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수의 평양, 평양사람들] 핵·미사일·열차발사 '3종 세트'로 남북 판흔들기?

정용수 입력 2021. 9. 24. 00:28 수정 2021. 9. 2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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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무기 잇단 노출, 김정은의 노림수


#1. 2008년 12월 19일 평양 보통강호텔 1층의 실내 스크린 골프장. 김책 공대 출신의 개발자가 십자드라이버를 들고 바닥에 설치된 기판을 뜯어냈다. 전날 문을 연 스크린 골프장이었지만 골프채가 바닥에 가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센서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이날 골프장을 찾았던 남측 관광객들은 “수리에 시간이 걸리겠다”는 안내를 받고 18홀 한 게임도 소화하지 못한 채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골프채도 잡아보지 못한 개발자들이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푸른하늘’이라는 프로그램을 뚝딱 만든 것 치고는 그럴듯했다. 하지만 초고속 카메라가 설치되지 않아 기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한 게임도 소화하지 못하는 미완성 골프장이 되고 말았다.

「 “당이 지시하면 대답은 오직 하나! 네, 알겠습니다” 관철 분위기
ICBM 성공 주장 이어 전술핵 탑재 단거리 미사일 개발 움직임
IAEA가 우려한 영변 핵단지 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 추출 동향
한국형 SLBM은 평가절하…북한 핵포기 믿지 말고 폭주 막아야

북한의 스크린 골프장 ‘푸른하늘’ 개발자가 시설을 수리하고 있다. 정용수 기자

#2. 2012년 12월 14일 서해 변산반도 서쪽 160㎞ 해상. 이틀 전 북한이 평북 철산군 동창리에서 쏜 인공위성 발사체 ‘은하-3호’의 1단 추진체 잔해물을 해군이 수거해 평택기지로 옮겼다. SPY-1D 고성능 레이더를 장착한 이지스 구축함은 발사체 궤적은 물론 파편 조각의 낙하를 포착했고, 해군은 청해진함을 투입해 이를 인양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인양한 연료탱크 등의 잔해물을 살펴본 미사일 전문가는 “어떻게 이렇게 조악하게 만들 수 있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이 ‘조악한’ 발사체는 러시아제 1단 발사체를 사용한 나로호보다 49일 앞서 우주로 날아올랐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흉내’를 내는 북한의 현실을 보여주는 예다. 북한을 방문해 식당에서 힘을 줘서 밥을 뜨다 보면 숟가락이 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순간 ‘숟가락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데 어떻게 미사일과 전차(탱크)를 만들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한 고위 탈북자는 “그것이 북한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나니(보니) 당에서 선택한 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달성해야 하는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귀띔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고른 성장이 아닌, 선택과 집중의 불균형 발전 때문이라는 얘기다. 이 탈북자는 “당이 지시하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만들어 놓고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짜내야 한다”라고도 전한다. 북한 곳곳에 “대답은 오직 하나! 네, 알겠습니다”라는 구호가 붙어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 북한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한국을 향해 말 폭탄을 퍼붓던 북한이 핵과 미사일 카드를 동시에 흔들고 있어서다. 집권 직후 “인민들이 더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일성으로 경제 개발에 나섰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무기를 챙기겠다”는 전략으로 바꾼 듯하다.

한국 해군이 인양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체 잔해. 정용수 기자

김 위원장은 후계자 시절 포병 사령관을 지낸 박정천 전 총참모장(현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군사 부문 개인 교사로 뒀다고 한다. 이 시절 현대전에서 포병과 미사일의 역할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집권 이후 네 차례의 핵실험과 90여 차례의 각종 미사일(방사포 포함)을 쏘며 미국을 겨냥한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에 올인했다.

지난해엔 미사일급 초대형 방사포와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신형 미사일도 공개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성공 주장(2017년 11월 29일)에 이어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 개발로 방향을 튼 모양새다.

여기에 새로 개발한 미사일이 동날 때쯤 되자 지난 15일엔 열차에서 미사일을 쏘는 ‘신형 발사 전술’을 들고 나왔다. 냉전 시기 미국과 옛 소련이 개발했던 핵 열차의 모방이다. 전기기관차가 대부분인 북한이지만 이날은 러시아의 M62 디젤 기관차를 동원했고, 이미 오래전 생산한 화물열차의 벽 아랫부분을 뚫어 화염 분출을 용이하게 했다. 한·미 연합군의 ‘방패’를 무력화하고, 이동식 발사 트럭(TEL)의 제한된 운용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영변에서 포착된 플루토늄 추출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가중하고 있다. 여기에 고농축우라늄(HEU)의 시설을 확장하는 조짐도 보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당장 이런 북한의 동향을 보고서에 담고,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과 미국의 연이은 대화 제의에도 북한은 핵물질(플루토늄, HEU)과 순항·열차 미사일 등 3종 세트로 위협과 긴장의 터널로 더욱 깊이 들어서고 있다.

국제사회가 인공위성으로 북한 전역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북한이 ‘위에서 보라’는 식으로 대놓고 활동을 재개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전력을 숨겼다가 상대방이 방심한 틈에 공격을 펼치는 ‘빨치산 전술’을 구사하는 북한이 과거 비밀리에 핵 개발에 주력했던 점을 고려하면 의도적인 노출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이 하노이에서 시도했던 영변 거래가 불발되자 ‘미국의 후회’를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어깃장 시위로 몸값을 높이려거나, 김 위원장이 지난 1월 지시한 소형 핵탄두용 핵물질 확보의 일환일 수 있다. 군사 분야의 발전을 다른 경제 분야에서도 본보기로 삼으라는 대내 결속의 효과를 노렸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북한은 무기 연구 개발 책임자인 장창하 국방과학원장을 20일 등판시켜 군사적 행동의 폭을 더 넓히겠다는 뜻을 예고했다. 그는 지난 15일 문 대통령의 참관하에 이뤄진 한국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실험을 “분명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이 아니었다”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면서도 “남조선의 의욕적인 잠수함 무기체계 개선 노력은 우리(북한)를 재각성시키고 우리가 할 바를 명백히 알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한국군이 개발한 SLBM보다 규모나 위력이 큰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거나 3000t급 잠수함의 진수를 통해 ‘급’이 다른 무기임을 과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인공위성 발사에 나서며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맞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상황이라면 2018년 한반도의 봄을 이끌었던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마지막 시기 3종 세트를 이용한 북한의 폭주는 가속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남북관계 단절과 국제사회의 처절한 제재 속에서도, 대화의 와중에도 창끝을 갈았다. 핵을 포기하겠다는 북한의 의지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을 제어해야 한다. 여차하면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전술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아찔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 마라토너보다 느린 북한 열차

「 북한이 지난 15일 터널 앞에 정차한 열차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새로운 전술을 공개했다. 고정식 미사일 기지에서만 쏘다 이동식 차량(TEL)을 이용해 기습 능력을 키우더니 열차까지 활용하고 나섰다. 북한이 철도기동미사일 부대를 창설했다고 밝히면서 북한의 철도 환경이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열악한 철도 환경을 고려하면 미사일 열차를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철도는 대부분 일제강점기에 건설했다. 이후 부분적으로 현대화했지만 철도 노반이 유실돼 경사면이 많고, 레일과 침목이 마모됐거나 파손도 심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열차가 이용하는 교량 역시 균열을 방치한 곳이 있어 안전에 우려가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력 부족으로 인한 열차 운행에 어려움을 겪는 동시에 철로 자체에도 커다란 결함이 있다는 얘기다. 북한의 열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서행해야만 하는 이유다.

남북은 북한 철도 현대화를 위해 2018년 말 공동조사를 했다. 철로 상태에 따라 구간마다 속도 차이가 있고, 안전을 위해선 대대적 보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공동조사에 참여한 안병민 한반도경제협력원장은 “개성-사리원 구간의 운행속도가 시속 10~20㎞에 불과했다”며 “세계적인 마라토너가 보통 시속 20㎞ 이상으로 달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이긴 하지만 북한 열차는 마라토너보다 속도가 느린 셈”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미사일 열차를 개발했더라도 철도 여건상 가용구간이 한정적이거나 제 성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북한이 열차를 터널에 은닉해 놓고 있다 발사할 경우엔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박수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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