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따스한 엄태구

2021. 9. 2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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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 이름 외우는 일에 젬병이라는 엄태구는 집을 나서며 요즘 쓰는 향수의 이름을 되뇌었다고 했다. 언젠가 무슨 향수를 쓰냐는 팬들의 질문에 대답해주지 못한 것이 줄곧 마음에 걸렸다는 설명과 함께.
슬리브리스 톱 10만5천원 코스.

새 드라마 〈홈타운〉에서 연쇄 테러범 역할을 맡았어요. 점점 더 강렬한 역할로 진화 중이네요.

맞습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제가 원래 무서운 걸 잘 못 보는데 〈홈타운〉은 대본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박현석 감독님은 신인 시절 단막극에 캐스팅해주신 분인데, 이번에 다시 만나 작업하게 돼 너무 뜻깊습니다. 즐겁게 촬영하고 있습니다.

엄태구가 연기하는 소시오패스라니, 어떤 악인 캐릭터가 탄생했을지 궁금해요.

일단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캐릭터라 좋았어요. 그동안 본의 아니게 몸 쓰는 역할을 많이 했는데 ‘조경호’는 무기징역수로 수감 중이라 주로 앉아서 말만 하는 캐릭터거든요. 이 사람은 왜 테러를 저지르는지, 인물의 과거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미스터리한 부분도 좋았어요.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대본을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죠. ‘조경호’가 왜 지금 이런 말을 하는지,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계속 추리하고 상상하면서 저만의 빌런을 만들었습니다.

앉아 있어 행복한 태구 씨와 달리, 함께 출연하는 유재명·한예리 씨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몸으로 뛰어다녔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두 분이 진짜 고생을 많이 하세요. 현장에서 가끔 뵈면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대신 저도 앉아 있을 때 대사량이 엄청 많습니다. 말만 하는 역할이라서요.(웃음)

낯가리는 것 같으면서도 호시탐탐 은근한 유머로 훅을 날리네요. 최근 예능에서도 엉뚱한 본캐가 알려져 반전 매력으로 사랑받았고요. 엄태구의 말랑말랑한 모습에 반한 팬이 많은데, 또 이렇게 강렬한 역할을….

저도 밝은 거 해보고 싶습니다. 멜로 하고 싶습니다.

〈구해줘 2〉에서 한선화 씨를 설레게 하던 ‘민철’을 기억하는 팬도 많아요. 막연히 “너,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류의 멜로 대사를 엄태구 고유의 깊은 목소리로 말하면 스릴러물로 장르가 바뀌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멜로가 잘 어울리더라고요. 멜로 배우로서 엄태구를 재발견할 수 있는 과거작을 추천한다면요?

추천을 한다면 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재밌는 요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로맨스는 한 작품밖에 없네요. 멜로와 로맨스 너무너무 하고 싶습니다.

태구 씨의 지난 인터뷰 영상을 찾아봤는데요, 제품이나 가게 이름을 잘 기억 못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이번에 독자 질문을 사전 모집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향수 이름이 도대체 뭐냐”는 질문이 또 등장했어요.

저도 제가 반복적으로 그러는지 몰랐는데, 정말로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은 향수 이름을 외우려고 촬영장 오는 길에 몇 번이나 검색을 했어요. 계속 까먹어서요.

그래서 그 향수 이름이 뭐예요?

데메… 데메테르요. 근데 이 간단한 이름을 계속 까먹는 거예요. 그래서 차 안에서 대본을 외우다가도 ‘데메테르… 데메테르…’ 계속 되뇌었어요.

슬리브리스 톱 10만5천원, 팬츠 17만5천원 모두 코스. 볼캡 17만2천원 이자벨 마랑. 팔찌 (왼쪽부터) 4만8천원 프리모떼. 3만1천9백원 윙블링. 스니커즈 10만5천원 컨버스.

긴 대본을 외우고 소화하는 것에 익숙한 배우가, 간단한 명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재밌는 포인트네요.

뭔가 외우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대사를 외울 때는 오래 걸리는 대신, 오래 기억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했던 작품 대사도 종종 생각나는걸요.

브랜드 이름에 관심이 없는 걸 보고, 물욕이 많은 사람도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주로 어디에 소비하는 편이에요?

그런 것 같긴 해요. 일상생활할 때 필요한 것들 말고는 따로 뭘 사진 않네요.

최근엔 어디에 지출했어요?

아이스 바닐라라테요.(웃음) 딱히 미식가는 아니지만 디저트 사 먹는 거 아니면 사실 돈 쓰는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요즘엔 코로나19 때문에 식당은 잘 못 가고 도토리묵을 자주 시켜 먹어요. 비빔밥, 도토리묵, 비빔국수를 자주 먹고 어제는 월남쌈을 시켜 먹었네요. 촬영장에서 유자 에이드와 미숫가루도 식사 대용으로 즐겨 먹습니다.

엄태구의 팬들은 아이돌 팬덤 같은 성향이 있어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궁금해하더라고요. 우리 배우가 뭘 먹고 뭘 좋아하는지 같은 시시콜콜한 거요. 그런 팬들의 관심을 체감할 때가 있어요?

아, 있었습니다. 영화 촬영장에 커피차가 왔어요. 참… 돈이 한두 푼 아닐 텐데…. 커피차를 제 화보 사진으로 꾸며 보내주셨는데, 그 사진들이 하나 기억납니다.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아바라’ 마니아로 유명하던데, 팬들의 사랑 역시 커피로 체감을 하는군요.

커피차는 일부분이고, 팬분들이 주시는 편지도 다 챙겨 봅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죠.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도 그렇고, 과거 영상을 보니 평소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에 인색하지가 않더라고요. 심지어 본인이 낯가릴 때도 타인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식이죠. 그런 사소한 말 습관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잘 살피고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말을 많이 하는 것 같긴 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예요.(웃음)

이렇게 말수가 없는 분이 스스로 ‘많이 하는 말’이라고 할 정도면 말 다했네요.

자연스럽게 계속 나오는 말인 것 같아요. 매니저분한테도 되게 많이 해요. 고마우면 “고맙습니다”, 잘못하면 “미안합니다”, 끝나면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안전 운전하세요”.(웃음)

오래전 인터뷰에서 닮고 싶은 배우로 김혜자 선생님을 꼽았더라고요. 특별한 연결 고리가 없는 분이라 조금 의외였어요.

과거에 연기가 잘 안 돼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하루는 분장차에 탔는데 TV에서 김혜자 선생님이 출연한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어요. 김혜자 선생님이 “난 아직도 연기가 잘 안 되면 집에 가서 울어요” 하시는데, 그 말이 굉장한 위로가 되더라고요. 10년도 더 된 일 같은데, 아직까지 그 상황이 기억에 남아요.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해서 차근차근 발전해나가는 게 당연한 거구나’ 싶었죠. 그리고 선생님이 신앙도 되게 깊으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태구 씨도 신앙이 깊고, 태구라는 이름도 성경에서 왔죠? ‘성령의 9가지 열매’라는 뜻이라고요. 본명 대신 활동명을 정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이름을 썼을지 상상해보자면요?

(웃음)

갑자기 왜 웃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딴생각을 해서…. 뭐였지? 데메테르…! 갑자기 데메테르가 떠올라서요.(웃음)

그 향수 이름은 절대 안 까먹을 것 같아요.(웃음) 누가 봐도 연예인 이름 같은 활동명을 썼을까요?

엄태구는 연예인 이름 안 같나요?(웃음)

배우 이름이라면 몰라도 아이돌 이름 같지는 않달까요?

아니, 아이돌 중에도 엄태구라는 이름이 있을 순 있잖아요.(웃음) ‘구’ 자가 들어가서 영구, 맹구 이런 느낌이려나요. 그렇다면 제 선택은 데메테르….(웃음)

뮤지컬 남자 주인공 이름 같고 좋네요…. 인터뷰에서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고, ‘적성에 안 맞나’ 이런 생각을 했다는 얘기도 자주 했었어요.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었거든요. 연기를 잘한다는 의미는 아니었고,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온 일이라 연기 외에는 제가 할 만한 직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계속할 수밖에 없었죠.

묵묵하게 연기를 해온 과거의 엄태구 덕분에 지금의 엄태구도 있는 거겠죠?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저한테 말하려니 오그라드는데. 그냥 아는 동생이 군대 간다고 하니까, 쳐다보는 느낌이에요. ‘아휴…’ 뭐 이런 느낌이요.(웃음)

‘아휴, 애썼다’ 이런 느낌인가요?

아뇨, (앞으로) ‘애쓰겠다’ 이런 거죠. 옛날에 제가 입대한다니까 아는 형이 갑자기 안아줬던 기억이 나는데, 딱 그런 느낌이에요. 계속 한숨이 나요. 그냥 ‘에휴… 어떡하냐…’(웃음) ‘에휴… 참, 파이팅. 에휴…’ 계속 한숨만 나옵니다.

그래도 지금의 엄태구는 행복한 배우죠?

지금의 저는 너무 감사하고, 이렇게 연기할 수 있다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내겐 없지만, 앞으로 갖췄으면 하는 성격이나 태도가 있다면요?

외향적인 성격이요. 어렸을 때는 외향적이고 싶어 외향적인 척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나면 항상 불편했어요. 나이가 들면서는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야겠다 했죠. 외향적이고 재밌는 말 잘하고, 주변과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항상 부러워요.

왜요, 오늘 깨알 같은 ‘데메테르’ 드립 너무 웃겼는데요? 유머 감각이라면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인터뷰도 재밌었고요.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분위기를 재밌게 만들어야겠다 딱 마음먹고 자연스럽게 유머를 던지는. 그런 면이 있었으면 해요. 그래도 오늘은 데메테르 덕에 본의 아니게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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