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기업 문혁' 광풍 부나..'헝다 퇴출론' 국수주의 논객에 열광
“중국에서 인터넷 플랫폼 기업, 인터넷 금융 기업, 또 부동산 기업이건 대마불사(大馬不死)를 내세워 정부를 인질로 삼는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중국의 대형 부동산 개발 업체인 헝다(恒大) 그룹이 약 355조원 규모의 부채로 파산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중국 당국의 향후 정책 방향을 읽을 수 있는 글이 조명되고 있다. 지난 22일 밤 국수주의 논객 리광만(李光滿·62)이 개인 웨이신(微信·중국판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앤트부터 디디, 다시 헝다까지…엄격한 관리·감독의 시대가 왔다’이다. 앤트는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회사익 디디(滴滴)는 온라인 차량 호출 기업. 이미 호되게 당국의 첱퇴를 맞은 두 빅테크기업을 거론하며 리광만은 헝다의 질서 있는 퇴출론을 넘어 자유시장 경제이론까지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영원히 기업이다. 주주의 이익을 대표할 뿐이다. 정부는 영원히 정부다.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 기업이 아무리 거대해도 경제에서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다. 기업이 국가보다 크고자 해서는 안 된다. 기업이 정책의 혜택을 받았다면, 정부의 감독 관리 역시 받아야 한다.”
리광만은 지난달 말 “한바탕 심각한 변혁이 진행 중”이라며 ‘문혁 2.0’을 주장한 글로 유명세를 치른 인물이다. 인민일보·신화사·중앙텔레비전(CC-TV) 등 관영 매체가 그의 글을 일제히 옮겨 실으면서 사실상 정부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해석됐다. 당시 국수주의 매체인 환구시보의 후시진(胡錫進·61) 총편(편집인)을 상대로 한판승을 거뒀다는 평가 속에 과거 문혁 4인방이자 문혁소조의 실세 야오원위안(姚文元)에 필적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리광만 “중국 부동산 폭등은 시장화와 미국 달러 탓”
리광만은 이번 글에서 중국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원인을 시장과 미국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부동산 가격이 높은 원인은 첫째, 중국이 주택의 시장화 개혁을 실시하면서 부동산 자유 시장 경제를 시행해서다. 둘째, 토지 양도금이 지방 재정을 인질로 삼아서다. 셋째,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 이후 양적 완화로 중국 부동산 시장에 미국의 유동성이 쏟아져 들어와 금융 거품이 생겼고, 부동산 금융이 생기고 집값이 폭등했다. 일반 중국인은 부동산의 노예로 전락했고, 중국 경제 역시 실물 경제는 쇠퇴하고 제조업의 경쟁력을 깎아내렸다”고 주장했다. 시장 경제와 미국의 양적 완화가 중국 부동산 시장을 망쳤고, 나아가 중국 경제까지 망가뜨렸다는 과도한 주장이다.
그러면서 헝다와 자유시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주위에 헝다에 일말의 동정심을 가진 사람은 없다”며 “헝다의 부채 위기는 헝다의 탐욕적인 팽창과 야만적 성장, 무질서한 확장이 만든 것으로 중국 부동산의 지나친 시장화, 자유시장 경제 이론이 만들어 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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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부동산 기업 치외법권서 끌어 내야”
이 같은 인식에서 그는 “우리가 지금 버려야 할 것은 진리로 받드는 자유시장 경제이론”이라고 진단했다. “인터넷 플랫폼 기업, 인터넷 금융 기업, 부동산 기업이 정부의 엄격한 관리·감독에서 벗어난 치외법권에 머물지 않도록 하고, 자유시장 경제이론을 끝장내야 한다”면서다. 이어 “자기 엉덩이는 스스로 닦아야 한다”며 “헝다는 피를 토하는 자구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주주와 고위 임원이 그동안 누렸던 배당금을 모두 뱉어내고, 해외로 빼돌린 재산을 환원해, 부동산·토지·본사건물·축구클럽을 모두 현금화하도록 촉구했다. 경영진은 거액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제왕적 사치를 누리면서 정부가 민간의 돈을 지원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헝다에 실사팀 파견해 주주 자산 조사부터”
정부가 헝다에 실사팀을 파견해야한다며 퇴출 방법론도 제시했다. 리광만은 “정부는 실무팀을 헝다에 파견해 먼저 헝다의 실상을 조사하고, 자산 규모를 확인하고 주주의 자산을 모두 확인한 다음에 구제 여부를 따져야 한다”며 “만일 (헝다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구제를 말해선 안 된다”고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끝으로 리광만은 “자유시장 경제 이론을 버리고, 대자본 집단 특히 인터넷 플랫폼, 대형 부동산 기업에 엄격한 관리 감독을 하지 않는다면 경제의 지뢰가 하나둘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결론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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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中 당국, 지방 정부에 헝다 파산 대비하라”
주목할 것은 이 글이 공개된 후 중국 규제 당국이 마치 리광만의 지침대로 움직이는 분위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간)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당국이 지방 정부에 헝다의 파산위기에 대비하고 후속 조처를 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지방 정부와 국영 기업은 헝다그룹이 질서 있게 일을 처리하지 못할 경우 막판에 가서 개입한다는 방침이다.
리광만이 제시한 실사팀도 이미 구성을 마쳤다. WSJ은 지방 정부가 이미 회계사와 법률 전문가로 워킹그룹을 조직해 헝다의 재무 상황을 조사하고, 현지 국유와 민영 부동산개발 업체와 이야기해 프로젝트 이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실무팀을 구성해 일반 대중의 분노와 이른바 ‘군체성 사건(집단 시위를 일컫는 중국식 용어)’ 모니터링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문제가 사회 불안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쉬자인 회장 “부동산 인도에 온갖 수단 동원하라”
쉬자인(許家印·63) 헝다 회장도 수습에 나섰다. 쉬 회장은 추석이던 지난 21일 전체 직원에게 편지를 보내 “마음이 맞으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人心齊 泰山移)”며 “이른 시간 안에 공사·생산을 재개해 ‘아파트 인도 보증’이란 중대한 목표를 실현하고, 구매자·투자자·협력파트너·금융기관에 책임지고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2일 밤에는 심야 간부 회의를 소집해 “기존 공사 프로젝트를 완료해 구매자에게 인도할 수 있도록 온갖 수단을 동원하라”고 말했다고 심천상보(深圳商報)가 23일 보도했다.
日언론 “헝다 배경은 공청단…도움 주지 않을 것”
한편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2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헝다 사태에) 침묵하는 배경에는 그가 거리를 두는 공산당 청년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헝다의 연결고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며 “헝다 그룹이 창업한 광둥(廣東)성은 ‘공청단의 지역 기반’으로 시 주석은 당내 원톱으로 입지를 굳혔지만, 공청단의 명맥을 잇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후춘화(胡春華) 부총리와 간극이 있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당내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뜻이 맞지 않는 부하의 (정치적) 기반 침하에 도움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가을 3연임에 도전하는 시 주석은 최근 공동부유(共同富裕) 노선을 견지하면서 금융 위기도 방지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에 직면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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