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함께 살아가는 밴쿠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정아 기자]
내가 사는 광역 밴쿠버는 산을 끼고 있는 지형 때문에 심심치 않게 곰이 출몰한다. 가정집 뒷마당에 수북하게 볼일을 보고 가는 곰의 자취는 이 지역에서는 제법 흔한 일 중 하나이다. 쓰레기통을 잘 뒤지기 때문에, 쓰레기통에 모두 잠금장치가 달려있다. 만일 쓰레기통을 잘못 관리해서 곰이 와서 뒤졌다면, 50만 원이나 되는 벌금을 물게 될 수도 있다.
이곳에서의 일반적인 상식은, 마당이나 집 근처에 먹을 것이 있으면 곰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방문했을 때 맛있는 것이 있었다면 꼭 다시 온다는 것 또한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곰은 상당히 잡식성이기 때문에 정원에 먹을 것이 전혀 없게 관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 마당에 찾아온 곰 |
ⓒ 김정아 |
우리 집에 담장이 있던 시절 어느 날, 남편이 이층 데크에 나갔는데, 아기곰이 뒷마당 체리나무를 타고 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담장 위에서는 엄마곰이 유유히 걷고 있었다. 곰에게 담장 정도는 장애물이 아니다. 너무나 쉽고 가볍게 담장 위로 뛰어 올라갈 수 있다.
아기 곰이 있으면 반드시 근처에 엄마 곰이 있고, 이 엄마곰은 상당히 위험하다. 자식 앞에서 물불을 안 가리기 때문이다. 그 체리 나무는 바로 옆의 창고 지붕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지붕은 데크로 연결되는 구조다. 그래서 남편은 정신이 번뜩 들어서 바로 허둥지둥 집안으로 몸을 피했다고 했다.
산책을 갈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한적한 산길을 가야 한다면 무리를 지어서 다니기를 권고한다. 등산을 갈 때면 배낭에 딸랑딸랑 소리 나는 종을 매달고 다니면서 인기척을 내서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곰을 만났을 때의 수칙을 배운다. 곰은 이렇게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있다.
귀여워 보여도 맹수이므로 다가가서 같이 셀카를 찍겠다는 생각은 물론 금물이다. 옛날 우화처럼 죽은 척해서도 안 된다. 곰은 죽은 동물을 먹기 때문이다. 뛰어서 도망가는 것도 위험하다. 곰이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 대부분, 팔을 높게 들어 몸을 최대한 크게 보이게 하면서, 뒷걸음질로 살살 멀어지라는 것이 권고사항이다.
곰은 미련하지 않다. 오히려 상당히 영민하기 때문에, 문을 잠그지 않으면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 집안에 이상한 냄새가 나서 가봤더니 곰이 와서 찬장을 다 뒤지고 과자 봉지를 까서 먹은 흔적이 있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산으로 들어가 고사리 캐다가 변을 당했다는 기사도 가끔 나오고, 마당에서 잡초 뽑다가 곰이 덮쳤다는 뉴스도 오래 전에 한 번 들었는데 그건 정말 끔찍하다.
흑곰은 대체로 순하다지만 그래도 야생 동물이다
▲ 온실 근처를 기웃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는 곰 |
ⓒ 김정아 |
늘 축축하게 비가 오는 밴쿠버 지역에서 이번 여름에 50일 넘게 비가 내리지 않은 기록을 세웠고, 여름에도 28도를 넘지 않았었는데 42도를 찍었으니 자연 속의 동물들도 애를 먹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 집에서 곰을 마주치는 일도 상당히 잦았다. 내가 처음 곰을 만났을 때는 정말 놀랐다. 나는 이층 데크에 있었고, 곰은 그 바로 아래에 있었다. 우리 집 음식 쓰레기통을 부수고 있었기에 소리를 질러서 쫓았는데, 정말 귀찮다는 듯이 안 가려고 버텨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 놀라서 뒷마당을 빠져나가 도망 가는 곰 |
ⓒ 김정아 |
보통은 집 안에 있을 때 바깥에서 소리가 나서 보면 곰이 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한 번은 마당에서 일을 하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쳐다보니 바로 20미터 근처인 뒷산에서 곰이 나타났다.
남편과 나는 데크 위로 급히 몸을 피했고, 서둘러서 호루라기를 챙겼다. 야생동물들은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을 싫어해서 나는 마당에서 일을 할 때면 늘 목에 해양 구조용 호루라기를 걸고 있다.
이 녀석은 우리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유유히 영역표시를 하고는, 우리 마당으로 내려오려고 했다. 나는 급히 호루라기를 불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자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내려올 듯하기에 다시 또 불었다. 그러자 다행히 몸을 돌려 산속으로 돌아갔다.
더불어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사람들
밴쿠버는 이제 다시 비 오는 가을 날씨로 돌아섰지만,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슬슬 겨울잠을 준비해야 하기에, 든든히 먹어야 하는 곰들은 여전히 우리 동네를 찾는다. 어느 집의 벌새 먹이통을 움켜쥐고 아기곰 푸우처럼 즐거워하기도 하고, 쓰레기통을 부수기도 하고, 최근엔 어느 집 창문을 두드렸다고도 한다.
동네에 곰이 자주 나오니, 지역 페이스북 페이지에 수시로 곰 등장 알림이 뜬다. 어느 길 몇 번지 근처에 나타났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곰 뉴스인 셈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곰을 나무라는 댓글을 달지는 않는다. 주거 지역이 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우리가 그들의 영역을 빼앗아서 미안하다는 마음을 다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먹이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면 절대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곰은 더 열심히 우리 주거 지역을 방문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쨌든 야생동물인 곰이 사람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어쩔 수 없이 그 곰을 사살해야 한다. 한 번 사람 맛을 본 곰은 또 사람을 공격한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먹을 것을 찾으러 왔다가 그런 일을 저지르고는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은, 사람에게도 곰에게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곰이 이곳에 오고 싶지 않도록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 음식물 관리를 한다. 이제 연어가 올라오는 시즌이니, 연어가 잘 잡히면 혹시 곰이 그만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보련다. 그렇지 않으면 겨울잠 잘 때까지 좀 더 조심하며 기다릴 수밖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친척의 친구가 백신을 맞고..." BTS가 더 돋보인 이유
- 김여정 "종전선언은 좋은 발상, 관계회복 논의할 수 있다"
- 일본인을 '원OO'이라고 부르면 한일관계가 개선될까
- 윤석열 "취직·결혼 늦어 청약 무관심, 혜택 못봐"
- 서울 시민의 목숨, 원주지방환경청에 달렸다
- "손준성의 고발장과 조선·동아 기사의 오류 똑같아"
- 고교생 옷깃에 '세 손가락 배지'를... 예상이 적중했다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 분 별세 ... 생존자는 13명뿐
- 이제는 전쟁영웅 말고 '평화영웅'을 기억하자
- 이재명 측 "턱걸이 과반 승리" vs. 이낙연 측 "호남 출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