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1000원의 행복..RM이 애정하는 달항아리부터 '상상의 정원'까지
덕수궁 전체가 정원 미술관 변시
오후 9시까지 개장 특별한 기회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한국실을 방문한 방탄소년단(BTS) 리더 RM(김남준)은 전시장의 달항아리 앞에서 “달항아리의 찌그러진 형태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소에 달항아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공공연히 드러내 온 RM다운 발언이었다.
RM은 2년 전인 2019년 11월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계정에 한쪽 팔로 달항아리를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게재하며 그 달항아리가 권대섭 작가의 작품임을 밝힌 바 있다. 미술 애호가이며, 달항아리 애호가로서의 면모를 확인시켜준 대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2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에선 '큐레이티드 포 아미'라는 제목 아래 달항아리와 사방탁자를 소개했다. 당시 RM이 큐레이터로 나서 직접 꾸민 '아미의 방'을 제안한 것. 그는 "방에 놓인 달항아리를 바라보면 제 마음도 푸근해지는 걸 느낄 수 있다"며 "달항아리를 통해 아마 여러분께도 따뜻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은 제 보름달 같은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고 썼다. 이 정도면 RM이야말로 진정한 '달항아리 홍보대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을밤 둥근 보름달처럼 푸근한 달항아리를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덕수궁이다. 평소 호림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리움미술관 등지에 흩어져 있던 귀한 달항아리 작품들이 이 전시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선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 얘기다.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박물관의 문화재와 미술관의 미술 작품을 서로 대응시킨 이 전시는 고구려 고분변화부터 석굴암, 달항아리, 불화와 민화 등 전통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과 의미를 살핀다. 높이 60㎝의 백자대호부터 달항아리를 중요한 모티프로 삼은 김환기의 그림 '호월'(1954년, 삼성리움미술관 소장)과 '정원'(1956, 개인소장), 도상봉의 '라일락'(1975, 개인소장)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궁궐이나 미술관을 단 한 번도 찾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 덕수궁을 찾아야 할 때다.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정원을 산책하고, 전시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예약만 한다면 미술관에서 전시를 무료로 볼 수 있고, 뜰에선 평소엔 보기 어려운 '덕수궁 프로젝트 2021:상상의 정원' 전시를 만날 수 있다. 덕수궁 공간 전체가 아름다운 정원 미술관으로 변신했다.
요즘 덕수궁은 저녁 9시(오후 8시 입장마감)까지 관람이 허용된다. 실내에서 열리는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는 예약 우선이고 오후 6시면 끝나지만, 가을밤의 덕수궁 뜰 산책과 야외 전시 관람은 해가 진 이후에도 가능하다. 입장료 1000원(만 25세 이상, 교통카드 가능)만 내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덕수궁 프로젝트 '상상의 정원'
덕수궁 프로젝트는 덕수궁 야외에서 열리는 전시다. 2012·2017·2019년에 이어 올해 네 번째인 이 행사는 국립현대미술관과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가 함께 준비했다. '상상의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여는 올해 전시엔 현대미술가(권혜원, 김명범, 윤석남, 이예승, 지니서), 조경가(김아연, 성종상), 애니메이션(이용배), 식물학자·식물 세밀화가(신혜우), 무형문화재(황수로) 등 쟁쟁한 전문가 9팀이 참여했다.
덕수궁을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 윤석남의 신작 '눈물이 비처럼, 빛처럼' , 지니서의 설치작품 '일보일경', 김아연의 가든카펫 등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여러 작품 중에서도 석어당 마루에 설치된 채화(彩華)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장소와 어우러져 특히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채화는 비단, 모시 밀랍, 송화. 아교 등으로 만든 꽃으로, 조선시대 궁중 공예의 정수이자 정원문화의 하나. '홍도화'란 제목의 작품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궁중채화) 황수로의 작품이다. 매화나무 가지에 핀 화려한 진홍색 꽃은 덕수궁에서 유일하게 단청으로 장식되지 않은 석어당 공간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즉조당 앞 잔디밭에 있는 김명범의 사슴 조각 "원(One)'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진 사슴 몸체에 커다란 나뭇가지 뿔이 신비롭게 한 몸이 된 조각품으로, 덕수궁 뜰에서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세 개의 괴석과 함께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신발을 벗고 전각 안으로 들어가 관람하는 전시도 있다. 식물학자이자 세밀화가인 신혜우가 올해 덕수궁 안에서 채집한 식물 표본과 세밀화를 함께 선보이는 전시 '면면상처:식물학자의 시선'도 그중 하나. '면면상처:식물학자의 시선'은 실제 식물학자인 작가가 지난 1년 동안 관찰하고 조사한 덕수궁의 다양한 표본과 세밀화로 선보이는 것으로, 우리 곁의 식물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고, 아름답고, 흥미진진한 전시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달항아리의 매력에 빠지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도 놓치기 아깝다. 하지만 이 전시를 보려면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 오는 10월 10일 폐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소개했듯이 '한국미술의 DNA'를 탐색하기 위해 기획된 이 전시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달항아리 외에도 고려청자, 일월오봉도, 추사 김정희와 문인화, 겸재 정선과 진경산수, 단원 김홍도와 풍속화, 불화 등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을 살핀다. 덕분에 청자와 나란히 전시된 이중섭의 그림, 분청사기 인화문 병과 김환기의 점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달항아리에 담긴 서정적이고 시적인 미학이 근현대 미술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 다채로운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밖에 경주 남산 약수곡 석불좌상 불도부터 석불좌상 편, 겸재 정선의 '박연폭(朴淵瀑),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 백남준의 '반야심경' 등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여기서 다 만날 수 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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