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새로운 명절의 시작

2021. 9.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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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이 끝났다.

가족이 모일 수 없는 명절을 지내니 계시지 않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부모님의 몸이 불편해지면서 더 이상 명절이라고 기름 냄새를 피우지 않아도 됐다.

그렇게 예수님과 '우리'가 되는 명절 같은 시간을 날마다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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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이 끝났다. 가족이 모일 수 없는 명절을 지내니 계시지 않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러나 실제로 시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명절은 내게 그리 행복한 시간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10년이 넘도록 설과 추석마다 기름에 절어 지내야 했다. 명절에 먹을 양만 하면 될 터인데, 어머님은 늘 무지막지한 양의 전을 부치게 했다. 여러 종류의 전을 부치고 식자마자 냉동고에 쌓아두는 노동의 반복은 끔찍했다. 아마도 전을 좋아하는 나를 위한 사랑이었겠지만, 나는 나중에 먹을 전보다 당장에 기름 냄새로부터의 해방이 절실했다.

시간이 지나 아버님은 뇌출혈로, 어머님은 치매로 어려운 시절이 또 다른 10년 넘도록 계속됐다. 부모님의 몸이 불편해지면서 더 이상 명절이라고 기름 냄새를 피우지 않아도 됐다. 때마다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찾아오는 친척들은 늘 있었지만, 편찮으신 부모님을 핑계로 짧은 인사와 간단한 다과로 보내는 명절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억이 희미해지시는 어머님께 “정신 줄을 꽉 붙드셔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시던 어머님은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라고 말씀하셨다. 깜짝 놀라서 “저 믿지 마세요. 어머니 정신은 어머니가 잡으셔야 해요”라고 했다.

어머님은 정말 나를 믿고 편하게 기억 저편으로 가고 계신가.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목소리는 귓가를 떠나지 않았고, “너만 믿는다”고 말하는 어머님 눈빛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해 추석부터 나는 다시 전을 부치며 찾아오는 손님들께 어머님 방식으로 반가움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어머님이 나를 믿고 있다는 것 때문이다. 명절 때 오시는 손님들에게 차 한잔이나 과일 한쪽의 대접은 어머님 맘에는 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어머님이 음식을 대접하고 싶으셨던 분들, 봉투를 준비해주셨던 분들. 어머님은 늘 자신의 방식이 있었다. 나는 어머님의 손님맞이를 떠올렸고, 부모님을 때마다 정성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점차 고마워졌다. 분주한 명절이 다시 찾아왔다.

두 분 모두 하늘나라로 가시고 이제 명절에 대접해야 하는 손님은 거의 없다. 더욱이 코로나19로 모이지 못한 명절을 두 해나 보내니, 명절의 간편함과 간소함이 나쁘지 않다. 그러나 모이지 못하고 인사드릴 어른이 없어도, 명절은 나름의 기억과 의미를 소환한다. 명절은 ‘우리’를 지키는 것에 대한 돌아봄이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우리’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 집은? 우리 부모님은? 우리 형제는? ‘우리’로부터 만들어진 정체성은 ‘나’의 일부이다. 그 ‘나’는 또 다른 ‘우리’를 향해 나아간다. 어머님을 기억하면서 나는 ‘어머님이 귀하게 여긴 것’으로 어머님과 나를 묶었다. 어머님이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어머님이 베풀고 싶었을 사랑을 흉내 내면서 나는 그렇게 어머니와 ‘우리’가 되었다.

유언 같은 어머님의 말씀,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내게 예수님의 지혜가 되었다. 예수님도 ‘네가 알아서 내 일을 해줄 텐데 무슨 걱정이냐’고 할 것 같다. 내가 그의 제자라면 말이다. ‘네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가 예수님과 나를 묶는 끈이라면, 예수님이 좋아하고 하고 싶어 했을 것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흉내 내고 싶다. 그렇게 예수님과 ‘우리’가 되는 명절 같은 시간을 날마다 보내고 싶다. 멀리 계신 어머님이 생각나는 명절이 끝나면, 그래서 나에게는 새로운 명절이 시작된다. 몇 날의 휴일이 아닌, 날마다 예수님과 묶인 나날이다. 우리를 통해서 자신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원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예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우리 마음과 이어지는 시간이다.

김호경 서울장로회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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