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소외'의 시각으로 사회를 재해석하자면

입력 2021. 9. 2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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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과 사람들을 드러내는 글. 뭇사람들이 관심 가진 사건의 현재 추이를 꼼꼼한 문장과 숫자, 그림을 통해 드러내는 글. 뭇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해석과 분석을 드러내는 글. 셋 중 어떤 게 필요한 글일까? 정답은 김빠진 콜라처럼 셋 다이다.

기자 친구에게 물어보니 초년 사회부 기자일 때는 경찰서에 죽치고 앉아서 발굴되지 않은 사건 사고를 담담하게 짤막한 스트레이트 기사로 쓰다가, 중견 기자가 되면 사회적 현안에 대한 전반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해설 기사를 쓰다가, 관리자급이 되고 나면 논설을 쓴다고 한다. 저널리즘 글쓰기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회과학방법론 혹은 사회조사방법론 책을 뒤지다 보면, 연구자가 쓰는 글쓰기의 목적을 정의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 글쓰기의 목적을 탐색이라 하고, 둘째는 기술(記述)이라 하고, 셋째는 설명이라 한다. 연구자들도 탐색, 기술, 설명의 목적으로 저서와 논문, 보고서 그리고 칼럼 등을 쓴다.

저널리스트의 글쓰기가 탐색, 기술, 설명 중 하나로 연차와 숙련도 등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면, 연구자 글쓰기의 목적은 연구의 진척 수준, 사회적 요구 그리고 연구자 선호도 등에 따라 선택될 경우가 많아 보인다. 논문이나 학술서를 집필하는 목적이 연구자의 지적 궤적과 최근 연구 활동 그리고 지적 선호도에 의해서 정해진다면, 칼럼은 철저히 사회적 요구와 연구자 선호도에 의해 목적이 정리된다. 통상 전문가들이 주목받는 주제에 대해 ‘전문성’을 발휘해 논평하는 글쓰기를 많이 쓰고 선호한다면, 나는 가능하다면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보이지 않는 현상, 즉 소외되는 이야기들을 지면에 싣고 싶다. 그도 아니라면 내가 겪은 일을 쓰는 것을 선호한다.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 한국어로는 민속지, 민족지 혹은 문화기술지라 부른다. 낯선 현장을 장기체류와 참여관찰을 통해 겪은 바를, 덧붙여 심층면접과 초점집단면접(FGI) 등을 통해 듣고 알게 된 사연을 쓰는 인류학자의 글쓰기를 의미한다. 19~20세기 에스노그라피 작성이 제국주의 침략을 위해 필요한 정보수집 활동의 일환이었다면, ‘오지’와 ‘원시인 부족’이 사라지고 전 인류가 글로벌 자본주의에 편입돼 버린 지금, 인류학자들은 에스노그라피를 자기 사회와 기술문명에 대한 성찰과 문화해석의 매개체로 활용하려 한다. 주목받지 못해 소외된 사건과 목소리를 ‘신기한 것’이나 ‘이상한 것’으로 발가벗겨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사건과 목소리를 기준으로 우리 사회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안적 보편 언어를 만들어 보는 기획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 포털을 뒤져 보자니 대선 후보 경선, 코로나19 재확산, 국민지원금 대상 같은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슈,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시장 석권 등이 순위권에 자리 잡고 있고 많은 사람이 뉴스를 클릭하는 만큼 논평 또한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뉴스의 이슈는 ‘전국적’이라는 말 속에서 너무나 수도권 중심적이다. 약방의 감초 같은 ‘청년’이라는 표현 속에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출신’이란 편향적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정’이라는 말에는 공채 일자리와 고시 등 시험을 통해 입사하는 일자리만 인정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니 지역과 지방대생과 비정규직을 글감으로 삼는 게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국적 이슈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출신과 공채 일자리에 대해 발언해야 한다.

문재인정부 들어 지역균형발전이 커다란 화두이고 ‘지방 소멸’은 유행하는 말이 됐지만, 핵심 프로젝트 중 하나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 프로젝트가 경남도지사의 유죄 판결로 어느새 멈춰 있어도 지역 언론을 제외하면 미디어는 사회적 정치적 의제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모든 미디어가 기후위기를 말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에너지 믹스로 전력을 생산해야 한다고 말하고 원전도 해체하자고 전하지만, 스칸디나비아반도 3국(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만큼의 인구가 몰려 있는 영호남에 원전이 몇 개 있고 수도권 전력 소비의 몇 %를 공급하는지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인구절벽을 말하지만, 서울보다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지방의 여성들이 겪게 되는 노동시장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다. 그런 고민으로 지역의 눈으로, 소외된 사건과 사람들의 눈으로부터 대안적 보편을 읽어내는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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