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명당 자리를 내줬거늘.. 내 속이 터진다 [만고땡의 식물이야기]

김이진 2021. 9. 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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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고땡의 식물 이야기] 동경하던 유칼립투스, 키워보니 난이도 최상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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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진 기자]

코알라가 유일하게 먹이로 삼고 있는 나무가 유칼립투스다. 이 나무는 기름 성분이 많고 냄새가 강한 휘발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다른 동물들이 함부로 먹었다가는 큰일 난다.

특별한 방어 능력이 없는 코알라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아무도 먹지 않는 유칼립투스 잎을 먹이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잎에 영양소가 적은 편이라 코알라는 에너지 소모를 막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하루에 20시간 이상 잠을 잔다. 코알라가 게을러 보이는 이유다.

유칼립투스는 코알라 먹이로도 유명하고, 에센셜오일이나 향으로도 유명하다. 향기요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재료다. 향을 맡아보면 숲에 들어온 것처럼 진한 풀냄새가 난다. 향이 강해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있지만, 호주 원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살균 작용이나 진정 효과를 내기 위해 유칼립투스 잎을 민간 치료제로 사용해왔다. 현재는 약의 쓰임보다는 향기와 오일을 스트레스 완화나 테라피 쪽으로 적용한다.

동경의 식물, 유칼립투스

나는 꽃잡지에서 일할 때 유칼립투스의 첫 등장부터 지켜봤다. 처음에는 정말 생경한 느낌의 잎소재였다. 기다란 줄기에 동그란 잎이 어긋나거나 마주난 채 달렸고 청회색이 감돌기도 하고, 은빛 가루가 묻은 것처럼 빛이 나기도 했다. 품종에 따라 조금씩 느낌이 달랐지만 키가 큰 풀 같았다.

게다가 어라, 코알라가 먹기엔 크기가 너무 작다는 거였다. 그제서야 유칼립투스가 얼마나 대가족인지 깨달았고 원예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유칼립투스속은 700여 종이 있고, 호주 테즈메이니아 원산으로 대부분 호주에서 많이 자란다. 호주에서는 키가 100미터까지 성장하기도 한다고.
 
▲ 꽃집 풍경 가장 오른쪽이 유칼립투스다. 이렇게 작고 귀여울 수가. 향기가 있는 허브 식물군에 당당하게 함께하고 있다.
ⓒ 김이진
 
유칼립투스가 등장한 초기만 해도 플로리스트가 좋아하는 절화, 마니아들이 찾는 희소성 있는 식물로 입소문이 났다. 예전에는 아무리 비싸고 독특하더라도 잎 소재를 넣는 것보다 장미 한 송이 더 들어가는 상품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인식이 조금씩 바뀌면서 유칼립투스의 매력과 개성이 알려져 지금처럼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다가왔다. 요즘에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친숙한 식물이 되었다. 동네 꽃집에만 가도 예쁜 분화를 구입할 수 있다.

나한테 유칼립투스는 동경의 식물이었다. 일본 가드닝 잡지를 보면 유칼립투스와 올리브 나무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빈티지한 원목 가구와 소박한 질감의 토분, 자연스러운 구김을 보여주는 린넨 소품들이 어우러진 집 한켠에 유칼립투스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오밀조밀하게 짜여진 일본 가족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소소하고 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무수한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것처럼.

그래서 데려왔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데다 풀냄새를 맡고 싶기도 했다. 유칼립투스를 집에 들여놓고 보니 확실히 야생의 느낌이 났다. 줄기가 복잡하게 뻗어 휘청이는 느낌도 괜찮았다. 지지대를 세워 묶어 주었다.

아,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던 동경의 대상이 내 가까이 왔을 때 마냥 행복한 그림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한 유칼립투스는 여간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문제가 있긴 있는데 도대체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정말 문제였다.
 
▲ 유칼립투스 은빛 가루가 내려앉은 독특한 색감이다. 키우는 동안 나를 달달 볶았지만 이렇게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코를 갖다 대면 숲내음이 가득 퍼진다.
ⓒ 김이진
 
속이 터졌다. 베란다에서 바람이 가장 잘 드나드는 명당자리를 마련해줬고, 유심히 흙 상태를 들여다보고 유칼립투스를 관찰했다. 내 딴에는 따뜻하고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줬다. 그러나 웬걸, 집에 들어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잎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잎 끝이 마르는 것처럼 시들시들해졌다. 몇몇 잎은 검게 색이 변하기도 했다.

본래 작은 잎이 많이 달린 식물은 물관리가 어렵다. 잎이 넓적하고 큼직한 식물은 물을 잘 보관해두고 여차하면 자기가 축적한 수분으로 꿋꿋하게 견디곤 한다. 잎이 작으면 여유가 없어서 바로바로 신호를 보내고 급작스럽게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유칼립투스도 그랬다. 그런데, 신호가 더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었다.

잎 위쪽에서 마르다가 또 어떨 때는 아래쪽 부분에서 잎이 떨어질 때가 있다. 잎 가장자리부터 마르기도 하고 잎 전체가 통째로 마르기도 한다. 가장 당혹스러운 건 잎은 후두두 떨어지는데 쑥쑥 자란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식물이 잎이 마르거나 떨어지는 것은 성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신호이기 때문에 우선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유칼립투스는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도 성장하려는 욕구가 엄청났다. 대단한 에너지다. 한쪽에서는 잎이 떨어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새 잎이 집요하게 자라난다. 이렇게 저렇게 환경을 맞춰 줄 새도 없이 빨리 자라서 사람을 정신 못 차리게 만든다.

만만치 않은 상대... 2차전은 좀 나으려나

물이 문제인 건 확실해 보였다. 새순에서 잎마름이 시작될 때 물을 보충해주면 다시 살아나곤 했다. 유칼립투스가 성장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아래쪽 잎을 스스로 떨궈내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다. 새순한테만 햇빛 영양을 몰아주려는 걸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유칼립투스는 물이 부족해서 잎이 마르기도 하고, 물이 과해서 잎이 마르기도 한다. 물이 과한 경우라면 겉으로는 잎이 말라가지만 사실은 뿌리가 썩어서 죽게 된다. 말장난 같은 생장 환경을 요구하는 유칼립투스는 난이도 최상의 식물이었다.

고군분투의 시간들. 나름 단순한 규칙을 정했다. 위쪽 잎이 마를 때는 물을 충분히 주고, 아래쪽이 마를 때는 건조하게 두었다. 마른 잎은 바로 떼어내고, 효과적인 물 순환을 위해 목질화 된 단단한 줄기를 중심으로 가지를 조금씩 정리하기도 했다.

뜨거운 바람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물마름이 심해질 것 같아 에어컨 실외기에서 최대한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잡지에서 보던 아름다운 식물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는 실내보다는 확실히 야외에서 키우는게 속 편하다. 실내에서 키울 때와 달리 자세가 꼿꼿해지고 활기가 넘쳐보인다.
ⓒ 김이진
 
결국 유칼립투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잎이 떨어지는 현상이 심해졌다. 야속해라. 그러다 어느 순간 죽어가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유칼립투스 신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세심한 돌봄에는 약했다. 고민 끝에 야외 공간이 있는 가게로 임시 입양을 보냈다.

숨통이 트였다. 몇 주가 지났을까. 몰라보게 줄기가 튼튼해지고 잎 마름 현상이 줄어들었다. 골고루 햇빛을 받고, 물을 흠뻑 받았다가 바짝 마르는 경험을 하면서 건강해진 모양이다. 겨울 전에는 단단하게 준비를 해서 데려와야 할 텐데 고민이다. 만만치 않은 상대와 2차전 돌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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