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가 택한 김도영, 제2의 이종범 될까?
[김종수 기자]
▲ KIA 타이거즈 시절 이종범 |
ⓒ KIA 타이거즈 |
한국시리즈 통산 11전 전승에 빛나는 최고 명가 타이거즈에서 이종범이라는 이름은 굉장히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거포는 물론 원조 이도류로도 명성을 떨친 김성한, 콧수염 홈런왕 김봉연, 장타력을 겸비한 슈퍼 쌕쌕이 이순철, 발 빠른 거포 홍현우, 메이저리그 출신 최희섭 등 쟁쟁한 연고 출신 타자들 중에서도 단연 역대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비단 타이거즈라는 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투수는 선동렬,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20승 투수 이상의 가치를 지닌 선수' 등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종범은 프로야구 역사상 전체 1위를 다툴만한 위상을 가진 레전드 야수다. '야구천재'라는 별명이 공식적으로 붙은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유격수로 뛰던 시절의 이종범은 리그 전체에서 경쟁 상대조차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른 야수였다. 팀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과 더불어 구름 관중을 몰고다닐 수 있는 스타성을 겸비하고 있었다.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갖춘 1번 타자면서도 웬만한 거포 뺨치는 장타력과 클러치 능력, 여기에 정상급 수비력까지 갖춘 대표적인 ´5툴 플레이어(five-tool player)´로 이름을 날렸다.
1997년 30홈런을 기록하며 이승엽(32개)과 팽팽한 홈런왕 경쟁을 펼친 것을 비롯해 역대 최소경기(1439경기) 1000득점, 최소경기 500도루(1439경기), 한 시즌 최다도루(84개)-최다 선두타자 홈런(44개) 등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을 만큼의 화려한 기록을 보유했다. 일본무대에 진출해 치명적인 부상만 없었다면 국내 야수의 기록 상당 부분은 이종범의 몫이 됐을 것이 분명하다.
정규리그, 한국시리즈, 올스타전 MVP를 석권한 것은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국가대표로 이름을 떨쳤다. 포수 포함 야수의 전 포지션을 경험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야구 센스 자체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종범이 곧 전략이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게 느껴지는 이유다.
때문에 타이거즈 구단과 팬들 사이에서는 '제2의 이종범'에 대한 기대가 컷던 것이 사실이다. 김종국을 필두로 이현곤, 정성훈, 김민철 등 기대되는 선수는 많았지만 비슷하게조차 보여준 사례가 없을 정도로 그 벽은 너무 높고 거대했다. 그나마 그 뒤를 이을 수도 있었던 박재홍은 스스로 연고팀을 거부한 케이스이고 김선빈은 잘하기는 했지만 이종범과 비교하면 한계가 뚜렷했다. 아쉬움이 깊을수록 제2의 이종범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 KIA 타이거즈 1차지명자 김도영 |
ⓒ KIA 타이거즈 |
150㎞ 파워피처 제치고 선택한 미래
이번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은 KIA로 팀명이 바뀐 이후 가장 깊은 고민을 안겨줬다는 후문이다. 올시즌 투타 최고 유망주 둘이 한꺼번에 연고지에서 나왔기 때문으로 어쩔 수 없이 한명을 골라야 하는 팀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을 넘어 정말로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최대어를 뽑는 기쁨보다 또 다른 최대어를 놓칠 수밖에 없는 아픔이 컸기 때문이다.
이번 드래프트에서는 유달리 좋은 재목들이 연고 지역에서 쏟아져나오며 KIA의 선택을 어렵게 했다. 김도영 외에도 함께 광주동성고를 이끌었던 우완 투수 신헌민, 순천효천고 포수 허인서 등이 있었으며 특히 문동주(18·광주진흥고)는 150km이상의 강속구를 뿌려대며 주목을 받았다. 김도영에게만 쏠렸던 관심은 문동주에게도 나눠졌고 '문김대전'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치열한 2파전 양상을 보였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다'는 말이 있다. 어지간히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해당 학년 전국 1위급 투수를 거르고 야수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최고 수준으로까지는 인정받지 않았던 문동주는 올해 들어가진 각종 연습경기와 대회 등을 통해 힘으로 상대 타선을 누를 수 있는 꾸준한 구위를 보여줬고 어느덧 김도영 이상의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제구와 경기운영 능력 면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도 노출했으나 고등학교 진학 이후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업했기 때문에 어깨 상태가 좋고, 그만큼 발전가능성도 높았다. 큰 체격(188cm·92kg), 긴 팔다리 등 신체조건도 합격점이었다. 1차 지명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수개월 전부터는 문동주 쪽으로 분위기가 쏠리는 듯 했다.
김도영도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 '1차 지명을 받고 싶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등의 말을 하며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은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하지만 막판 대반전이 일어났다. KIA의 선택은 문동주가 아닌 김도영이었다. 내심 김도영을 원하던 KIA팬들까지 깜짝 놀랄 정도로 예상밖 결과였다.
물론 투수와 타자의 차이만 있을 뿐 김도영 선택도 이변까지는 아니다. 광주대성초, 동성중을 거쳐 동성고에 진학했던 김도영은 2학년때부터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전국구 유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유격수 수비를 보면서 활발한 타격과 빠른 발을 선보였던 그의 모습에 팬들은 지역 레전드 이종범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유격수 포지션을 보면서 공격까지 잘하는 선수는 프로에서도 드문 편인지라 많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활발한 주루능력은 대대로 호타준족 야수가 많았던 타이거즈 '대도'계보를 잇기에 충분해 보였다. 특유의 몰아치기를 앞세운 고타율은 물론 대학 팀과의 윈터 리그 경기에서 홈런을 뻥뻥 터트리며 파워툴 장착 가능성까지 증명했다.
KIA로 팀명이 바뀐 이후 타이거즈는 팀에서 성장시킨 야수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조범현 감독 시절 나지완, 김선빈, 안치홍 등이 한꺼번에 주전급으로 발돋움한 이후 오랫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야심차게 뽑았던 김주형은 만년 유망주로 커리어를 마치고 말았으며 황대인, 박민, 홍종표, 한준수 등은 아직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작부터 기대가 컸던 최원준도 지난해부터 주전급으로 성장하고 있으나 아직 갈길이 멀다.
공격에서 가능성을 보이면 수비가 불안하고, 수비가 좀 된다 싶으면 타격에서 낙제점을 보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유망주뿐 아니라 현재 주전급 선수들에게서도 그런 모습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때문에 공수 모두에서 가능성을 보인 김도영에 시선이 갔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아직 데뷔 조차 하지 않은지라 어느 정도 선수로 성장할지는 미지수지만 플레이 스타일에서는 상당 부분 이종범을 닮은 것도 사실이다. 공수주를 모두 겸비한 이종범이었지만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를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는 빠른 발이었다.
김도영 또한 일단 그 부분에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우타자 임에도 타격 후 1루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3.9초까지 나온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주력 하나는 프로에서도 확실히 통할 것이다는 평가다. 공격적인 주루플레이나 빼어난 컨텍능력을 바탕으로한 적극적인 타격 또한 닮아있다. 센스도 나쁜 편은 아니지만 탁월한 운동능력을 앞세운 플레이가 돋보이는 점도 이종범과 흡사하다.
문제는 수비다. 김도영이 KIA팬들의 기대대로 제2의 이종범으로 커나가기 위해서는 유격수 포지션을 프로에 가서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똑같은 3할, 30도루를 기록한다 해도 어떤 포지션을 맡고 있느냐에 따라 팀공헌도나 선수 가치는 확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유격수 수비가 나쁜 편은 아니지만 종종 실책도 나오는 등 기복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어 이 부분이 김도영의 프로커리어를 가를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아직 프로에서 제대로 된 연습경기도 치르지 않은 상태인지라 '김도영이 유격수를 소화할 수 있다 없다'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다만 한창때 이종범이 그랬듯 워낙 공격적으로 수비에 임하는지라 유격수 범위 이상의 수비를 하다가 실책도 범했던 만큼 프로에서 어떻게 다듬느냐에 따라 달라질 공산도 크다.
과연 김도영은 투수 최대어를 거르고 자신을 뽑은 팀에 파란불을 가득 밝혀줄 수 있을까, 제2의 이종범을 꿈꾸는 새끼 호랑이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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