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주먹과 형님 좀비, 17년 만의 재격돌

김종수 2021. 9. 2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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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266] 로비 라울러 vs. 닉 디아즈

[김종수 기자]

UFC 전 웰터급 챔피언 '무자비한(Ruthless)' 로비 라울러(39·미국)와 좀비 브라더스의 형 닉 디아즈(38·미국)가 충돌한다. 오는 26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서 있을 UFC 266 'Volkanovski vs Ortega' 대회가 그 무대로 둘은 메인카드 3번째 경기로 맞붙을 예정이다.

격투 팬들과 관계자들 사이에서 둘의 경기는 볼카노프스키와 오르테가의 페더급 타이틀전, 셰브첸코와 머피의 여성 플라이급 타이틀전 이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 어찌보면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일이다. 라울러와 디아즈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급 파이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전성기가 지난 정도를 넘어 많은 나이와 기량 저하로 인해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노장이 됐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언제적 라울러고, 언제적 디아즈냐'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챔피언급 강자들의 타이틀전 이상의 관심이 쏠리는 현상 자체에 대해 의아함을 표하는 분위기도 있다.

어찌보면 그러한 사실에서 더욱 라울러와 디아즈의 위엄이 느껴진다. 한창 때의 임팩트가 워낙 대단했던지라 다른 선수들 같았으면 퇴물 취급을 받을만한 상황에서도 상품성을 인정받아 빅매치를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양 선수의 파이팅 스타일이 워낙 공격적인 것도 캐릭터의 꾸준한 인기에 한 몫했다는 평가다. 기량 여부를 떠나 누가 이기든 화끈한 공방전이 예상된다.

둘은 17년 전 UFC 47 'It's On' 대회서 한 차례 격돌했는데 당시에는 디아즈가 2라운드 1분 31초 만에 KO로 승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크게 의미가 없다. 워낙 시간이 많이 지나기도 했거니와 당시에는 라울러의 전성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는 예전의 기량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할 정도로 둘의 경기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때문에 라울러와 디아즈 경기의 키포인트는 '누가 더 잘 싸우냐'보다는 '누가 덜 노쇠했냐'에서 판가름 되어질 공산도 크다.
 
 닉 디아즈(사진 왼쪽)와 로비 라울러
ⓒ UFC
 
터프가이들의 화려했던 전성기

전형적인 디펜스형 타격가 라울러는 웰터급을 대표하던 펀처다. 다른 옵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공격을 펀치 위주로 풀어나갔다. 사우스포 스탠스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스트레이트와 별다른 예비 동작 없이 빠르게 나가는 앞손 훅이 일품이다. 빠르고 유연한데다 맷집이 좋고 근성까지 갖췄다. 경기 내내 쉬지 않고 '인 앤 아웃' 스텝을 밟으며 공방전이 가능하다.

전진 스텝으로 쉴 새 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패턴을 선호한다. 끊임없이 압박해 상대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펀치 거리에서 거침없이 치고받거나 더티복싱 싸움을 걸어버리며 흐름을 어느새 진흙탕 공방전 쪽으로 만들어버린다. 파이팅 스타일이 다소 단순함에도 상대가 대처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때 차세대 챔피언감으로 꼽혔던 로리 맥도날드는 라울러와의 두차례 맞대결에서 모두 패하며 아예 UFC를 떠나버렸다. 라울러는 펀처 스타일 특성상 킥에 능한 상대들에게 종종 고전할 때가 있다. 치고 빠지기에 익숙하다 해도 펀치보다 먼 거리에서 킥이 쏟아지면 쉽지 않다. 맥도날드 역시 킥에 능했다. 원거리 잽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후 거리가 조금 생기면 킥을 시도하고 타이밍 태클도 성공시켰다.

라울러는 맥도날드가 선호하는 거리싸움을 허용하지 않았다. 맥도날드의 잽을 앞손 견제를 통해 무력화시켰다. 노련한 펀처답게 자신의 앞손 거리를 잘 유지한 채 타이밍 싸움에서 이겼다. 잽을 내려는 타이밍에서 라울러의 앞손 훅이 날아들고,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훅 콤비네이션이 이어지자 맥도날드는 평소의 깔끔한 경기운영을 가져가지 못했다. 이처럼 라울러의 공격은 단순한 듯 보이면서도 전반적 흐름을 자신 쪽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까다로움의 극치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디아즈는 동생 네이트와 함께 '좀비복싱'으로 악명을 떨쳤다. 상대적으로 호리호리한 몸매와 매서운 눈매 등 외모만을 봤을 때는 얼핏 아웃파이터로 착각할 수도 있다. 정면에서 난타전식 타격전을 펼치는 파이터의 상당수는 뼈대가 굵고 겉보기부터 맷집이 좋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아즈 형제는 흡사 영화 속 좀비들처럼 흐느적거리면서도 전진을 멈추지 않는 경기력을 통해 상대를 뒷걸음질 치게 만든다.

킥보다는 펀치 위주로 난타전을 즐기는데 그래서 이들이 사용하는 스탠딩펀치 스타일에 좀비복싱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졌다. 중장거리에서 계속 주먹을 휘두르며 전진하는 좀비 복싱은 얼핏 보면 단순하기 그지없다. 쉴 새 없이 펀치만 내지르기 때문이다. 정교한 복싱 테크닉도, 무시무시한 한 방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좀비 복싱'으로 악명높았던 형제, 동생 네이트 디아즈(사진 왼쪽)와 형 닉 디아즈
ⓒ UFC
 
그럼에도 디아즈 형제의 스탠딩 압박은 상대에게 심한 공포를 안긴다. 상대의 반격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앞으로 밀고 들어오는 전법은 상대의 리듬을 깨뜨리고 결국 질리게 만들어버린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펀치를 가할 때 다른 한 손은 방어동작을 취하지만 디아즈 형제는 예외다. 주먹을 뻗는 순간에도 다음 공격을 이어가려 하고 있을 정도다.

상대가 펀치 공격을 한 번 할 때, 두세 번 가할 수 있는 비결이다. 탄탄한 내구력과 배짱이 필요한 파이팅 스타일로 디아즈 형제가 아니라면 쉽게 흉내 내기 어렵다. 일단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준비동작을 최소화 한 채 부지런히 주먹을 뻗으니 궤적파악이 어려워진 상대방은 당연히 많이 맞을 수 밖에 없다. 맷집에 자신이 있고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다보니 반격이 터져 나와도 움찔하지 않고 오직 때리는 데만 집중한다.

좀비답게 체력도 좋아 경기 내내 비슷한 페이스 유지가 가능하다. 상대 입장에서는 질릴 수 밖에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 데미지는 쌓이고 만다. 그렇다고 디아즈 형제가 무조건 주먹만 냅다 휘두르고 뻗는 것은 아니다. 근거리에서 회피 동작도 나쁘지 않아 큰 펀치는 적당히 흘릴 줄도 알고 적절한 타이밍에 바디샷을 꽂아 넣어 상대의 호흡이나 스탭전환을 곤란하게 만든다. 일격필살을 노리지는 않지만 맞추는 재주 자체가 좋아 상당수 주먹이 정타로 들어간다.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 같으면서도 나름 지능적으로 게임을 풀어간다. 반격에 상관없이 전진을 거듭하며 안면과 복부에 쉬지 않고 긴팔로 주먹을 내뻗다보면 상대는 어느새 육체적, 정신적 데미지를 엄청 입게 되어 결국 잠식 당할 수밖에 없다.

경기력 차이 클지언정 스타일 변화는 비슷할 듯

라울러와 디아즈의 경기 양상은 양선수 모두 지금껏 자신들이 해오던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디아즈에게는 좀비 복싱 외에 주짓수라는 또 다른 무기가 있지만 크게 의미는 없을 듯 하다. 그는 한창때에도 레슬링에서 약점을 지적받아왔는데, 라울러는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매우 좋은 선수다.

어차피 넘겨뜨리기도, 포지션 싸움에서 눌러놓기도 힘든 유형인지라 특별한 상황이 오지 않는한 디아즈가 서브미션 능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노장의 대결은 스탠딩 펀치 싸움에서 결착이 될 공산이 크고, 그런 가운데 누가 더 맷집과 체력이 더 남아있느냐가 승부의 키로 작용할 것이다는 분석이다.

선수간 상성에서는 디아즈의 근소 우위를 점치는 이들이 많다. 공격적으로 서로 때리는 것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디아즈 쪽이 사이즈 적인 측면에서 더 나은지라 유효타격이 많이 나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17년전이라 데이터로는 다소 부족하지만 당시 경기도 그러한 흐름으로 진행된 바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데로 양 선수는 전성기가 완전히 지났다. 거기에 디아즈는 2015년 이후 공식 경기를 아예 가지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경기를 뛴 라울러와 실전 감각 등에서 많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공개된 쉐도우 영상에서 디아즈는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살이 찌고 둔해진 움직임을 노출하며 팬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과연 한 시대를 풍미한 두 터프가이의 경기는 어떤 흐름으로 진행될 것인지, 소문난 잔치에 무슨 음식이 차려질까에 올드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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