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40살에 부부 둘 다 은퇴.."15년 버틸 5억 위해, 소득 70% 저축"[오늘, 퇴사합니다]

이태윤 입력 2021. 9. 23. 10:00 수정 2021. 9. 23. 16: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파이어(FIRE)족이 상륙했다. ‘경제적 독립,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앞글자를 딴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을 통해 40대 초반 전후에 은퇴한 이들을 일컫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젊은 고학력·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퍼졌다.

자본 소득에 비해 뒤처지는 노동 가치, 불안정한 고용과 사라진 평생 직장, 길어진 수명 등이 MZ세대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도 파이어족의 등장을 부추기고 있다. 중앙일보는 불안한 시대에 조기 은퇴를 택한 한국판 파이어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늘, 퇴사합니다]③소득 70% 저축해 파이어한 김다현씨


지난해 9월 조기 은퇴한 김다현(40) 씨가 26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빌딩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돈부자 말고 ‘시간 부자’ 하려고요.”

지난해 9월 은퇴하며 ‘파이어(FIRE)족’ 선언을 한 김다현(40)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카카오에서 기획 업무를 하던 그는 5년간 준비 끝에 파이어족이 됐다. 기혼자인 그가 주변에 조기 은퇴 사실을 알리면 ‘남편이 돈을 벌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남편은 그보다 1년 먼저 은퇴했다. 두 사람 모두 이른바 '금수저'도 아닌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사실 그가 파이어족을 꿈꾼 건 남편을 만나면서다. 김씨의 남편은 결혼 전부터 마흔 즈음의 은퇴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었다. ‘정말 은퇴해도 살 수 있나’라는 의문을 품었던 그는 먼저 파이어 한 남편을 보며 결심을 굳혔다.

김씨 부부는 은퇴 전 ‘공동 은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남편은 은퇴한 뒤 긴 시간을 채울 ‘할 거리’를 담당했고 그는 ‘자금 계획’을 맡았다. 부부가 설정한 한 달 생활비는 250만원. 두 사람이 납입한 연금 수령 전까지 15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매년 3000만원씩 약 4억5000만원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15년간 생활비를 5억원으로 잡고 저축을 시작했다.

파이어족 김다현 씨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김성룡 기자


부부는 합산 소득의 70% 이상은 무조건 저축했다. 퇴직금은 세금 감면을 위해 일시금이 아닌 퇴직연금으로 수령했다. 퇴직연금으로 받으면 퇴직소득세가 30% 감면된다. 5년여 만에 2억원 남짓 현금을 모았다. 퇴직 목표액 중 부족한 부분은 이후 지방으로 이사해 집 규모를 줄인 뒤 보충하기로 했다.

55살부터는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으로 10년을 살고, 그 이후에는 국민연금과 주택연금으로 노후를 꾸려나가기로 계획했다. 김씨는 “개인연금은 2011년부터 10년간 냈고, 국민연금은 부부 모두 추가 납입금을 다 낸 상태”라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결혼 즈음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산 것 외에 별다른 재태크를 하지 않았다.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가장 큰 무기는 ‘열심히 일하고 소비 덜하기’였다. 5년 연속 근무 평가 최상위권을 유지했고 연봉을 높이기 위해 이직도 두 번이나 했다.

그는 “파이어족이라고 하면 뭔가 회사에서도 일을 대충 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지만 정말 ‘빡세게’ 일했다”며 “연봉을 20% 올린 적도 있다. 몸값을 높이는 것도 투자”라고 말했다.

소비도 줄였다. 스노보드와 낚시, 골프, 승마 등 ‘취미 부자’였던 남편은 도보 여행 같은 돈이 들지 않는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그는 “결혼 전 다양한 경험을 해본 뒤 돈을 적게 들여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며 “은퇴한 뒤에는 회사에 다닐 때 했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충동 소비(시발 비용)도 없어져 쓰는 돈이 더 줄었다”고 말했다.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 저자 김다현 씨가 26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 빌딩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그는 파이어족을 꿈꾸는 다른 이들에게 ‘시간 관리’를 강조했다. 흔히 은퇴하면 ‘아무 일 안 하고 논다’고 생각하지만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은퇴 목적이 아니란 의미다. 그는 “은퇴한 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만 파이어족 체질이다”라며 “은퇴하면 시간이 정말 많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살 순 없다”고 말했다.

성취욕이 강하거나 소속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에는 파이어족 생활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무소속이라는 건 여러 편견에 부딪히는 일”이라며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는 사실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데다 직장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은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의 로망은 ‘50살 전 세계 여행’이다. 생활비로 정한 5억원 중 1억원은 여행 자금으로 쓸 생각이다. 매달 각자 쓰는 용돈 10만원을 모아 주식 투자 등 투자 공부도 하고 있다. 그는 “조기 은퇴를 권장하고 이런 삶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며 “다만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도 괜찮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