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원정, 벤투호의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이준목 기자]
한국축구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시리아-이란전이 2주앞으로 다가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0월 7일 시리아를 홈으로 불러들이고, 닷새후인 12일에는 원정에서 '난적' 이란과 맞붙는다. 첫 홈 2연전에서 이라크-레바논을 상대로 1승1무라는 다소 아쉬운 성적에 그친 벤투호에게 이번 2연전의 결과가 중요하다.
특히 축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이란과의 맞대결이다. 한국은 이란과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2014 브라질월드컵, 2018 러시아월드컵에 이어 최종예선에서만 4회 연속으로 만나게 됐다.
한국은 이란과의 역대 전적에서 9승 9무 13패로 열세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상대 전적 열세를 기록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팀이다. 이란전을 상대로 A매치 마지막 승리는 무려 10년 전인 2011년 AFC 아시안컵 8강전(1-0)이었고, 최근 10년 간 6차례 맞대결에서 2무4패로 승리가 없었다. 월드컵 예선으로 국한하면 1993년 미국 월드컵 예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한국축구는 최근 세 번의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모두 이란전 결과에 따라 판도가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끌었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당시에는 2경기 모두 선제골을 내주고 끌려가다가 박지성의 득점으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은 무패 조 1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반면 이란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브라질월드컵과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의 이란은 한국축구의 저승사자로 등극했다. 두 대회 모두 포르투갈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동안 한국을 상대로 한번도 지지 않았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최강희 감독이 이끌고 있던 한국은 이란에 2번 모두 0-1로 졌다.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은 원정에서는 슈틸리케(0-1 패)-홈경기에서 신태용 감독(0-0 무승부)으로 교체되며 1무 1패에 그쳤다.
케이로스 감독 시절의 이란은 한국에 4승1무(2015년 평가전 포함)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고 심지어 한골도 내주지 않았다. 한국은 최근 두 번의 최종예선에서 모두 이란에 조 1위를 내줬고, 결과적으로 월드컵 본선티켓을 간신히 따내기는 했지만 최종전 휘슬이 울리기 직전까지도 본선행을 확신하지 못하고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이란전은 경기 외적으로도 항상 사건사고가 많았다. 2013년 홈 최종전에서는 양팀 벤치가 경기 전부터 살벌한 설전을 주고받다가 케이로스 감독에게 '주먹감자' 도발을 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2016년 원정 경기 패배 후에는 슈틸리케 감독이 '세바스티안 소리아(카타르)같은 선수가 없어서 졌다'는 망언으로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려다가 역풍을 맞으며 결국 선수단의 신뢰를 잃고 경질로 이어졌다.
케이로스 감독은 떠났지만 이란은 여전히 강력하다. 2차예선에서 다소 고전하며 탈락위기에 몰리기도 했던 이란이지만 최종예선에 접어들며 역시 중동 최강다운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2연승으로 한국을 제치고 A조 선두에 올라있다. 한국이 만일 이란에 또 덜미를 잡힌다면 1위싸움에서 사실상 밀려나 최종예선 행보가 가시밭길이 될수 있다.
이란전은 한국축구가 이번 최종예선에서 치르는 중동원정 첫 경기이기도 하다. 벤투호는 그동안 원정에서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이라크-레바논-시리아- UAE 등 전원 중동팀들에게 둘러싸인 한국은 까다로운 중동 원정에서 승점 손실을 최소화해야만 한다.
심지어 이란의 홈구장인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한국축구는 지난 46년간 2무 5패에 그치며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는 뼈아픈 징크스가 있다. 이란전은 벤투호에게 있어서 '아시아 최강팀과의 맞대결' 및 '원정 대처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무대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번 2연전 결과에 따라 벤투 감독의 거취까지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벤투 감독이 2018년 부임 이후 4년째 지휘봉을 잡으며 한국축구 대표팀 역대 최장수 감독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유연성이 떨어지는 '빌드업 축구'에 대한 집착과 독불장군식 팀운영으로 리더십에 물음표가 붙고 있다.
벤투 감독은 지난 홈 2연전에서 전술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선수관리 능력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장거리 이동으로 컨디션이 떨어진 유럽파 선수들에게 무리하게 의존하다가 경기력이 좋지 못했고, 설상가상 에이스 손흥민이 부상까지 당하며 레바논과의 2차전을 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대표팀 주전급 선수들 상당수가 A매치 기간을 전후하여 크고 작은 잔부상에 시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여기서 더 큰 우려는 벤투 감독이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문제점들을 문제라고 인정하는 것 자체를 거부해왔다는 데 있다.
그나마 지난번에는 2연전이 모두 홈에서 열렸지만 이번에는 홈과 원정을 오가야 하는 더 험난한 일정이다. 손흥민을 비롯한 유럽파 선수들을 2경기에서 모두 활용하려면 유럽에서 장거리 이동을 와서 시리아와의 홈경기를 치르고, 다시 중동 원정을 떠나서 일주일 사이 시차 적응을 두 번이나 해야 하는 체력적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홈과 원정, 상대팀의 스타일, 선수들의 컨디션을 고려하여 유연한 로테이션 내지는 플랜B가 필요한 상황이다.
벤투 감독은 지난 4년간 한국축구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전폭적인 지원과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이제는 무조건 성과와 내용으로 증명해야 할 타이밍이다. 만일 이번 2연전에도 벤투 감독이 변화없는 마이웨이만을 고수하고, 그로 인하여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면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벤투 감독이 그저 하고싶은대로만 내버려두고 그 리스크는 한국축구가 모두 감수해야 하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국축구로서는 이번 2연전이 벤투호의 운명을 좌우할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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