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km 걸어서 장관 만나겠다는 남자, 왜 그랬을까
[김준모 기자]
▲ <아버지의 길> 스틸컷 |
ⓒ (주)엣나인필름 |
이 말을 듣고 분개한 니콜라는 지방행정의 부패함을 알리고자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걸어가 장관을 만나기로 한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왜 니콜라의 아내는 자식들 앞에서 분신자살을 택한 걸까. 두 번째, 사회복지과장이 니콜라에게 말한 자격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 번째, 왜 니콜라는 자동차나 대중교통이 아닌 300km가 넘는 먼 거리를 걸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 <아버지의 길> 스틸컷 |
ⓒ (주)엣나인필름 |
길 위에서 마주한 잔혹한 현실
니콜라는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 중에는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먹을 것을 주며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니콜라에게 잔혹한 현실을 인지시켜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니콜라의 친구이다. 길에서 니콜라를 발견한 친구는 그를 자신의 목적지까지 태워다 준다. 친구가 하는 일은 불법 이주노동자들을 운반하는 것이다. 길 한 가운데에 이주노동자들을 내린 친구는 매몰차게 알아서 갈 길을 가라며 그들을 내쫓는다.
친구 역시 니콜라와 같은 빈곤한 처지에 있다. 직장에서는 해고를 당했고, 집에는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 있다.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한다. 친구는 니콜라의 행동이 무의미함을 강조한다. 베오그라드의 부유한 사람들이 니콜라의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리가 만무하다는 걸 강조하며 자신과 동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돈을 벌어 아이들을 데려오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마을에서 출발할 때부터 장관을 만나러 간다고 밝혔던 니콜라는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순간부터 유명인이 된다. 언론은 앞다투어 니콜라를 인터뷰하며 그의 억울한 사연을 조명한다. 이런 언론의 관심에 부담을 느낀 장관은 니콜라를 만나 직접 문제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라 말한다. 이 한 마디에 기대를 품은 니콜라는 다시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거란 확신을 갖고 마을로 돌아온다.
▲ <아버지의 길> 스틸컷 |
ⓒ (주)엣나인필름 |
아버지란 이름으로 가야만 하는 길
고향에 돌아온 니콜라가 마주한 건 잔혹한 현실이다. 아내는 병원에서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고, 아이들은 니콜라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오해한다. 그가 떠났다 여긴 마을 사람들은 집안 전자가구를 모두 가져가 버렸다. 이 모습은 빈민층의 삶을 연상하게 만든다. 열심히 살아도 돈을 벌지 못하고, 가난하기에 자식을 키울 권리마저 빼앗긴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기적 같은 행운이 생긴다는 믿음마저 이 영화는 배반한다.
그럼에도 니콜라가 일어서야 하는 건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대의 아버지들을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에 비유한다. 시지프스는 신을 기만한 벌로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려 떨어뜨리는 벌을 받았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것이다. 이 영겁의 형벌은 대물림 되는 가난을 의미한다. 니콜라와 같은 아버지들은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다.
▲ <아버지의 길> 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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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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