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준족 외야수' 민병헌, 정든 그라운드 떠난다
[양형석 기자]
KBO리그를 대표하던 우타 외야수 민병헌이 현역 은퇴를 선택했다.
롯데 자이언츠 구단은 26일 공식 SNS를 통해 2019년과 작년 주장을 역임했던 외야수 민병헌이 16년의 현역 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민병헌은 구단을 통해 "선수 생활 종반을 롯데에서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 구단에 조금 더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많이 아쉽다. 그동안 아낌 없는 사랑과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지난 2006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한 민병헌은 통산 1438경기에 출전해 타율 .295 1266안타99홈런578타점751득점187도루를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호타준족 우타 외야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2019 시즌 뇌동맥류 진단을 받은 민병헌은 지난 1월 수술을 받으며 재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끝내 옛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만34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유니폼을 벗게 됐다.
군복무 후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 성장
지난 2006년 신인 드래프트는 두산의 역사를 바꾼 운명 같은 행사였다. 현역 최고의 포수로 성장한 양의지(NC 다이노스, 2차8라운드)를 비롯해 최주환(SSG랜더스,2차6라운드), 김현수(LG트윈스,육성선수) 등 두산의 왕조시대를 이끈 주역들을 대거 선발했기 때문이다. 2004년 덕수고 황금사자기 우승의 주역인 '민뱅' 민병헌도 같은 해 2차2라운드 전체14순위 지명을 받고 두산에 입단했다.
루키 시즌부터 대주자 요원으로 꾸준히 경기에 투입돼 80경기에서 17도루를 기록한 민병헌은 2007년 두산의 주전 우익수 자리를 차지했다. 30도루를 기록한 민병헌은 이종욱(NC작전·주루코치,47도루), 고영민(두산 작전코치,36개)과 함께 두산의 '발야구 트리오'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듬 해부터 민병헌의 성장속도는 기대보다 더뎠고 프로에서 5년을 보낸 민병헌은 2010 시즌이 끝난 후 병역의무를 마치기 위해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다.
민병헌은 2011년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373 2홈런54타점70득점23도루로 맹활약하면서 북부리그 타격왕에 올랐고 2012년에도 .342의 타율을 기록하며 자신감을 끌어 올렸다. 경찰 야구단에서 복무하며 기량이 급성장해 전역 후 1군에서도 스타로 군림한 최형우(KIA타이거즈), 양의지처럼 민병헌 역시 유승안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경찰청 버프'를 통해 기량이 급성장한 것이다.
2012 시즌 막판에 전역한 민병헌은 2013년부터 두산의 주전 외야수 자리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열었다. 2013년 타율 .319 9홈런65타점71득점27도루를 기록한 민병헌은 프로 데뷔 8년 만에 처음으로 3할 타자에 등극했다. 2014년부터는 도루 숫자가 다소 줄어 들었지만 대신 매년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장타력을 장착해 리그를 대표하는 우타 외야수로 군림했다.
실제로 민병헌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과 2015년 제1회 프리미어12에서 대표팀에 선발돼 한국의 우승에 기여했고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연속 3할 타율, 2014년부터 2018년까지는 5년 연속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현수 대신 두산의 붙박이 3번타자로 활약한 2016시즌에는 타율 .325 166안타16홈런87타점98득점으로 생애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뇌동맥류 질환으로 만34세에 현역은퇴
2017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은 민병헌은 그 해 11월 4년80억 원이라는 거액에 롯데와 FA계약을 체결하며 홈구장을 잠실에서 사직으로 옮겼다. 물론 그 시절 롯데는 손아섭과 전준우라는 국가대표급 외야수 두 명에 3할에 근접한 타율을 기대할 수 있는 교타자 김문호까지 버틴 외야가 강한 팀이었다. 하지만 3할 타율과 두 자리 수 홈런,70개 이상의 타점을 보장하는 특급 외야수 민병헌의 가세를 롯데로서도 전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민병헌은 팬들의 기대대로 롯데 이적 첫 시즌이었던 2018년 118경기에 출전해 타율 .318 17홈런66타점74득점을 기록하며 두산 시절에 버금가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주장을 맡은 2019년에는 출전경기 수가 101경기로 줄어 들면서 9홈런43타점52득점으로 개인기록이 다소 하락했다. 하지만 민병헌은 최후의 보루였던 '7년 연속 3할 타율'을 유지하며 롯데의 주장이자 엘리트 우타 외야수로서 자존심을 지켰다.
그렇게 KBO를 대표하는 '꾸준함의 상징'이었던 민병헌은 작년 시즌 109경기에서 타율 .233 2홈런23타점42득점으로 성적이 뚝 떨어지고 말았다. 믿었던 주장의 배신(?)에 많은 롯데 팬들은 부진한 민병헌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다. 실제로 작년 시즌 민병헌의 활약은 4년80억 짜리 FA 계약을 체결했던 고액연봉 선수로서도, 이대호의 뒤를 이어 롯데의 주장을 맡은 베테랑 선수로서도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작년 민병헌의 부진에는 이유가 있었다. 민병헌은 2019년 심한 두통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결과 뇌혈관 벽에 균열이 생겨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뇌동맥류 판정을 받았고 이로 인해 제대로 된 훈련을 소화할 수 없었다. 지난 1월 수술을 받은 민병헌은 올 시즌 1군에서 14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 .190 2타점5득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겼고 고민 끝에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혹자는 민병헌이 병마를 이겨내고 복귀했던 몇몇 선수들처럼 끝까지 병마와 싸워 그라운드에 복귀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쉽게 이야기한다. 물론 야구선수 민병헌을 더 이상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다는 점은 아쉽겠지만 은퇴 여부는 전적으로 선수 개인이 선택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인 민병헌은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힘든 재활 대신 자신의 건강과 가족들을 위한 은퇴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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