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음악과 양배추는 어떤 연관성 있을까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구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다. 쇼스타코비치는 구 소련 스탈린 공포정치 아래에서 예술적 자아와 이념의 압력 사이에서 줄타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공산당의 평가에 따라 ‘인민의 베토벤’과 ‘인민의 적’ 사이를 오가는 불안한 생활 속에서도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제정 러시아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쇼스타코비치는 어린 시절 음악 신동으로 주목받으며 13살 나이에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는 1914년 페트로그라드, 1924년 레닌그라드로 개칭했다가 1991년 제 이름을 되찾았다) 음악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체제가 바뀌는 혼란기에 아버지를 잃은 그의 가족은 빠르게 빈곤해졌다. 그리고 몸이 약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영양실조로 빈혈과 폐결핵을 앓게 됐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는 1923년 쇼스타코비치를 날씨 좋은 크림반도에 여름 방학 기간 요양을 보낸다. 쇼스타코비치는 이곳에서 첫사랑에 빠졌는데, 그 결실이 첫 번째 피아노 삼중주다. 쇼스타코비치는 발랄한 동갑내기 소녀 타티아나 글리벤코에게 헌정한 이 곡을 친구들과 함께 자주 연주하곤 했다.
피아노 삼중주 1번은 질감, 선율, 속도, 에너지 등의 날카로운 대조가 쇼스타코비치의 전형적인 특징을 일찌감치 보여준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1925년 음악원 졸업작품으로 만든 교향곡 1번이 소련을 넘어 유럽까지 알려지며 명성을 얻은 뒤 피아노 삼중주 1번은 잊혔다. 쇼스타코비치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던 피아노 삼중주 1번은 작곡가 사후 제자인 보리스 티셴코가 스승의 자필 원전을 모으고 보완한 이후 연주자들이 즐겨 연주하게 됐다.
그런데, 음악을 모티브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잘 알려진 사진작가 구본숙은 이 작품과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사진으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2004~2018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상주 사진작가로서 국내외 수많은 음악가를 찍은 구 작가는 최근 자연과 인간 등 다양한 대상에서 음악을 찾아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실내악단 디앙상블(The Ensemble)의 협업 의뢰를 받은 구 작가는 ‘양배추와 쇼스타코비치: 사랑과 생명의 알레고리’라는 타이틀로 30장 안팎의 사진을 선보일 계획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정원순(상명대 교수) 이혜정(전남대 교수), 비올리스트 김성은(숙명여대 교수), 피아니스트 강지은(서울시립대 교수), 첼리스트 황소진(게스트·한양대 겸임교수)로 구성된 실내악단 디앙상블은 올해부터 ‘인간 본성 탐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인류가 경험하는 상실감과 이를 회복하려는 의지에 주목해 올해는 ‘상실과 회복’으로 주제를 정한 뒤 이에 걸맞은 작품을 선정하고 해당 작곡가의 삶과 연관해 공연을 기획하는 한편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꾀했다.
디앙상블은 지난 4월 27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개최된 ‘상실과 회복 I’에서는 국내 작곡가 이강규의 곡을 시작으로 야나체크의 크로이처 소나타, 도흐나니의 피아노 퀸텟을 연주했다. 음악과 문학의 융합을 위해 야나체크의 크로이처 소나타와 이 곡에 영감을 준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소개하고 둘 사이의 연관성을 탐색했다. 그리고 크로이처 소나타 1악장을 상실의 감정이란 주제로 재해석한 영상 작품으로 제작해 음악과 영상의 융합을 시도했다.
오는 10월 5일 일신홀에서 열리는 ‘상실과 회복 II’에서는 호아킨 튜리나의 피아노 사중주,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삼중주 1번, 스메타나의 현악 사중주 ‘나의 생애에서’가 연주된다. 세 작곡가 모두 흔들리는 나라의 운명 때문에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이 상실되며, 작품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이번 콘서트에서는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삼중주 1번과 사진과의 융합을 시도했는데,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가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소재로 쓴 소설 ‘시대의 소음’을 토대로 했다. 곡이 연주되는 스크린에 구 작가의 사진들이 약 30초 단위로 투사될 예정이다.
사진들의 제목 ‘양배추와 쇼스타코비치: 사랑과 생명의 알레고리’ 속 양배추는 생명을 의미한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레닌그라드를 2년 넘게 포위했을 때 굶주린 시민들을 그나마 살린 것이 양배추였던 데서 가져왔다. 당시 숱한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양배추 종자를 레닌그라드로 실어나른 것은 동포애의 발로였는데, 구 작가는 레닌그라드 공방전 당시의 동포애와 청년 쇼스타코비치의 사랑이 다른 것 같지만 오히려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봤다. 포위된 레닌그라드 안에서도 수많은 청춘 남녀들이 사랑했으며 죽음의 와중에도 생명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과 생명이라는 주제에 걸맞은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가 정치적 고난을 겪을 때 나온 걸작보다는 초기의 피아노 삼중주 1번이 더 어울린다는 것이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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