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재고량 등 정보 줘야하나" 압박 수위 높인 美..난감한 삼성

뉴욕=백종민 입력 2021. 9. 24. 11:25 수정 2021. 9. 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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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망 문제 해결 위해 재고·주문·판매 등 정보 요구
자발적 설문조사 진행한다지만 국방물자수호법 언급 압박
반도체 업계 민감정보 요구에 당혹..삼성 등 반응 주목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수급난을 이유로 삼성전자, TSMC 등 반도체 기업들에 생산량, 재고량 등의 민감한 정보를 내놓으라며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인데 기업의 정보 제공이 자발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국방물자수호법(DPA)까지 적용할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혀 현지에서 사업을 확대하려던 반도체 업계가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미 백악관은 23일(현지시간) 브라이언 디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과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이 주관하는 반도체 업계와의 화상 회의를 진행했다. 이번 회의는 바이든 행정부 들어 반도체 부족 사태와 관련해 백악관이 소집한 세 번째 회의다. 회의에서 미 정부와 반도체 업체들은 글로벌 반도체 수급 문제와 코로나19 델타 변이에 따른 생산 차질 문제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만 TSMC, 인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다임러, BMW 등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기업정보 공개하라"

백악관은 이날 회의에서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업계의 투명성과 신뢰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같은 날 백악관이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반도체 공급망 혼란을 막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백악관은 이 글에서 "반도체 공급망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반도체 부족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의 정보를 받기 위해 업계 참가자들의 자발적인 설문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 조사 내용에는 반도체 업체들의 재고, 주문, 판매 등과 관련한 정보가 포함됐으며 45일 이내에 설문지를 제출해야 한다.

백악관은 또 코로나19 관련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정부 등과 협력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상무부를 중심으로 하지만 미 국무부와 각국에 있는 미 대사관도 이 시스템에 포함돼 있어 공급망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조기에 감지하고 해결책을 찾으면서 동시에 무역 파트너, 민간 부문과 협력할 수 있도록 이 시스템을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백악관의 이 같은 정책은 공급망을 이유로 사실상 글로벌 반도체 패권을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반도체 생산능력에서 미국의 점유율은 1990년 37%에서 지난해 12%로 떨어진 상황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반도체 부족 문제는 최우선 과제였다"면서 "(기업들이) 투명성을 제공해야 미국 근로자와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째야하나"… 난감해진 삼성

미 백악관의 이 같은 조치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는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백악관은 조기경보시스템 구축을 언급하며 "독점 정보, 비즈니스에 민감한 정보는 보호하도록 디자인된 시스템"이라고 설명했지만 글로벌 반도체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세부적인 재고상황과 같은 민감한 정보를 미 정부에 별도로 제출하는 상황은 업체들로서는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 팀이 수개월간 기업들과 이에 대한 논의를 해왔으나 이전 회의에서 대다수의 기업들이 정부에 기업 정보를 제출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러몬도 장관은 기업들의 정보 제출은 ‘자발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강제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DPA 적용을 언급했다. 사실상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들에 경고를 던진 것이다.

삼성 오스틴 반도체 건물 전경

바이든 행정부의 정보 제공 요구에 국내 대표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의 고민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정보를 내놓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 아니라 지난 5월 미국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하고 부지를 놓고 검토하고 있던 상황에서 이러한 요구 사항이 압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미 정부는 이날 이 같은 조치와 함께 현재 미 의회에서 반도체 업계를 지원하는 법안도 논의가 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 사실상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공급 재편 협력 여부와 투자의 연관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세제 지원을 감안해 투자 지역을 검토하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중앙정부의 이러한 요구도 하나의 리스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외에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한 TSMC, 인텔 등의 반응도 주목된다.

반면 일부 미국 반도체 기업 중엔 긍정적인 평가도 나온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의 톰 코필드 최고경영자(CEO)는 회의 후 성명을 통해 "반도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러몬도 장관의 장단기 계획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재고나 생산량 등은 반도체 업계에서는 굉장히 민감한 정보여서 그동안 기업들이 이를 공개하지 않아 왔고 이를 밝히는 것 자체가 시장 판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미국에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의 정보가 빠져나가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백종민 특파원 cinqange@asiae.co.kr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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