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봉중근-김태균 대담② 한국 야구만의 색깔 만들어야

배중현 2021. 9. 2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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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투·타 레전드인 봉중근(오른쪽)과 김태균이 한자리에 모였다. 현역 시절 리그는 물론이고 국가대표에서도 맹활약했던 두 선수는 현재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그 누구보다 KBO리그의 현재 문제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잘 인지하고 있다. 일간스포츠 창간 52주년 인터뷰에서 김태균과 봉중근은 "한국 야구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시종 기자 jung.sichong@joongang.co.kr

〉〉1편에서 이어집니다

프로야구는 1982년 출범 이후 매년 성장을 반복했다. 2012년 프로야구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700만 관중을 돌파했고, 2016년에는 800만 관중을 넘어섰다. 2013년 NC, 2015년 KT가 1군에 진입해 구단도 10개까지 늘었다.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뤄내며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자리를 굳건히 했다.

하지만 최근 질적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 8월 막을 내린 도쿄올림픽 '노메달 쇼크' 이후 정신력과 근성을 지적하는 비판이 쏟아졌다. 프로야구 안팎 사건·사고까지 겹쳐 자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일간스포츠는 창간 52주년을 맞이해 봉중근(41)과 김태균(38·이상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을 만나 한국 프로야구의 위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타자들의 스윙이 다 똑같다

타자 발사각에 대한 지적도 많다. 홈런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2016년을 기점으로 KBO리그 대부분의 타자가 발사각을 높이기 시작했다. 2019년 리그 평균 발사각이 처음으로 17도(인플레이 타구 기준)를 넘겼고 지난해에는 18.5도까지 올랐다. 이로 인한 문제점도 적지 않다. 스트라이크존 상단에 대한 대처가 되지 않으면서 타자들의 핫 존이 크게 줄었다.

-스크라이크존을 9개로 나눴을 때 타자들이 강세를 보이는 코스는 한가운데와 6시 방향뿐이다.

김태균(이하 김)= "숫자는 야구와 선수를 표현하는 도구다. 숫자로 야구를 하려고 하니 요즘 스윙이 다 똑같다. 최근에 발사각 얘기가 주를 이루니 지표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운데로 오는 공만 멀리 보낼 수 있는 거다. 9개 코스에 대한 스윙이 다 달라야 한다. 코스마다 다른 타이밍, 스윙 궤적이 있다. 지금은 연습 때부터 어퍼 스윙으로 발사각을 만들려고 한다. 연습 때 치면 다 넘어간다. 왜냐, 컨디션 조절하라고 가운데 던져주니깐. 경기 때 투수가 컨디션 조절하라고 가운데 던져주나."

봉중근(이하 봉)= "나도 같은 생각이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에서 적시타를 때려낸 김태균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어퍼 스윙으로는 코너로 오는 공을 치기 힘들다. 어퍼 스윙을 한다고 홈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나, 그건 아니다. 발사각만을 위한 어퍼 스윙은 그로 인해 놓치는 게 더 많다. 타율과 출루율 등이 감소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니 소극적이게 되고 스윙도 망가진다. 숫자만 파고 들어가다 보니 지표들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봉= "'코스마다 타격 방법이 다르다'는 태균이 얘기에 공감한다. 투수는 여러 코스로 공을 던진다. 근데 타자들의 스윙은 다 똑같다."

김= "공만 띄우기만 하면 뭐하나. 공을 배트 중심으로 맞춰야 공이 앞으로 뻗는다. 중근이 형 말대로 '올드스쿨'이라고 하겠지만, 홈런만 바라보면 많은 걸 잃을 수 있다. 홈런 1년에 2~3개 더 치려다가 타율이 3~4푼 정도 떨어지고 출루율도 악영향을 받는다. 이게 효율적인가 생각이 든다."

. 스포츠투아이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타자들의 '핫 존'이 크게 줄어든 모습이다. 2016년에는 9개 중 8개 코스에서 타율 3할 이상이 기록됐지만 올 시즌에는 2개에 불과하다. 특히 매년 스트라이크존 상단 '하이볼' 타율이 떨어졌다. 2021시즌에는 스트라이크 한 가운데와 6시 방향에만 타자들은 강점이 있다. IS 포토

- 최근 '플라이볼 혁명' 따라가는 추세인 것 같다.

김= "말이 안 된다. MLB 선수들이 100개의 타구를 띄워서 40개를 넘긴다면 우린 10개 정도다. 왜 40개를 넘기는 쪽을 따라가려는 건가. 10개를 넘기면서 다른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려면 거기에 맞는 스윙 궤적을 만들어야 한다."

봉= "콘택트에 상관없이 발사각이나 스윙 궤도만 거론한다. 상황에 맞게 훈련하고 그다음에 뻗어 나가는 타구를 만들어 가는 순서로 가야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타구를 높게 띄워, 발사각은 이 정도 나와야 해'라고 얘기한다."

김= "야구를 해본 사람들과 안 해본 사람들 사이의 딜레마다. 숫자는 결국 야구 한 사람들의 결과를 놓고 본 것이다. 과정이 분명히 있는데, 결과만 놓고 맞춰나가려고 하는 건 안 된다. 딜레마에 빠져 있는 혼돈의 시기 같다."

- 한국 야구가 강했던 2008~2009년에는 특성이 있었다.

김= "미국은 소위 '빅볼'이었고 일본은 '스몰볼'이었다. 우리는 어느 쪽도 아니었지만, 선수마다 특성이 있었다. 그래서 국제대회 경쟁력이 있었다. 상대방이 당황할 수 있었다."

봉= "한국 야구도 미국만 따라가면 안 된다. 상황에 맞게끔 고등학교 때부터 훈련 프로그램 등을 만들어서 발전을 시켜야 한다. 신인 선수들이 프로에 와서도 성장해야 하는데 이게 없다. 투수들의 구속이나 제구 모두 하향세 느낌이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2라운드 일본전에 선발 등판한 봉중근이 4회 초 병살타를 잡아낸 뒤 주먹을 쥐고 있다. [연합뉴스]

김= "아마추어가 바뀌려면 프로부터 변해야 한다. 프로가 발사각을 추구하니 아마추어에서도 다 발사각 따라 한다. 프로에서 한국 야구에 맞는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봉= "그렇다. 한국만 갖고 있는 야구 프로그램은 없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일본 스타일이 대세였다. 10~15년 전엔 미국 프로그램을 갖고 왔다. 그렇다면 왜 한국 프로그램은 없냐 말이다. 한국·미국·일본 선수들의 체격이 다 다른데.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야구의 나라인데도 대한민국 야구 스타일이 없다. 이것 또한 많이 아쉽다. 한국만의 야구가 무엇이냐, 시원하게 답변을 못 한다. 이런 것 또한 선배들 잘못이다. 지금 선수들에게는 한국에 맞는 야구,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야구를 선배들이 가르쳐주고 같이 찾아가야 한다."

━ 도쿄올림픽 쇼크 그 이후

- 이번 도쿄올림픽은 성적 부진 충격이 어느 때보다도 크다.

김= "처음에 금메달이 목표였으니, 충격이 더 큰 것 같다."

봉= "맞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다 보니깐, 전 국민이 '야구는 금메달'이라고 생각했다."

김경문 감독을 비롯한 도쿄올림픽 출전 코치스태프와 선수단이 출정식을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야구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서 4위에 그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IS 포토

김= "중근이 형 말대로 어느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 최근 롯데 최준용이 던지는 걸 봤는데, 공이 정말 예술이었다. 그런 선수들을 그동안 몰랐던 거다. 이런 선수들이 잘하기 시작하면 대표팀 주축이 될 거다. 그동안 새로운 활약을 펼치는 선수들이 없었다. 튀어나오려는 시간도 부족했다."

봉= "전체적으로 지금 한국 야구는 성장통을 겪는 시기 같다. 현재 시점에서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제 시작이니깐. 앞으로는 밝을 것이다."

김= "최근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에 2차 1라운드 지명된 박준영(세광고)은 '팀을 우승시키겠다'고 얘기를 했더라. 당차다. 예전에는 이런 말 하는 게 엄두도 안 났다."

봉= "예전에는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MZ 세대(밀레니얼+Z세대)답다. 기대된다. 도쿄올림픽은 새롭게 구성을 한 첫 대표팀이었다. 결과가 좋았으면 좋았겠지만,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 시작이라고 본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 확신한다. 김진욱(롯데), 이의리, 박세웅(롯데)의 얼굴이 확실히 편안해졌다. 여유가 많아졌다. 넓게 보기 시작한 것이다.""

배중현 기자, 김영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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