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제안하고 나선 김여정..전문가들 "지나친 낙관 금물"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김여정 북한 부부장이 하루만에 다시 담화를 통해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보인 데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 가능성이 주요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지만, 지나친 낙관은 금물이라는 현실적 시각도 제시했다.
◆김여정의 대남 유화 제스처…전문가들도 '긍정적' = 26일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부부장의 전날 담화에 대해 "연락사무소 재설치와 남북정상회담을 재차 언급한 것은 북한이 남측이 어느 정도 실천적인 신뢰조치를 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미국와의 대화에 앞서 남북관계의 복원부터 먼저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김 부부장은 전날 저녁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의의 있는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의 재설치, 북남수뇌상봉(정상회담)과 같은 관계 개선의 여러 문제도 건설적인 논의를 거쳐 이른 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이 지난 24일에 이어 하루만인 25일에 담화를 또 낸 것은 그 전 담화에서 '진의'가 전달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 교수는 "좀 더 추가적인 내용과 설명을 위해 재차 담화를 발표한 것"이라며 "어제 담화 이후 우리 내부 동향을 주시하는 가운데, 주말에도 불구하고 다시 담화를 발표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담화가 대남 유화 제스처라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이번 담화는 기본적으로 지난 24일 담화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지만 한발짝 진전된 대남 유화 제스처"라며 "24일 담화 말미에는 적대적 언동만을 강조하고 있고 이번에는 공정성(이중기준)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 유지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도 "북이 요구내용의 수준과 문턱을 낮추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며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해서는 고무적인 제안"이라고 분석했다.
◆北도 베이징 올림픽 계기 만남 염두하나 = 김 부부장이 종전선언에 대해 24일 담화보다 더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은 데는 중국과의 협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25일자 로동신문을 통해 시진핑 총서기에게 보내는 김정은 총비서의 답전을 공개한 후 이런 담화가 나온 점에 비추어볼 때, 김 부부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는 중국과의 협의가 중요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날 조선중앙통신은 김 총비서가 시 주석의 북한 정권수립 73주년 축전에 대해 지난 22일자로 답전을 보내 "적대 세력들의 악랄한 도전과 방해 책동을 짓부수며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빛내기 위한 공동의 투쟁에서 조중(북중) 사이의 동지적 단결과 협력이 부단히 강화되고 있는데 대하여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과 중국은 올해 북중우호조약 60주년을 맞아 여러 차례 축전을 주고받으며 양국 관계를 밀착시키고 있다.
정 센터장은 "중국 정부는 내년의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나 남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고, 북한도 언제까지나 국경을 폐쇄하고 고립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남북대화 재개를 진지하게 검토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북한은 내년의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남북 통신선 복원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로부터 시작해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에서 남·북·미·중의 4자 종전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섣부른 낙관론은 '금물'…좀 더 지켜봐야 = 하지만 이번 담화만으로 남북관계 급진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측이 '이중기준 철폐'를 조건으로 내걸고 나왔지만, 이를 충족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우리의 자위권 차원의 행동은 모두 위협적인 '도발'로 매도되고 자기들의 군비증강 활동은 '대북 억제력 확보'로 미화하는 미국, 남조선식 대조선 이중기준은 비론리적이고 유치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자신들의 핵·미사일 개발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 달라는 뜻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이번 담화 핵심 문장은 '다시 한 번 명백히 말하지만 이중기준은 우리가 절대로 넘어가줄수 없다'로 본다"며 "미국을 설득해달라는 역할이 아니라, 남측 스스로 변하라며 신신당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시 발언과 종전선언 제안이 겹치면서 북에게 명분을 준 것"이라며 "현 정권이 성과에 급급하고 임기말 조급하다는 점을 노출했기 때문에 북한이 이 약점을 치고 들어왔다"고 덧붙였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분위기를 무시하고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은 "북의 갈지자 행보와 남북관계의 결정권이 자신들에게만 있다는 듯한 태도는 남측 국민들의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는데 장애물이 될 것"이라며 "북이 원하는 제재완화나 대규모 경협, 북미관계 개선 등 본질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앞으로 우리 정부만 상대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여론과 국제사회의 분위기도 감안해야 하는 점을 북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이 이중잣대 철폐, 대북 적대시 정책 철폐만을 주장하여 위기를 모면하고 자신들의 군사력 증강만을 합리화하기 위해 위장평화적인 내용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요구하는 남측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폐기가 한미연합훈련의 완전한 중단과 남측의 미국 첨단무기 도입 중단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김 부부장의 대남 유화 발언을 너무 확대해석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에 빠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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