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보다 죽은 왕 먼저냐"..20층 지은 아파트 철거전쟁

지난 24일 오후 1시쯤. 경기도 김포시 장릉산 중턱으로 올라서자 홍살문 뒤로 나란히 놓인 봉분(封墳) 2개가 눈에 들어왔다. 조선 인조의 양친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가 안장된 김포 장릉(章陵)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릉 40여곳 중 하나다. 이곳에선 여타 문화유산과 달리 탁 트인 경관을 보기 어렵다. 봉분을 뒤로한 채 정면을 바라보면 건축 중인 아파트 단지가 시야에 들어와서다. 내년 입주를 앞둔 인천시 서구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다. 장릉 남단에서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까진 직선거리로 약 450m다. 주민 정모(59)씨는 “예전에는 여기서 계양산까지 보였는데 이젠 아파트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인근에 건립 중인 고층 아파트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문화재청이 이 아파트가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공사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관할 지자체인 인천 서구청은 적합한 절차를 거쳤다고 항변한다. 건설사들은 문화재청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걸었다. 이와 관련해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란 주장과 “집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죽은 왕보다 산 사람이 우선돼야 한다”는 반론이 이어지면서 갈등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80% 지었는데 공사 중지 명령

그러나 지난 7월 난관에 봉착했다. 20층이 넘는 꼭대기 층까지 골조 공사를 마친 상태에서 문화재청이 공사중지 명령을 내린 것이다. 사정은 이랬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7년 김포 장릉 등 국가지정문화재 12개소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내 건축행위 등에 관한 허용기준을 변경해 고시했다. 문화재청 고시에 따라 김포 장릉 500m 반경 내 4-1구역인 해당 아파트 부지에선 최고높이 20m 이상 건축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개별심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해당 아파트 단지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와 허가를 받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문화재 보호법을 어겼다는 게 문화재청의 지적이다.
“무허가니 공사 중단” vs “적법한 절차 밟았다”


반면 문화재청은 택지개발사업 당시 현상변경 허가신청 승인이 주택건설사업에서의 현상변경으로 승계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택지개발사업과 주택건설사업의 사업시행자가 다르고 사업의 목적 및 사업 기간이 차이 나는 점을 그 이유로 든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택지개발사업 당시 사업시행자가 현상변경 허가신청을 해 ‘저촉사항 없음’ 회신을 받았다고 해서 주택건설사업까지 현상변경 의제 처리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문화재청은 김포 장릉 인근 아파트 부지에 2차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앞서 법원이 건설사들의 공사 중지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공사가 재개된 데 따른 조치다. 이번엔 건설 부지 중 보존지역에 포함되는 19개 동에만 이번 달 30일 자로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어 아파트 건설사 3곳을 문화재 보호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문화재 보호냐, 입주민 보호냐

반면 해당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사람이 먼저 아니냐”고 호소한다. 입주 예정자 임모(44)씨는“내년 9월 전세로 있는 집에서 나와 검단 새 아파트에 입주할 예정이었는데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져 앞으로가 걱정”이라며 “문화재청이 봉분이 아니라 김포 장릉 단지 끝부분을 기준으로 500m 반경을 정하는 건 불합리하다. 2017년 고시로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입주민 권리를 생각하지 않는 과도한 집행”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철거라는 극단적 상황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개선사항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관련 법에 따라 조치하겠단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다음 달 11일까지 건설사들에 문화재 보호법 위반 사례 관련해 개선책을 제출하도록 했다”며 “개선책을 검토해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향후 조치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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