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결정.. 민병헌의 안타까운 은퇴
[김승훈 기자]
아직 한창 현역으로 활약할 젊은 선수가 건강 문제로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롯데 자이언츠는 9월 26일 구단 발표를 통해 외야수 민병헌의 은퇴 소식을 알렸다. 지난 겨울에 수술을 받은 뒤 재활을 진행했고, 1군 경기에 복귀도 했던 민병헌이었다.
그러나 은퇴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역시 건강 문제였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로 그 정도까지 뛰었다는 것이 놀라웠을 정도였고, 경기에 많이 출전하게 될수록 주기적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안타까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 롯데 민병헌 은퇴 선언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 민병헌(34)이 26일 은퇴를 선언했다. 2018시즌부터 롯데 유니폼을 입은 민병헌은 올 시즌까지 총 4시즌 동안 34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6, 28홈런, 134타점을 기록했다. 프로 통산 기록은 1천438경기, 타율 0.295, 99홈런, 578타점이다. (롯데자이언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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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10일 생의 우투우타 민병헌은 서울 출신으로 덕수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2006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두산 베어스에 지명됐다. 첫 시즌인 2006년에는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출전하는 날이 많았는데, 백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7도루를 기록하며 호타준족의 가능성을 알렸다.
풀 타임 외야수가 된 2007년에는 30도루 시즌을 보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아시아 예선과 와일드 카드를 선발하는 최종 예선에는 출전했지만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010년에는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 백업으로 출전했다.
2010년 시즌이 끝난 뒤 민병헌은 의무경찰로 군 복무를 수행했다. 2012년 전역 후에는 정수빈(두산 베어스)의 부상으로 인하여 1군 엔트리에 바로 합류했고, 준플레이오프까지 바로 출전했다.
전역 후 다시 풀 타임 시즌을 보내게 된 민병헌은 2013년 출전 비중을 점점 늘리기 시작했다. 왼손 타자인 정수빈과 플래툰으로 출전했으며 두산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도 기여했다.
2013년 두산은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여 한국 시리즈까지 모든 라운드에 출전했지만, 한국 시리즈에서 3승 1패 후 3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민병헌의 2013년 포스트 시즌 성적은 타율 0.111에 3안타 2볼넷 2타점 2득점에 그쳤다.
이후 이종욱(현 NC 다이노스 작전주루코치)이 FA로 이적하면서 민병헌은 2014년부터 리드오프를 맡게 됐다. 한때 타율 0.371까지 기록하며 타격왕에도 도전했고,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도 선발됐다.
아시안 게임에서는 타율 0.500(20타수 10안타)에 3타점 8득점 2도루로 맹활약하며 금메달을 획득했다. 대회 이후 10월에 부진하면서 시즌 최종 타율은 0.345(162안타 3위)로 마감, 타격왕은 최초의 200안타 시즌을 만든 서건창(현 LG 트윈스, 2014 정규 시즌 MVP 수상)에게 내주게 됐다.
두산의 전성기를 함께 누렸던 민병헌
2015년 김태형 감독의 부임 이후 두산은 매년 한국 시리즈 단골 손님이 됐다. 2020년까지 6번의 한국 시리즈를 모두 진출했고, 그중 3번(2015, 2016, 2019)이나 챔피언에 올랐을 정도였다. 그리고 민병헌 역시 2017년까지 두산에 힘을 보탰던 타자였다.
정규 시즌 3위로 2015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두산은 한국 시리즈까지 진출하여 당시 팀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삼성 라이온즈를 만났다. 대구에서의 1차전은 삼성이 승리했으나 이후 분위기는 두산이 뒤집었고, 2차전부터 5차전까지 4연승을 거두며 업셋 우승까지 이뤄냈다.
2015년 민병헌의 포스트 시즌은 개인 활약도 빛났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 데일리 MVP에 이어 플레이오프 1차전 멀티 홈런(MVP는 완봉승 기록했던 더스틴 니퍼트), 한국 시리즈 4차전 데일리 MVP에 선정되면서 우승에 기여한 것이다.
2015 시즌이 끝난 뒤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에도 출전했다. 여기서 민병헌은 쿠바와의 준준결승전에서 선제 적시타를 기록하는 등 대한민국 대표팀이 제1회 대회에서 우승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김현수(현 LG 트윈스)가 FA 계약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민병헌은 최고참 외야수가 됐다. 민병헌은 타율 0.325에 166안타 16홈런 87타점 98득점 9도루를 기록하며 주축 선수로 계속 활약했고, 두산의 통합 우승에 기여하며 자신의 가치도 높였다.
2017년 민병헌은 제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도 출전했지만, 대표팀이 1승 2패로 1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아쉬운 봄을 보냈다. 정규 시즌에서는 타율 0.304에 136안타 14홈런 71타점으로 활약했다. 5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꾸준히 과시했고, 민병헌의 활약 속에 두산은 2017년에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민병헌은 2017년 포스트 시즌에서도 타율 4할 대로 활약했다. 그러나 다른 타자들이 한국 시리즈에서 부진에 빠졌고, 특히 2차전에서 양현종(현 라운드락 익스프레스)의 1-0 완봉승 활약에 타선이 크게 침체되는 바람에 민병헌의 활약은 그 빛이 바랬다. 5차전에서 승부가 KIA 타이거즈 쪽으로 기울었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으나 9회말 대기타석에서 민병헌에게 기회가 오기 전 경기가 끝나 버렸다.
롯데로의 이적, 악화된 건강
2017년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은 민병헌은 당시에는 있었던 원소속 팀 우선 협상기간 두산과의 협상이 결렬됐다. 그리고 다른 팀과의 협상이 시작된 첫날에 바로 롯데와 4년 80억 원 계약을 체결했다. 롯데에서는 손아섭과 우익수 포지션이 겹치면서 중견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롯데로 이적한 뒤 민병헌은 2018년 5월 내복사근 파열로 1달 동안 전력을 이탈했다. 6시즌 연속 3할 타율에 5시즌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0.318 141안타 17홈런 66타점 74득점 8도루)했지만, 볼넷이 줄어들면서 선구안의 불안감도 드러냈다.
2019년에도 민병헌은 몸맞는 공으로 인하여 부상으로 장기 이탈했다. 전반기가 끝난 뒤 양상문 전 감독이 물러났는데,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에서 기존 주장이었던 손아섭으로부터 주장을 물려 받아 팀을 이끌게 됐다. 시즌 성적은 101경기 타율 0.304 112안타 9홈런 43타점 52득점 13도루였다.
2019년 제2회 프리미어 12 대표팀으로 출전했던 겨울에는 이전의 국제대회보다는 활약상이 줄어들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기록하게 됐다.
2020년 민병헌의 기량은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려진 것이지만 건강 문제였는데, 이 문제로 민병헌은 2군에서 감각을 회복하고 싶었으나 허문회 전 감독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1군 선수단에 동행하게 했다.
2020년 시즌을 마친 뒤 민병헌은 주장을 전준우에게 넘겼다. 성적이 부진했던 원인은 건강 문제였고 그나마 수비 감각은 무너지지 않아서 경기에 가끔 출전하긴 했다. 그리고 2019년에 뇌동맥류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이 이때가 되어서야 알려졌다.
가족력이었던 뇌혈관 질환... 뇌동맥류 여파로 은퇴
뇌동맥류는 뇌혈관 벽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 동맥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오르는 질환이다. 혈관이 터지거나 주변 신경조직을 압박하여 증상이 나타나는데, 민병헌의 경우 뇌출혈로 부친을 잃은 적이 있어 가족력을 의식하고 꾸준히 건강을 체크했기 때문에 그나마 일찍 발견된 것이었다.
뇌혈관 질환이기 때문에 선수 생활을 넘어 생명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병이었다. 일단 민병헌은 2021년 1월 서울에서 수술을 받았고 재활에 돌입했다. 당초 반 년이 넘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민병헌은 5월에 퓨처스리그에 복귀하는 빠른 재활 속도를 보였다.
수비에는 큰 무리가 없었으나 보다 집중력을 요하는 타격에서는 뇌혈관 질환을 앓은 여파가 드러났다. 5월 말 1군에 등록되긴 했으나 6월에 바로 1군에서 제외되었고, 팔꿈치 뼛조각 부상이 겹치면서 경기도 제대로 출전하지 못했다.
민병헌은 후반기에 래리 서튼 감독으로부터 기회를 다시 받았다. 그러나 경기력이 좀처럼 나아지지 못했고, 결국 8월 31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된 것이 마지막 1군 기록이 되고 말았다.
한가위 연휴를 보내고 난 뒤 민병헌은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했다. 결국 뇌동맥류의 여파로 선수로서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평소 훈련 때 연습도 많이 했고, 체력적으로 무리가 많은 중견수로 활동했으며 기마 자세의 타격 폼도 체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물론 1월에 받았던 수술 자체는 성공적으로 잘 받았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건강을 체크해야 했는데, 정규 시즌 풀 타임을 치르면서 이를 꾸준히 지키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질환이었기 때문에 민병헌은 눈물을 머금고 선수로서의 은퇴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두산이나 롯데 팬들에게 있어서는 이번 은퇴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원래대로라면 곧 두 번째 FA 자격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 은퇴의 근본적인 원인이 경기력 저하보다는 건강의 문제였다는 점에서 더 이상 그의 경기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일단 민병헌은 당분간 뇌혈관 관련 치료에 집중할 예정이다. 은퇴식 등의 행사나 추후 진로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 너무 일찍 선수 유니폼을 벗게 된 민병헌이 건강을 회복하고 제2의 야구 인생을 건강하게 다시 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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