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별로면 007도 거절..'노팅힐' 英감독 로저 미셸 별세

나원정 2021. 9. 2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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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감독 로저 미첼이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77회 베니스영화제에 새 영화 '듀크'를 들고 찾았던 모습이다. [AP=연합뉴스]

영화 ‘노팅힐’을 만든 영국 로맨틱 코미디 대표 감독 로저 미셸이 22일(현지 시간) 향년 65세로 별세했다.

BBC‧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고인의 홍보담당자가 23일 사망 소식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숨진 장소와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가디언은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미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업계에 충격을 줬다”면서 “3주 전 그는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텔루라이드 영화제에서 ‘듀크’를 상영하며 새로운 다큐멘터리 작업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고인은 1957년 외교관인 아버지가 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나 레바논‧시리아‧체코 등 해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진학해 연극을 접했고 영국 국립극장을 거쳐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6년간 연출가로 일했다. 1990년대 BBC에 합류하며 TV 드라마와 영화로 활동반경을 넓혔다. 파키스탄계 이민 2세 작가 하니프 쿠레이시의 동명 소설을 TV 드라마로 만든 ‘교외의 부처(The Buddha of Suburbia)’(1993)로 주목받으며 이듬해 가수 데이비드 보위가 직접 출연한 동명 싱글앨범 홍보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삽입곡 ‘She’ 열풍…로맨틱 코미디 ‘노팅힐’


‘노팅힐’의 전기를 마련한 건 고인이 제인 오스틴 동명 소설을 옮긴 영화 데뷔작 ‘설득’(1994)이다. 이 영화로 이듬해 영국아카데미 최우수 단막극상을 받고 타임‧LA타임스‧뉴욕포스트의 1995년 ‘올해의 영화’에 꼽혔다. 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으로 큰 흥행을 거둔 각본가 리처드 커티스는 ‘설득’을 보고 고인을 자신이 집필‧기획한 차기작 ‘노팅힐’의 연출자로 점찍었다.

미국 스타 배우와 영국 서점 주인의 로맨스를 그린 이 영화는 각각 당대 할리우드와 영국 톱스타였던 줄리아 로버츠, 휴 그랜트가 주연을 맡아 제작비의 8배가 넘는 전세계 3억6388만달러(약 4282억원)의 흥행수입을 거뒀다. ‘노팅힐’은 영국아카데미 관객상을 받고 미국 골든글로브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여우주연상‧남우주연상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국에선 영화와 함께 엘비스 코스텔로의 삽입곡 ‘쉬(She)’도 큰 사랑을 받았다.

영화 '노팅힐'의 (왼쪽부터) 주연 휴 그랜트, 줄리아 로버츠.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고인은 지난해 영국 연예매체 ‘자비’와 인터뷰에서 “(‘노팅힐’이)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면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의 실패한 속편 같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축하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쁘다”고 했다.

‘노팅힐’ 후반부에 주인공 윌리엄(휴 그랜트)이 공원 벤치에서 읽던 책 『캡틴 코렐리의 만돌린』은 고인이 차기작으로 연출하려던 영화의 원작소설이었다. 그러나 ‘노팅힐’ 개봉 직후인 1999년 고인이 심장마비를 겪으며 작품에서 하차했다.


007 연출 제의, 각본 마음에 안 들어 거절


이후 고인은 할리우드로 진출해 벤 에플렉, 사무엘 L 잭슨 주연 영화 ‘체인징 레인스’(2002), 레이첼 맥아담스, 해리슨 포드 주연의 ‘굿모닝 에브리원’(2010) 등을 선보였다. 영국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와 영화 ‘마더’(2003) ‘사랑을 견뎌내기’(2004)를 잇따라 찍고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007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2008) 연출을 제안받았지만, 각본 등의 문제로 거절했다.

영국에 돌아가 연출한 ITV 드라마 ‘크리스토퍼 제프리의 마지막 명예’(2014)에선 실제 살인 혐의를 받은 영국의 은퇴 교사 실화를 그려 영국아카데미에서 두 번째 수상(최우수 미니시리즈상)을 거뒀다. 최신작은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호평받은 영화 ‘듀크’다. 영국 배우 헬렌 미렌, 고인의 전작 ‘위크엔드 인 파리’에서 함께한 짐 브로드벤트가 주연을 맡아 영국의 은퇴한 운전기사가 1961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유명 미술품을 훔친 실화를 담은 작품이다. 유고작은 고인이 연출을 맡아 후반작업 중이던 다큐멘터리 ‘엘리자베스’로 알려졌다.

고인은 배우 출신 변호사 케이트 버퍼리와 결혼해 두 자녀 로사나, 해리를 얻었고 2002년 이혼 후 배우 안나 맥스웰 마틴과 재혼해 두 딸 매기와 낸시를 뒀다. 마틴과는 지난해 이혼했다.

나원정기자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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