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의 현문우답]미군 철수 막은 김장환 목사의 숨은 외교력

백성호 2021. 9. 2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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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포럼(이사장 이홍구)은 10일 ‘2021 제13회 영산외교인상’ 민간부문 수상자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87) 목사를 선정했다.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박항서 감독도 이 상을 받은 바 있다. 김 목사는 한국전쟁 때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다가 미군 상사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김 목사가 가진 대미 외교 네트워크는 상당하다. 16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의 극동방송에서 만난 김장환 목사에게 ‘숨겨진 외교력’을 물었다.

김장환 목사가 '2021 제13회 영산외교인상' 민간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성룡 기자


1979년 카터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다.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된 카터는 주한 미군 철수를 결정한 상태였다.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1차 한미 정상 회담을 가졌다. 분위기는 험악했다.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 입장을 밝히고, 김대중ㆍ김영삼 야당 지도자에 대한 가택 연금 조치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카터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서 마련한 영빈관에도 머물지 않았다. 미군 부대를 찾아가 군인들과 함께 조깅을 하고, 주한 미 대사관저에 머물렀다. 박 대통령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미군 철수는 한반도 평화에 위협적인 정책이었다. 이런 위기일발 상황을 바꾼 이가 다름 아닌 김장환 목사였다.

Q : 당시 무슨 일이 있었나.

A : “1차 한미 정상회담이 안 좋게 끝났다. 마침 일요일이었다. 카터 대통령이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 20명을 미 대사관저로 초청했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한경직ㆍ강원용ㆍ강신명 목사와 저도 참석했다. 카터 대통령이 나오더니 저한테 ‘마이 굿 프렌드, 빌리 킴!’이라고 인사했다.”

Q : 둘이 아는 사이였나.

A : “미국 조지아주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카터는 조지아주 주지사였다. 저는 침례교 목사인데, 알고 보니 카터는 침례교 집사였다. 주지사 집무실에서 만난 카터에게 침례교회 부흥회 참석을 요청했다. 그때 카터 주지사는 내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1976년 김장환 목사가 카터 조지아 주지사를 만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조지아 주지사가 미국 대통령이 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카터 당시 주지사는 침례교 목사인 김 목사에게 대통령 출마 의사를 밝히며 기도를 청했다. [극동방송]

Q :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나.

A : “당시에는 누구도 조지아주 주지사가 대통령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뉴욕도 아니고, 캘리포니아도 아니지 않나. 대통령 출마 의지를 밝힌 카터가 내게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그런 인연이 있었다.”
카터 대통령은 한국 기독교 지도자와 만남을 마치자마자 김 목사를 따로 불렀다. 그리고 여의도 침례교회에 가서 함께 예배를 보자고 요청했다. 마침 일요일이었다. 김 목사는 카터 대통령과 같은 차에 동석해 여의도로 갔다.

Q : 차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나.

A : “여의도가 보이기에 1973년에 여기서 100만 명을 모아놓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함께 전도 집회를 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카터 대통령은 자기 여동생이 전도사라고 하더라. 한국을 좋아한다고. 그래서 나중에 내가 초청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해서 내 의견을 말했다.”

Q : 뭐라고 했나.

A : “한반도에서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큰일 난다고 했다. 북한군이 내려오면 기독교인은 생존할 수가 없다. 철군을 유보했으면 좋겠다. 이게 한국의 전체 기독교인 생각이고, 한국 국민도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랬더니 카터 대통령이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김장환 목사는


그뿐만 아니었다. 김 목사는 카터 대통령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전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제 외교상 결례였다. 그래도 김 목사는 그걸 카터 대통령에게 부탁했다.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보는데 긴급전화가 왔다.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빨리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했다. 김 목사는 예배가 끝나자 곧장 청와대로 갔다.

Q : 청와대에서 누구를 만났나.

A :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만났다. 미 대사관저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미 다 알고 있더라. 그런데 차 안에서 나눈 이야기는 몰랐다. 그걸 물어보더라. 1차 정상회담이 어긋나자 박 대통령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나는 ‘그래도 각하가 초청한 사람이다. 내가 카터 대통령에게 전도를 부탁했다. 만약 전도를 하거든 긍정적으로 받아달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김 목사 말도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열린 2차 한미 정상회담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군 철수 방침을 철회했다. 박 대통령은 공항까지 직접 배웅을 나갔다. 차 안에서 카터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내가 잘 아는 목사가 있는데, 가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나도 잘 아는 목사가 있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이 말한 목사의 이름이 똑같았다. 김장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예배에서 김장환 목사가 추모하는 설교를 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 등 미국 정치지도자들도 조문석에 앉아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소개를 따로 없었지만, 김 목사에 대한 공식 소개는 있었다. [미국 NBC방송 뉴스 캡처]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단이 침례교다. 감리교나 장로교보다 훨씬 더 크다. 김 목사는 2000년에 침례교세계연맹(BWA) 총회장에 당선됐다. 50여 개국을 다니며 선교와 구호 사업을 펼쳤다. 김장환 목사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이유다. 김장환 목사가 갖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는 굉장하다. 특히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미국 주류 사회의 종교계ㆍ재계ㆍ정관계ㆍ교육계 등에 구축한 그의 인맥은 놀라울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문재인 정부에는 백악관 네트워크가 별로 없었다. 한미 정상회담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당시 김진표 의원이 김 목사를 찾아왔다. 김 목사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에게 도움을 청했다. 보수 기독교층이 주류인 미국 사회에서 프랭클린 그레이엄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실제 트럼트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텁다.

김 목사의 전화를 받은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기존 일정을 모두 제쳤다. 이튿날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서 한국으로 곧장 날아왔다. 김 목사와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 한미 정상회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도왔다.

2009년 8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김장환 목사가 숙소에서 예배를 인도했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도 보인다.
2000년 1월 김장환 목사가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이 됐을 때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 스페인어로 된 성경을 선물했다. 호탕한 성격의 카스트로는 당시 김 목사를 무척 좋아하며 환대했다. [극동방송]

Q : 탄탄한 대미 외교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던 핵심 비결이 뭔가.

A : “사람은 한번 만나서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 팔로우업이 있어야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10년, 20년, 30년까지도 이어진다. 그 인맥들이 살아 있는 거다. 가령 내 친구 중에 미국 육ㆍ해ㆍ공군 군목으로 간 사람이 많다. 그들은 별 두 개까지 달 수 있다. 그들이 내게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식 설교를 부탁한다. 거기에 가서 보면 내년도 졸업 설교 강사는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다. 그런 식으로 인맥이 계속 확장된다. 이런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 美대통령 생일카드에 100달러 지폐 두 장 넣어

「 김장환 목사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게 생일 카드를 보낸 적이 있다. 안에다 100달러짜리 지폐 두 장을 넣었다. “생일날 저녁에 부인과 함께 외식을 하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였다. 김 목사는 “카터 대통령이 외식비 200달러가 없겠나. 그렇지만 이런 생일카드를 받아보긴 처음이었을 거다”고 말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 정부의 특사로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김 목사에게 전화해 기도를 부탁한다.

김장환 목사가 9일 서울 마포구 극동방송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김 목사는 20년 넘게 극동방송 어린이합창단을 데리고 미국에 가서 공연을 했다. 갈 때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정관계 인사들을 초청했다.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이 “외교관 100명이 가도 이런 외교는 못 한다”고 평했을 정도다.

지난달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과 카투사를 위한 워싱턴 추모의벽 건립 기금으로 4억4000만원을 모금해 보내기도 했다. 2015년 시리아 난민촌에 400채의 컨테이너 주택을 공급했고,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 특별 입국자에게 생활 필수 구호품 9.5톤(약 1억5000만원 상당)을 긴급 전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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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종교전문기자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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