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년 전 비경 간직한 풍문의 섬, 20kg 배낭 멘 백패커들의 천국
인천 섬여행④ 굴업도 백패킹
인천 먼바다에 오랜 풍문 같은 섬이 있다. 굴업도(掘業島). 이름도 낯설다. 엎드려 일하는 사람처럼 생긴 섬이라는 뜻이란다. 드론 띄워 내려다보니 초원 펼쳐진 개머리언덕이 아버지의 젊었을 적 등처럼 널찍하다. 수크령 흐드러진 이 해안 언덕이, 백패커라면 누구나 안달하는 꿈의 성지다. 사슴 뛰어놀고 송골매 날아다니는, 인공의 흔적이라곤 희미하게 드러난 길이 전부인 거짓말 같은 풍광에 이끌려 20㎏ 넘는 배낭 짊어진 백패커가 꾸역꾸역 찾아온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밤을 보낸다.
굴업도 약사(略史)
일제 강점기, 굴업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민어 파시가 열렸다. 그 시절 섬에는 주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았다. 어부도 많았지만, 접대부도 많았다. 그 흥청거렸던 세월이 섬 북쪽 목기미해변 너머에 반쯤 허물어진 건물 잔해와 기울어진 나무 전봇대로 남아 있다.
30년쯤 전에는 핵폐기물 처리장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굴업도 바다 밑에서 활성 단층이 발견돼 핵폐기물 처리장 건립 계획이 전면 폐기됐다. 활성 단층이 있다는 건 지진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활성 단층이 발견된 해저 골짜기가 바로 민어 어장이었다.
그로부터 10년쯤 뒤엔 골프장이 들어설 뻔했다. 2006년 CJ그룹 계열사 C&I레저산업이 굴업도에 골프장·호텔 등을 갖춘 관광단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CJ그룹은 섬의 98.5%를 사들이면서 210억원을 썼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CJ그룹은 2014년 굴업도 골프장 사업을 포기했다.
2021년 현재, 섬 주인은 여전히 CJ그룹이다. 그래도 주민 10여 명이 산다. 관광객을 상대로 밥도 팔고 방도 판다. 하나 섬의 나머지 1.5%를 소유한 이신숙(59)씨 가족의 민박집 말고는 분쟁 소지가 있다. 백패킹도 엄밀히 말하면 사유지 불법 침입에 해당한다. CJ그룹이 묵인하고 있을 뿐이다. 굴업도가 백패커의 섬이 된 지 10년이 됐다지만, CJ그룹 쪽에서 문제 삼은 적은 없다. ‘섬투어’ 현숭덕(51) 실장에 따르면 굴업도에는 여름 하루 평균 300명이 들어온다. 이 중에서 80% 정도가 백패커다.
한국의 갈라파고스
별 헤는 밤
백패커가 텐트를 치는 개머리언덕엔 초원 말고 아무것도 없다. 가게도, 화장실도, 전기도 없다. 굴업도 백패커의 배낭이 유난히 크고 무거운 까닭이다. 화기를 금지하지는 않지만, 백패커 대부분이 알아서 불을 쓰지 않는다. 굴업도까지 들어오는 백패커는 캠핑 고수가 대부분이다. 특히 자연주의 캠퍼가 많다. 쓰레기는 아예 만들지도 않으며, 외려 쓰레기가 보일 때마다 주워 담는다. 채울과 치도도 찬물에 먹는 간편식과 커피를 챙겨 왔다.
굴업도 백패킹의 하이라이트는 일몰과 함께 시작한다. 저녁 해가 하늘과 바다에 시뻘건 기운을 토해내고 사라지면, 굴업도의 새로운 주인이 나타난다. 굴업도의 밤을 지배하는 별이다. 인공조명이라곤 은은히 비치는 텐트 불빛이 전부였던 순전한 밤, 별이 이렇게 밝았었나 새삼 깨달았다. 개머리언덕에 팔베개하고 누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을 헤아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굴업도 이후 백패킹은 시시하겠다고.
■ 여행정보
「
굴업도는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85㎞, 덕적도에서 남서쪽으로 13㎞ 떨어져 있다. 인천항에서 굴업도로 바로 들어가는 배가 없어 덕적도에서 갈아타야 한다. 인천항에서 덕적도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린다. 덕적도에서 1시간가량 기다린 뒤 갈아타는데, 덕적도~굴업도 노선은 홀숫날과 짝숫날에 따라 노선이 달라진다. 짝숫날은 덕적도에서 출발한 배가 문갑도~지도~울도~백아도~굴업도 순으로 들어가고, 홀숫날은 역순으로 순회한다. 하여 백패커는 홀숫날을 골라 굴업도에 들어간다. 짝숫날에는 덕적도~굴업도 노선이 2시간 남짓 걸리고, 홀숫날엔 1시간이 채 안 걸린다. 홀숫날을 골라도 인천항에서 굴업도까지 3시간이 걸린다. 경북 포항에서 217㎞ 거리인 울릉도도 세 시간 뱃길이다. 굴업도는 먼 섬이다. 그래도 백패커는 찾아간다.
」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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