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종문화회관, 재정난에 연말까지 기획공연 상당수 취소
서울을 대표하는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이 재정난으로 연말까지 남은 올 시즌 기획공연의 대부분을 취소 또는 연기했다. 약 75억원의 적자재정이 예상되자 재정수지 회복을 위해 10월 이후 전속 예술단 공연과 자체기획 공연의 상당수를 올리지 않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은 직원들의 업무추진비와 각종 수당도 삭감하거나 없애는 등 허리띠를 한층 졸라맸다. 하지만 남은 기간 인건비 등 경상비용 충당조차 쉽지 않아 서울시로부터 긴급하게 추경예산을 확보하거나 은행 차입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 시즌 라인업 코너는 현재 10월 공연에만 취소가 공지돼 있다. 11월 이후에는 서울시오페라단 ‘로미오와 줄리엣’(11월 4~7일 대극장)에만 연기됐다고 표기돼 있고, 나머지엔 아직 공지가 없다. 하지만 서울시무용단과 서울시오페라단 등 전속 예술단 관계자들 모두 “세종문화회관 측으로부터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연말까지 공연을 올릴 수 없다는 전달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단원들의 경우 공연을 하지 않더라도 월급을 받는다. 하지만 무대에 서지 않는 것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잃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에 대해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12월 공연은 미정 상태로, 새로운 사장님의 취임 이후 다시 논의해 방법을 찾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은 외부 창작진과 출연진에게 코로나19 확산과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연장으로 불가피하게 공연을 취소한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7월부터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가 이어지고 있어도 수도권 공연장들이 지난해와 달리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종문화회관의 이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실제로 세종문화회관이 지난 7월 20일 가을-겨울 공연 라인업을 다시 한번 발표하며 티켓을 오픈한 것은 당시만 해도 재정 악화를 생각하지 못하고 공연을 모두 올릴 계획이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래 지난 3월 공연될 예정이었지만 개막을 앞두고 출연자 확진으로 11월로 연기됐었다. 주요 배역과 오케스트라는 외부 예술가와 단체가 참여하고 합창은 서울시합창단이 맡는 형태인데, 11월 공연을 다시 연기한 것에 대해 창작진과 출연진에게 서울시합창단에서 나온 코로나 확진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시합창단에서는 9월 초 5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진 가운데 성악가 A씨는 “지난 15일 공연이 내년 3월로 연기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무대세트와 의상 등이 이미 제작됐기 때문에 완전 취소 대신 재연기로 결정된 것 같다”면서 “합창단에 확진자가 나왔다곤 하지만 11월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서둘러서 연기한 게 이상했다. 이후 세종문화회관의 재정난에 대해 듣고는 오페라의 경우 제작비가 많이 들고 적자 폭이 크기 때문에 취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연이 취소된 ‘다섯, 하나’의 창작진 B씨는 “세종문화회관이 이번에 공연 취소에 대한 불가항력적 이유로 코로나19를 댄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세종문화회관과 상의해 최종적으로 공연 취소를 결정했지만 이 프로덕션을 위해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스케줄을 비우고 준비했던 게 헛수고가 되면서 상실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세종문화회관이 이런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것은 1차적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여파 때문이다. 세종문화회관의 연간 예산은 대체로 서울시 출연금 60%와 자체 수입 40%(티켓 판매·대관·임대 수익 등)로 이뤄지는데, 코로나19 탓에 자체 수입이 평소 수준에 훨씬 못 미친 것이다. 아무래도 공연이 취소되거나 줄면서 대관 수입이 줄었고, 공연장 내 거리두기 적용으로 티켓 판매가 저조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하 1층 식당가의 장기 휴업, 민간에 위탁하던 세종홀(컨벤션홀)의 운영 중단에 따른 위탁료 급감이 타격을 안겼다.
세종문화회관의 올해 예산은 587억원으로 서울시 출연금 356억원, 자체 수입 208억원, 잉여금 23억원으로 편성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체 수입(티켓 판매·대관·임대 수익)이 예상치의 40% 정도에 그쳤으며 잉여금 역시 60%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도 서울시 추경을 받아 적자를 메운 세종문화회관이 코로나 팬데믹이 지속될 것이 분명한 올해도 자체 수입 비율을 40%로 정하고 계획을 짠 것은 문제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공연장의 재정 위기는 비단 세종문화회관만이 아니다. 지난해 극장 용은 직원들의 무급휴직과 단축근무를 실시했으며 예술의전당은 현금 유동성 위기에 은행으로부터 70억원의 차입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극장은 국공립 공연장 가운데 대관과 부대시설 운영 등으로 재정 자립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예상못한 재난에 공연장 문을 닫는 기간이 길어져 수입이 급감하자 다른 공연장보다 어려움을 더 크게 겪어야 했다. 다만 올해는 공적 지원을 지난해보다 많이 받은데다 공연장 및 부대시설 운영으로 상황이 다소 나아졌다.
세종문화회관의 재정 위기는 코로나 팬데믹 종식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그동안 오랜 시간에 걸쳐 재정 문제가 계속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승엽 사장 시절인 지난 2016년 후반기에도 적자재정이 예상되자 사장의 월급을 50% 반납하는 한편 직원들의 업무추진비와 각종 수당을 삭감하거나 없앴었다. 다만 올해와 달리 공연과 전시 등 예술사업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세종문화회관의 재정난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속 예술단이 9개나 되는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크다. 올해 기준으로 일반직원과 예술단원을 포함해 약 450명이 정규직으로 소속돼 있는데, 이들의 인건비가 전체 예산의 70%나 된다. 해외 공연장이 공연 예산 확보를 위해 조직의 슬림화에 노력하는 것과 달리 세종문화회관 등 한국의 공연장은 오히려 조직이 점점 비대해지면서 경직되는 방향을 보이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에 대한 서울시 출연금의 경우 코로나19에 따른 복지 예산 증가로 문화예술 예산이 다소 삭감된 올해를 제외하면 2016년 238억, 2017년 270억, 2018년 288억, 2019년 328억원, 2020년 369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인건비의 증가폭에 비해 9개 예술단이 공연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우 낮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적자 폭이 커지는 구조인데다, 완성도가 낮아 관객의 외면을 받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시가 조만간 발표하는 신임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눈 앞의 불’인 재정난을 해결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조직의 체질을 바꾸는 개혁을 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예술과 극장경영, 조직관리에 두루 능한 노련한 전문가가 아니면 세종문화회관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려워 보인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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