동안 월세 60만원으로 사는 기본주택 100만가구를 짓겠다거나, 5년간 전국에 25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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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의 부동산시장 상황은 34년 전을 떠오르게 한다. 1987년 대선 당시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는 주택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급등이었다. 당시 집권 여당의 노태우 후보는 수도권 90만가구를 포함한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공약의 산물이 바로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다. 당시만 해도 금단의 땅으로 여겼던 남단녹지까지 파헤쳐 대규모 신도시를 조성했지만 이를 통한 공급물량은 30만가구가 채 안됐다. 여기서 정부는 신의 한수를 뒀다. 바로 ‘다가구주택’ 제도 도입이다. 창고, 지하층 등을 불법으로 임대하던 단독주택을 양성화해 제도권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수치상 공급을 늘릴 수 있었다. 한 채짜리 단독주택이 하루 아침에 여러 채의 다가구주택으로 탈바꿈하는 마법이 작동한 것이다.
숫자는 채웠지만 다가구주택 제도 도입의 대가는 컸다. 우후죽순 들어선 다가구주택은 양호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었던 대도시 내 주요 단독주택가를 잠식한 데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차난, 슬럼화 등 심각한 문제를 양산했다. 무분별한 다가구주택 건립이 낳은 과밀화는 재개발·재건축 등 노후 주거지 재생을 위한 도시정비 사업조차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소가 됐다. 비현실적인 숫자를 채우기 위한 정부의 무리수가 두고두고 도시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셈이다.
주택공급을 둘러싼 ‘뻥카’ 논란은 노태우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매번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겪어왔던 일이다. 지난 4년여간 줄곧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다주택자, 갭투자자, 과도한 유동성 탓만 들며 수요 억제만 고집했던 문재인 정부도 공급 부풀리기 유혹은 이기지 못한 것 같다. 지난해 8·4대책, 올해 2·4 대책 등 굵직한 공급 대책을 통해 약속한 물량은 수치상으로 보면 200만호 공급을 약속했던 노태우 정부를 뛰어넘는 역대급이다.
그런데 숫자만 닮았으면 좋았을 것을, 내용도 과거 200만호 공급 계획과 닮았다. 당장 2·4대책만 들여다 보자.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추가 공급하겠다고 밝힌 83만6000가구의 공급물량 상당수는 솔직히 실체가 없다. 직접 땅을 조성해 공급하는 26만3000가구를 빼면 대부분 모두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한 기대치다. 심지어 이중 10만가구는 비주택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하거나 민간이 짓는 주택을 매입해 확보하겠다는 물량이다. 억지로 쥐어짜낸, 과장된 숫자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무리하게 후보지를 선정한 공공 주도 재개발은 곳곳에서 주민 반대에 부딪히고 있으며 재건축은 후보지 선정조차 만만치 않다.
여기에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공약들은 과거 실체조차 없는 ‘500만호 공급’을 약속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과 견줘도 과장의 정도가 뒤지지 않는다. 이들은 당선되면 30년 동안 월세 60만원으로 사는 기본주택 100만가구를 짓겠다거나, 5년간 전국에 250만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서울 강북권에 반의 반 값 아파트를 지어 주겠다는 후보도 있다. 군소 정당도 아닌 여야의 유력 후보들이 내놓은 청사진이다. 어디서 땅을 구해서 무슨 돈으로 짓겠다는 구체적 방안은 ‘당연히’ 없다.
역대 정부의 공급 대책들이 남긴 교훈은 간단하다. 주택 공급이 그리 쉬운 것이었다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일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정부도, 정치권도 주택 공급을 둘러싼 숫자 놀음은 그만 멈추자. 언제까지 국민을 희망고문할 건가.
정두환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dhjung6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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