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의 퍼스펙티브] 그들은 왜 별풍선을 쏠까

양성희 입력 2021. 9. 23. 00:38 수정 2021. 9.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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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경제와 후원문화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풍경1

“기도하는 심정으로 유치장에서도 계속 흥얼거렸다. 가사가 46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지난 10일 정치·연예 유튜버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멤버 강용석 변호사가 생방송 중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자 채팅창에 슈퍼챗(super chat)이 쏟아졌다. 슈퍼챗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 중 채팅창을 통해 시청자 후원금을 받는 서비스로, 아프리카TV 별풍선과 유사하다. 유튜브 데이터 집계 사이트 플레이보드에 의하면 이날 강 변호사는 슈퍼챗으로 1900만원을 벌어들였다. 강 변호사 등 가세연 3인방은 7일 체포됐다가 9일 풀려났는데, 7~10일 슈퍼챗 수입만 5000만원이 넘었다. 가세연은 지난해 12월 강 변호사가 긴급체포될 때도 슈퍼챗으로 2000만원을 벌었었다.

#풍경2

“중학생 동생이 엄마 이름으로 계정을 파 (여러 BJ에게) 쏜 별풍선이 700만원이 넘었습니다.” 최근 아프리카TV BJ 랄랄이 여중생 팬 가족으로부터 받은 쪽지 내용이다. 랄랄은 자신이 받은 별풍선은 140만원으로 “방송 중에 중학생은 후원하지 말라고 했고, 어린 친구에게 따끔한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며 환불을 거절했다가 논란이 일자 돈을 돌려줬다. 지난해에는 11살 초등학생이 1인방송 플랫폼 하쿠나라이브의 BJ 30여명에게 1억3000만원을 쏘는 일도 있었다. 전세자금이었다. BJ들이 고액 후원자를 ‘회장님’이라 부르는데 “회장님으로 불리고 싶어서”가 이유였다. 부모가 BJ들을 일일이 찾아다니고 방통위까지 나서서 가까스로 환불이 이루어졌다. 방통위는 재발 방지를 위해 별풍선 등 아이템 구매 시 미성년자 보호 강화, 현행 자율규제인 플랫폼 이용자의 결제 한도 설정 등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 유튜브 슈퍼챗 돈방석 유튜버
억대 별풍선 수익 BJ도 수십명
파편화된 개인의 소통욕구 악용
팬들끼리 후원금 경쟁 부추겨

#억 소리 나는 후원금의 세계

양성희의 퍼스펙티브

최근 두 사례를 계기로 인터넷 개인방송의 ‘도네(후원)’ 문화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타에 열광하는 아이돌 팬들처럼 좋아하는 BJ·크리에이터에게 즉흥적으로 후원금을 쏘는 문화다. 규모부터가 엄청나다.

지난해 국내 유튜브 채널 중 슈퍼챗으로 1억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 채널은 36개였다. 수천만 원대도 수두룩하다. 여기에 ‘별풍선 원조’ 아프리카TV, 트위치 등 개인방송을 더하면 규모는 상상 이상이다. 아프리카TV 별풍선 집계 차트인 풍투데이에 따르면 하루 수천개의 방송이 열리며, 지난 21일 하루 동안 BJ들이 선물 받은 별풍선의 총 분량은 7억원이 넘었다. 또 지난 8월, 별풍선으로 1억원 이상 벌어들인 아프리카TV BJ는 1위 미숑(5억8500만원·30% 플랫폼 수수료 포함)을 비롯해 32명에 달했다. 2억원 이상의 상위 10위권 중 남성 BJ는 2명, 그 외는 전부 미모의 여성 BJ가 일상적인 모습을 공개하는 토크·캠방(캠코더방송) 채널이었다. 대박행진이 이어지지만 일부 무분별한 후원,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주목 경쟁 등 문제도 여전하다. 2019년에는 한 시청자가 특정 BJ에게 한번에 1억3200만원을 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튜브 슈퍼챗의 국내 최강자는 가세연이다. ‘태극기 코인’과 연예인 대상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로 비판이 많지만 열혈 구독자들을 이끌며 지금까지 16억4000만원을 벌어들였다. 국내 1위는 물론이고, 지난해 5월엔 전 세계에서 슈퍼챗을 가장 많이 받은 채널에 오르기도 했다. 해외 주요국에선 주로 게임 채널이 슈퍼챗 상위 목록에 오르는데, 국내는 정치·시사 채널이 강세인 것도 특징이다.

유튜브가 혐오표현·허위정보 등에 ‘노란 딱지’를 붙이면 광고가 제한돼 정상적 수익 창출이 어려워지는데 이때 슈퍼챗이 돌파구가 돼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평가 김내훈씨는 책 『프로보커터』에서 가세연에 대해 “극단적 도발 행위와 극소수 추종자의 유대가 높은 후원금으로 발현됐다”고 평했다. 책에 따르면, 과거에는 사회 분위기나 통념상 드러낼 수 없는 견해나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결되면서 ‘사회적 승인 없는 사회’의 세력화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조회 수 장사, 후원금 수익 모델이다. 다수에게 외면당하더라도 극소수 지지자만 확보하면 된다.

여러 문제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후원을 광고나 구독모델을 잇는 새로운 IT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튜브는 최근 라이브방송 중 슈퍼챗에 이어 녹화·편집된 동영상에도 후원금을 쏠 수 있는 ‘슈퍼땡스(super thanks)’ 기능을 추가했다. 트위터·틱톡·클럽하우스 등 소셜미디어들도 속속 후원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이미 별풍선(수수료)은 아프리카TV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팬끼리 후원금 경쟁, 서열화

별풍선·슈퍼챗은 좋아하는 스타를 위해 주머니를 열고 이들의 활동을 지지·후원한다는 점에서 아이돌 팬덤과 유사한 ‘팬덤 경제’의 하나다. 자발적인 후원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후원을 끌어내는 교묘하고 왜곡된 방식이다. 주로 별풍선이 여기에 해당한다. 타 스타 팬덤과 경쟁하는 아이돌 팬덤과 달리, 별풍선은 같은 팬들끼리 후원 경쟁을 부추기고 서열화한다. 별풍선은 쏘는 액수에 따라 채팅창의 색깔이 달라지고, 매니저-열혈팬-팬클럽-일반 시청자로 팬의 등급이 정해진다(슈퍼챗도 후원금을 내면 댓글이 상위에 고정되거나 강조되지만, 딱히 서열화를 하지는 않는다). 열혈팬, 그중 톱5에는 각종 특혜가 주어지며 열혈팬이 되는 후원금 기준은 BJ가 정한다. 별풍선 집계 사이트 풍투데이에서는 BJ별 팬 후원 순위가 공개되고, 누가 별풍선을 많이 쐈는지, 누구에게 얼마나 쐈는지 알려주는 ‘큰 손 차트’도 제공한다. 팬들 간 후원금 경쟁을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방식이다.

논문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프리카TV 사례로 본 사이버 머니 소비 동기에 관한 연구’(고대 글로벌비즈니스대학 박사과정 박성렬 등)에 따르면 시청자들은 “콘텐트가 재미있어서(28.5%)”, “BJ가 마음에 들어 계속 방송했으면 해서(27.1%)”, “채팅창에서 나를 인식시키고 싶어서(19.4%)” 순으로 별풍선을 쐈다. 콘텐트에 대한 만족도 못지않게 응원 심리, BJ와 나의 관계 인증 심리가 크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논문에서 인터뷰한 21명 중 19명이 20~40대 남성이었다.

이들은 평균 1만개 이상 별풍선(개당 110원)을 쐈으며 “BJ의 기념일을 챙기고 별풍선 아닌 실제 선물을 제공”하거나 “BJ를 연인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내 별풍선에 우와하면 영웅 심리가 작용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열혈팬 10위를 다니까 BJ가 연락해와서 실제 만났다”는 경험담도 나왔다.

이벤트처럼 후원금을 독려하는 장치들도 있다. 아프리카TV에서는 한사람이 별풍선을 1개, 2개, 3개에서 100개까지 연속해 쏘는 걸 ‘백두산’이라 부르는데, 별풍선을 차례로 쏘는 동안 과연 그 사람이 진짜로 백두산을 탈 수 있을지 BJ와 시청자의 관심이 집중된다.

유재홍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개인방송, 그 수익의 근원’이라는 논문에서 “1인가구의 증가, 파편화된 개인들이 온라인을 통해 ‘사회적 교감’을 추구할 가능성이 개인방송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고독감·외로움이 미디어를 통한 준 사회적 관계를 추구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며, 온라인에서 실제와 다른 페르소나(자아)를 가지고 관계를 맺는 것에 익숙한 세대들은 앞으로 더욱 ‘적당히 떨어진 친밀감(intimacy at a distance)’을 즐길 가능성이 높다는 해외 연구결과도 함께 소개했다. 별풍선 쏘기의 심리적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참고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슈퍼챗을 많이 받는 크리에이터는 사이버 인간, ‘버튜버(virtuber·버추얼 유튜버)’다. 지난 7월에는 전 세계에서 슈퍼챗으로 돈을 많이 번 유튜버 1~8위를 버튜버가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1위는 ‘드래곤 종족의 3500세 여성’이란 설정의 기류 코코였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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